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溫記:따스함을 기록하다]

전새날 2025. 12. 3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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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환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인터뷰
치대 본과 3학년 시절 다이빙 사고
전신마비 이겨내고 치과의사 꿈이뤄
기부부터 강연·상담 등 각종 활동
나눔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그냥 나를 보여줘
많은 분이 ‘할 수 있다’ 희망 얻고가
수없이 죽을 고비…귀인들 덕에 극복
아픈 기억 많지만 지금에 감사할 뿐
일부러 희망적인 말만 하진 않아
나를 봐라, 나같은 의사도 있지않나
‘멘토링’에 집중하는 가장 큰 이유
이규환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가 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를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도 살고 있다고. 당연히 당신은 할 수 있다고. 많은 분이 희망을 얻어 갑니다.”

진료실 문이 열리자 치과 도구를 집은 의사의 손가락에 투명한 플라스틱 보조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손의 움직임을 보완하는 장치다. 휠체어에 앉은 채 환자와 눈높이를 맞춘 의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진료를 이어간다.

26일 경기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이규환(46) 건강증진센터 교수는 2005년부터 이곳에서 치과의사로 근무 중이다. 꼼꼼하고 친절한 진료 덕분에 예약 스케줄은 촘촘히 잡혀있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환자들도 이제는 이 교수를 먼저 찾아온다.

이 교수는 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시절, 다이빙 사고로 하루아침에 사지가 마비된 1급 최중증 장애인이 됐다. 사고 전 그의 삶은 그야말로 남 부러울 것 없이 순탄했다. 키 188㎝의 듬직한 체격에 반장과 회장을 도맡을 만큼 사교적이었고 공부와 운동 모두 곧잘 했다. “잘하는 공부로 잘 먹고 잘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는 그의 말처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24시간 내내 비명과 울음이 끊이지 않던 중환자실에서 그는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당신은 죽는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포기도 해봤고, 분노도 해봤다. 끝내는 죽음까지 생각했다. 이 교수는 “온몸이 움직이지 않다 보니 배운 대로 혀밖에 깨물 수가 없었다”며 “하지만 영화처럼 쉽게 죽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결국 삶 자체를 포기하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몸은 굳어있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지옥 같던 중환자실에서 그는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긍정적인 책들부터 희망적인 기사들까지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여러 글을 읽어줬다”며 “다른 사람들이 힘든 상황을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알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때 이 교수는 “반드시 치과의사가 되고 죽겠다”라는 일념 아래 남들보다 10배 더 공부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국가고시에 한 번에 합격했고 수많은 병원의 문을 두드린 끝에 지금의 자리에 섰다.

인생의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다치기 전에는 몰랐다. 그가 나눔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이 교수는 “만약 다시 저를 살려주신다면 정말 어려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위해 살고 죽겠다고 수백만번 기도했다”며 “그 약속을 지키는 마음으로 조금씩 나눔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남을 돕는 일이 오히려 내가 복을 받는 일이더라”며 “전신마비가 된 나 같은 사람도 살아서 의사가 됐다고 말해주면 절망하던 사람들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귀인이 자신을 살렸다고 말한다. 다시 학교에 복학했을 땐 선후배 동기들이 휠체어를 옮겨주고 필기한 노트를 나눠줬다. 이 교수는 “휠체어에 계단 하나는 만리장성과도 같다”며 “무거운 전동휠체어를 다 같이 들어주고 닫혀있던 문도 활짝 열어줬다”고 말했다. 의사가 된 지금도 혼자가 아니다. 진료실에서는 동료들이 손발이 되어준다. 진료 기구를 손에 끼워주고 환자가 누울 의자도 펼쳐주며 돕는다.

이제 ‘나눔을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20년이 넘은 복지관 기부부터 의료 봉사, 강연에 이르기까지 타인을 위해 사는 이유다.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활동은 멘토링이다. 단순 기부보다 충분한 대화가 희망을 주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고 느껴서다. 절망의 한가운데 있던 이들이 그에게 손을 내민다.

이규환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가 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이 교수는 “가장 기억나는 아이 중 한 명은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초등학생”이라며 “당시 친구들의 놀림까지 받으며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기까지 했다”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제 삶을 보여주며 ‘너도 당연히 할 수 있다. 내가 뒤에서 밀어주고 노하우도 다 전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아이는 지금은 대학교에도 합격하고 공무원이 됐다.

해외에서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이 교수는 “중국에서 ‘꼭 한번 만나고 싶다’며 한국까지 찾아온 적이 있다”며 “장애가 있는 딸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는 부모의 부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 아이에게 “‘이런 사람도 세계 최초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며 “중국으로 돌아간 뒤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래 마음에 남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멘토링은 특별한 말보다 존재 그 자체에 가깝다. 휠체어를 타는 자신도 의사가 됐으니 버티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일부러 희망적인 말만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신 그는 “너무 힘들 거라고 인생은 만만치 않다. 장애인은 더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를 보라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버텼다고. 너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이 교수는 “멘토링을 하고 결혼한 사람도 있고 대학에 다니다 포기하고 나서 다시 복학해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라며 “후원금으로 부모님 건강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참 기분이 좋았다”라고 전했다.

지금은 ‘감사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밝은 미소를 보이기까지 아픈 기억도 많았다.

이 교수는 “저를 보자마자 ‘병신이 진료하네’라고 화내며 나간 할아버지도 있었다”라며 “진료실 문도 열려있어 복도 밖까지 욕설이 울려 퍼졌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저한테 침을 뱉는 환자도 재수가 없다며 병원장에게 따지러 간 환자도 있었다”며 “너무 힘들었지만 그런 일 덕분에 더 열심히 하고 버틴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며 배웠다는 그는 “나와 같은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선배로서 직접 겪으며 얻은 노하우를 꼭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 시절 사고를 당한 그는 욕창을 겪으며 엉덩잇살을 다 긁어낼 정도로 고통스럽게 공부했다. 침대 앞에 책을 끼워 넣은 채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며 버텨냈다. 공부 방법부터 대인 관계,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까지 삶 전반에 대한 경험은 나눌 수 있는 자산이 됐다.

이 교수는 “저도 무식하게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며 “설령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죽을 만큼 하고 싶은 일을 하나 정해서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너무 힘들 거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순간을 그냥 버텨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수술 경험과 여러 차례 기절했던 기억까지 숨김없이 들려준다. “너는 손이 움직이지 않느냐, 감각이 있지 않느냐, 걸을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사람이지만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해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부르고 있다. 그의 활동을 지켜본 치과의사들과 일반인들도 함께 하겠다고 앞다퉈 연락이 온다. 이 교수는 “나눔은 대단할 필요가 없다”며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작은 후원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취약계층이 적절한 진료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지원 방안도 준비 중이다. 그는 “치과 진료만큼은 자기 입안 상태와 치료 방법에 대해 편하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안전하고 올바른 진료나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교수의 평생 좌우명으로 삼은 문장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자’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도, 일을 할 때도 그 기준으로 생각한다”라며 “내일 죽어도 괜찮으니까 오늘 하루만큼은 정말 열심히 따뜻한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이 교수는 2024년 보건복지부 ‘나눔국민대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지난 2004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장애인복합복지관, 노인종합복지관, 장애인협회 등 다양한 기관에서 장애인의 구강건강 증진과 재활을 위해 세밀한 검사와 상담을 제공하고 치료와 연계해 왔다.

또 수십 차례의 교육과 강연 후원을 통해 장애인 구강건강을 향상하기 위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앞서 2019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상 및 제8회 윤광열치과의료봉사상, 2023년엔 제3회 김우중 의료인상을 수상했다.

전새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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