[르포] 올해 마지막 날 1000명이 줄섰다…면허 갱신 대기줄에 갇힌 시민들 [세상&]

정주원 2025. 12. 3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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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루 남기고 전국 면허시험장 ‘대기 전쟁’
도봉·강남 수백 명 몰려, 대기인원 1000명 육박
“미루다 몰렸다” 제도·현장 모두 한계 드러나
31일 오후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 사람들이 가득찬 모습. 정주원 기자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서요. 더 미루면 과태료라서요.”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2025년 한 해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전 9시 30분경 서울 도봉운전면허시험장 정문 전광판에는 이미 ‘대기 인원 350명’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주차장 진입로에는 ‘만차’ 안내판이 세워졌고, 차들은 진입을 포기한 채 인근 골목을 몇 바퀴씩 맴돌았다. 주차 요원은 “오늘은 자리 나기까지 30분 이상 걸린다”며 “주차 공간은 알아서 찾아야 한다”고 안내했다.

이날 도봉시험장은 개장 직후부터 북새통이었다. 오전 9시 30분 350명이던 대기 인원은 10시 30분 400명을 넘었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정오 무렵에는 450명 선까지 치솟았다. 실내 대기 공간은 이미 가득 찼고, 번호표를 든 시민들은 서서 순서를 기다리거나 복도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었다.

31일 도봉운전면허시험장이 만차로 차량진입이 불가능한 모습. 정주원 기자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강남이 더 붐빈다길래 일부러 도봉으로 왔다”며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연차를 쓰고 왔는데 오전 내내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남양주에 사는 30대 강모 씨는 “9시쯤 도착했는데 아직도 300번대가 호출 중”이라며 “면허증 실물 카드가 급해서 왔는데, 30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국제면허증은 온라인 신청이 된다고 하지만 우편으로 받기까지 시간이 걸려 결국 직접 왔다”고 덧붙였다.

대기 줄이 길어지자 일부 시민들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인근 식당으로 이동했다. 50대 박모 씨는 “면허 갱신을 미루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왔다”며 “어차피 1~2시간은 걸릴 것 같아 근처에서 밥을 먹고 다시 들어오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번호표를 들고 있으니 중간에 빠져도 괜찮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점심 지나도 줄 안 줄어”…강남은 대기 1000명 육박

이후 현장 혼잡도가 높아지면서 시험장 측은 임시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면허시험 합격자나 적성검사 완료자 등을 분리 호출해 대기열을 조정했지만, 체감 혼잡도는 크게 줄지 않았다. 1종 보통 면허 보유자인 60대 신동호 씨는 “적성검사만 1시간 넘게 걸렸다”며 “점심시간이 겹치면서 창구가 오전에 비해 점점 비어가면서 회전율이 더 느려졌다”고 토로했다.

강남운전면허시험장 면허 갱신 창구에 대기 인원 수가 931명까지 늘어난 모습. 정주원 기자

이날 오후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오후 2시 기준 대기 인원은 940명을 넘어섰고, 한때는 1000명에 육박했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 상태로, 인근 탄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라는 지시가 잇따랐다.

면허 시험장 내부에서는 발 디딜 틈도 없어 안전에 유의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점심시간 이후인 오후 2시부터는 15분마다 100명 정도씩 빠지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대기 줄은 쉽게 줄지 않았다.

선릉역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30대 직장인 장모 씨는 “점심시간에 잠깐 와서 수령만 하고 가려 했는데,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돌아간다”며 “온라인 신청도 해봤지만 실물 면허증은 직접 받아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연말마다 반복” 갱신 제도 구조적 한계 드러나

이날 혼잡도는 현장 체감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이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는 ‘운전면허시험장 혼잡 예측’에 따르면, 31일 기준 서울 지역 시험장들은 모두 극심한 혼잡 상태를 보였다. 강남·강서·도봉·서부 등 서울권 4개 시험장의 예상 대기시간은 오후 4시경 일제히 200분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봉운전면허시험장에서 방문객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좌석이 꽉 차 뒤에 서서 대기하는 인원도 많았다. 정주원 기자

특히 지난 26일과 29~30일에는 연말 중에서도 혼잡도가 가장 높았던 것으로 집계됐고, 평균 대기 시간이 가장 길었던 곳은 강서운전면허시험장으로 176분에 달했다. 사실상 하루 일정 대부분을 면허 발급 대기에 써야 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연말 마지막 날 면허시험장에 인파가 몰린 배경에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면허 갱신 대상자는 약 490만 명으로, 최근 15년 사이 가장 많다. 그러나 상반기까지 실제 갱신을 마친 인원은 약 180만 명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갱신을 미룬 인원이 연말에 한꺼번에 몰리며 ‘막차 대란’이 반복된 것이다. 면허증은 기한 내 갱신하지 않을 경우 1종 면허는 3만원, 2종 면허는 2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1년 이상 지나면 면허가 취소된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온라인으로 신청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1종 보통 이상 면허나 고령 운전자는 적성검사 등으로 반드시 현장 방문이 필요하다”며 “실물 면허증 수령 역시 본인 확인 절차상 현장 방문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편 발송은 분실 위험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면허증 갱신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 정주원 기자

전문가들은 구조적 개선 없이는 같은 혼잡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최재원 부산대학교 도시공학과 겸임교수는 “면허 갱신이 특정 시기 집중되도록 설계됐다. 특히 1·2종 면허 갱신 주기가 10년으로 같아지면서부터 인원이 몰리기 시작했다”며 “6개월 단위로 분산하는 등 갱신 주기를 나누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최 교수는 “신분증 성격상 무작정 비대면으로 전환하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개인정보 보호와 편의성을 동시에 고려한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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