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 없다며 자율 시행?…어정쩡한 정책에 표류하는 ‘보증금제’

김찬우 기자 2025. 12. 3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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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일회용컵] ③ 방향타 잃은 정책에 도민들만 ‘혼란’
‘컵 따로 계산제’ 내놓은 정부, 플라스틱 저감 실효성 ‘글쎄’
생성형AI로 만든 이미지. ⓒ제주의소리

필연적인 '불편함'을 적용한 제도의 성과는 눈에 띌 정도로 선명하게 나타났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이전보다 시행 이후 텀블러 사용량이 늘어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해 "판매·소비자 모두를 불편하게 하면서 정작 감량에 도움이 안 되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후 꺼내든 건 '컵 따로 계산제'였다.

이는 산하 공공기관인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의 성과 발표 내용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적어도 환경부가 정책을 헤집어 놓기 전까지 성과는 분명하게 나타난 것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시행 전후 제주지역 텀블러(다회용컵) 사용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22년과 2023년의 1월~7월을 비교할 때 증가율이 180.4%에 이를 정도였다.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와 국회입법조사처, 녹색연합 등이 개최한 '1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 시행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노우영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기획경영실장은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따른 사용량 감소 효과에 대해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일회용컵 보증금제 선도 지역인 제주도에서는 텀블러 사용량 증가에 따른 '일회용컵 사용량 감소 효과'가 뚜렷하게 확인됐다. 플라스틱 사용 저감 정책에 힘을 실었다는 평가다. 

구체적으로 제주지역 텀블러 사용량은 보증금대상사업자 7개 브랜드 제출자료 기준, 제도 시행 이전인 2022년 1월~7월 2만2979건에서 시행 이후 2023년 1월~7월 6만4436건으로 크게 늘었다. 180.4%나 증가한 것으로 전국 증가율 24.7%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노우영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기획경영실장의 발표 자료 내용 중 일부. ⓒ제주의소리
노우영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기획경영실장의 발표 자료 내용 중 일부. 제주도의 노력으로 성과를 보이고 있었지만, 정책적 혼선으로 급격히 낮아진 모습이다. ⓒ제주의소리

제도 시행 이후 제주도민들의 호응도 있었다. 2023년 11월 제주환경운동연합 등이 진행한 제주도민 인식 조사 결과 도민 91%가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전체 82%가 제도 취지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환경 보호와 자원순환 순기능에 대해 호응한 것이다. 

앞서 감사원은 일회용컵 보증금제 관련 녹색연합 공익감사 청구 건에 대해 "제주와 세종에서만 제도를 시행해 자원재활용법 개정 취지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환경부에 컵 보증금을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끝내 외면했다. 

이어 노 실장은 정책 혼선에 따른 문제도 지적했다. 일반적인 정책과 달리 제주도가 자체 행정력 등을 통해 시행 초기 정상화를 이루며 일부 성과를 보였지만, 자율 시행 입법 발의 등 외부 충격에 따라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게 됐다는 비판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하나로 이룬 성과는 아니겠지만, 일회용컵 사용량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가 따르는데 전 정부 환경부와 마찬가지로 새 정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소상공인 부담' 등을 이유로 포기했다. 지자체 자율 시행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상 손 놓은 것이다.

이번 정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컵 따로 계산제'다. 제주와 세종에서 시행 중인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라벨 부착, 별도 보관 공간 마련, 위생 관리 등 소상공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실질적인 참여율 및 컵 반납률도 낮다는 것이 근거다. 

이 제도는 음료값 중 일회용컵 가격이 얼마인지 영수증에 따로 표시토록 해 소비자 구매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만약 4000원짜리 커피를 구입할 경우 영수증에 '커피 3800원+컵 200원'과 같은 방식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노우영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기획경영실장의 발표 자료 내용 중 일부. 월 반환율은 10월~11월 들어 정점을 찍고 정책 후퇴 여파로 급감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지역에서 일회용컵 보증금 반환제도를 통해 모인 컵들은 구좌읍에 위치한 대한실업으로 모아져 압축 처리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그러나 영수증을 받지 않거나 버리는 사람이 많아 가격 표시만으로 얼마나 억제 효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또 보증금과 같은 부담이 없다면 다시 일회용컵을 사용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반납'하지 않아도 돼 다시 길거리 쓰레기가 늘 것이라는 우려도 따른다. 

이에 기후부는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을 사용할 경우 할인이나 탄소중립 포인트제를 제공하고 일회용컵 생산자책임재활용제 등을 도입, 제도 정착을 돕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센티브 제도는 지금도 하고 있는 정책으로 실효성에 물음표가 달린다.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사실상 폐지에 가까운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지자체 여건에 따라 자율 시행토록 하겠다는 발표였다.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도움이 안 되는 제도라면서 정작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어불성설이다. 

앞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제도 폐지 방안 등을 담은 환경부 내부 문건이 공개된 바 있다. 일회용컵 무상금지 정책을 내세우고 보증금제는 자율 시행으로 돌린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또 높은 이행률을 보였다는 산하 기관 보고서가 나왔는데 시행 의지가 없어 공표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애초에 전국 확대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따른다.

토론회에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회용컵 유상판매' 제도에 대해 소비자 부담은 늘고 카페 이익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길거리 투기 및 재활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이는 이번 정부 기후부의 '컵 따로 계산제'와 다를 바 없다. 

또 감량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 가맹점 100개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며 "환경부의 논리는 일회용품 감량 정책 전체의 무의미함으로 확대될 수 있다. 시범 사업을 토대로 전국 확대가 어렵다는 진단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제주도가 주요 관공서에 설치한 일회용컵 공공회수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초기 제주시 노형동의 한 음료전문점에 홍보 팜플렛이 놓여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 촉구 공동 제안서를 전달하며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다회용컵 사용을 촉진하고 컵 반환 체계를 구축해 일회용컵 감량을 유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정책 후속 조치에 나서지 않고 되려 후퇴시키면서 제도는 사실상 폐지됐고 결국 모든 부담은 제주도가 떠안게 됐다. 제주도는 조건 없이 일회용컵 보증금제 관련 환경부와의 정책 업무협약을 5년 우선 연장해 놓고 보증금제 유지 방안 검토에 돌입했다.

일각에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있어 프랜차이즈 본사의 부담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컵을 공급하는 본사가 모든 부담을 업주들에게 미룬다는 주장이다. 이에 보증금 표시가 인쇄, 각인된 컵을 공급하거나 본사 차원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됐다. 

관련해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환경부와 입맛대로 바뀌는 정책을 믿고 따를 도민들을 얼마나 될지, 이번엔 제대로 된 정책이라며 동참해 달라는 설득이 통할지 의문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컵따로 계산제는 단순히 컵값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소비자가 컵을 반납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실효성이 떨어지는 '컵 따로 계산제'가 아닌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를 위한 세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0곳 중 1곳만 성실히 참여하면 뭐 합니까. 나머지 9곳에는 있으나 마나 한 정책인데…." 

2023년 11월 8일, 환경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철회한 이튿날 현장에서 만난 카페 점주의 말이다.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실패'라고 단정, 제주를 희생양으로 만든 환경부가 어떤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