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숫자로 읽는 ‘파주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애국자에서 피해자로… 배신당한 용주골의 ‘노동’
잇단 행정대집행, 현재 66명 남아
혐오·불법·생존이 부딪히는 공간
기지촌 시절 국가 달러 벌이 수단
연대하는 시민단체와 ‘철거 저지’
종사자·활동가 형사처벌 재판도
절반이 부양가족 등 경제적 이유
유엔기구 ‘인권 보호 방향 협의를’
대한민국에서 성매매 집결지는 숫자로 관리돼 온 공간이다. 몇 월 며칠이라는 폐쇄 선포 시점, 몇 회라는 행정대집행 횟수, 몇 동이라는 철거된 건물 수, 몇 명의 계도 종사자 인원, 몇 원이라고 책정된 지원금 액수까지. 경기도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용주골도 숫자의 틀 안에서 다뤄졌다. 이곳을 다루는 방식은 계산 가능하고 집계할 수 있는 수치로 환산돼 왔지만 그 숫자만으로는 남은 사람들이 버티는 이유는 끝내 읽을 수 없다. 계산대 위에 당사자들의 삶의 맥락이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년 동안 관찰하고 기록한, 계산기로 환원할 수 없는 이야기를 5개 숫자를 통해 들여다본다.

■ 0명
용주골 옆에는 연풍초등학교가 있다. 반성매매 시민단체는 학교와 성매매 집결지가 가깝다는 이유를 들어 폐쇄를 촉구해 왔다.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성매매 집결지를 돌려야 한다는 명분은 강력하지만 그 명분은 역설적으로 용주골에서 일하는 워킹맘에겐 심각한 위협이 됐다. 실제로 용주골 여성 중엔 연풍초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가 있었다. 용주골 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 대표 별이씨는 “실제로 그 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한 명 있었지만 학교 앞 시위가 계속되자 아이에게 낙인이 찍힐까 겁을 먹고 전학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 66명
용주골 종사자는 2023년 용주골 전면 폐쇄 계획 발표 이후 하나 둘 용주골을 떠났고 현재 66명만 남았다. 파주 연풍리 일대 19만㎡의 광활한 땅은 2015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뒤 10년 동안 설계도 위에 놓여 있다. 낡은 도심을 허물고 들어설 프리미엄 아파트의 면적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일이었다.
2021년 시공사가 선정됐지만 재개발 사업은 표류했고 법정기한인 지난해 12월27일까지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신청하지 못하면서 지난 3월 정비구역이 해제됐다. 10년을 끌어온 재개발이 멈춰섰지만 포클레인은 멈추지 않았다.
연내 폐쇄라는 목표로 행정대집행이 이뤄진 것이다. 자연스러운 정비과정에서 행정대집행으로 선회하면서 개발이익을 기다려온 일부 주민들과도 갈등이 벌어졌다. 용주골 종사 여성은 이런 이해관계의 가장 약자다. 판자촌 빈민들이 한마디 주장도 펼치지 못하고 내쫓기듯 손쉽게 퇴출 대상이 됐다. 주거권과 젠트리피케이션, 성노동자에 대한 혐오, 불법과 생존이 부딪히는 복잡한 공간이 용주골이다.

■ 75년
파주시 연풍리, 원래 이곳은 대추나무가 많아 ‘대추벌’이라 불리던 평온한 농촌 마을이었다. ‘미군 기지촌, 용주골의 역사적 변화: 사회경제적 공간구조를 중심으로’(2020) 연구에 따르면, 여러 성씨가 대를 이어 모여 살던 집성촌의 운명은 1950년 한국전쟁과 함께 뒤바뀌었다. 미군 부대가 들어서며 조상 대대로 일궈온 땅은 군사시설로 수용됐고, 마을은 어느 날 갑자기 ‘용주골’이라는 낯선 이름의 기지촌이 됐다.
국가는 기지촌을 달러 창구로 대우했다. 정부는 성매매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 부르며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외화에 기댔고 이들에게 영어 회화와 손님맞이 태도를 가르치기도 했다. 용주골은 그렇게 국가의 묵인과 관리 아래 활성화된 공간이었다. 75년. 누군가에게는 지워야 할 오명의 숫자지만, 이곳에서 수십 년을 버틴 이들은 국가가 필요할 때 불러들여 이용하고 이제는 불법이라며 등을 돌린 배신의 시간이기도 하다.

■ 집유 2년
자작나무회 소속 별이(40대)씨는 지난 10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용주골에는 종사 여성이 꾸린 단체인 자작나무회와 이들을 지원하는 주홍빛연대 차차(차별과 낙인을 차근차근 없애 나가기 위한 모임)가 활동하고 있다. 자작나무회와 차차에 연대한 몇몇 단체도 있다. 시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공무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행위가 공무집행방해가 됐다.
자작나무회는 대화를 요구했고, 차차는 여성들의 사정을 듣고 합류했다. 장애를 가진 가족, 홀로 부양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사정 등이 얽혀 성매매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차차 등의 조사에 따르면 용주골 여성(63명) 76%는 판매, 서비스, 단순 노무 등에 취업 경험이 있으나 낮은 임금 등의 이유로 그만뒀고 가족부양과 빚 상환(46%) 등의 경제적 이유로 성매매에 종사했다. 부양 가족은 중병 환자, 장애인, 어린가족으로 조사됐다. 차차의 유원씨는 “용주골 성노동자는 성매매피해자가 아닌 노동자로서 성매매피해자 자활지원조례가 아닌 이주보상대책을 받기 원한다. 반찬값이나 벌러 나온 여성 취급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생존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2025년
역사의 뒤안길 앞에 서있는 성매매 집결지, 용주골. 용주골에게 2025년은 작은 외침이 어딘가에 닿은 한해이기도 했다. “성매매와 성노동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다. 성노동자도 인권 보호를 받아야 하며, 정책 결정 시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매춘과 성노동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며 회원국들이 각기 다른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성노동 및 성매매 정책은 반드시 해당 개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며, 각국의 맥락을 반영하되 포괄적이고 관련 당사자 및 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해 마련돼야 한다.”
2025년 3월14일,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용주골 사태를 전한 경인일보의 메일에 대해 이 같은 공식 답변을 보내왔다. 이는 ‘불법’이라는 이름 아래 당사자와의 소통을 생략해온 국내 행정 기조에 대해 국제사회가 인권 보호의 기본 원칙을 환기시킨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이 답신은 한 달 뒤인 4월18일, 용주골 여성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리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현재 지자체의 완고한 기조 속에 하나둘 건물들은 헐려 나가고 있지만, 그 폐허 주변에서는 여전히 66명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끝내 대화를 기다리며 일상을 버텨내는 23가구의 구체적인 삶 말이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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