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단절을 유발하는 건축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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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설계한다는 것은 면적에 맞춰 단지 벽돌과 콘크리트를 쌓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소통의 흐름, 권위의 배치, 그리고 인간 심리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보이지 않는 심리의 세계를 조정하는 일이다. 이러한 공간의 비밀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일상적인 대화의 기술까지도 향상시킬 수 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로는 줄긴 했으나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는 고성과 몸싸움은 시민들에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우리네 대부분은 으레 “국회의원들은 원래 그런 인간들이니”라며 그들의 행동을 개인의 수준 문제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이 극단적인 소통 단절 행태가 단지 인간의 윤리적 수준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공간과 환경에 의해 유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시선과 사고의 지평이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실례를 들어보자. 우리가 지금까지 바라본 국회 본회의장 속의 ‘사람’이 아니라 ‘건축 구조’를 주목해보면 그 공간 자체가 어떻게 토론을 방해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유도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①친밀감과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거대한 규모 ②앞사람과 동료 의원들이 잘 안 보여 심리적 거리감을 증폭시키는 완만한 의원석 경사 ③발언자를 가려 청중인 의원들과의 수평적 대면을 어렵게 만드는 단상 구조. 이에 발언자는 마치 혼자 설교하는 듯한 고립감을 느끼기 쉽고, 청취자는 시각적 교류가 부족하여 집중력을 잃는다. ④긴장감과 집중력을 이완시켜 쉽게 졸음을 유발하는 지나치게 편안한 의자와, 동료 의원들 간 물리적 거리를 심화시켜 집단적인 연대나 활발한 의견 교환을 방해하는 넓은 의자 배치 간격. ⑤마지막으로 의원들이 대중의 감시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쉽게 만드는, 존재감 미약한 일반 시민석의 규모와 구조까지, 이 모든 요소는 책임감 있는 토론보다는 감정적인 표출을 부추기거나 흥미를 잃게 해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숨은 요인이 된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고함을 지르거나 격렬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미개해서가 아니라, 공간 구조 자체가 그들을 소통 단절의 틀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은밀하게 조종하는 무언의 언어인 것이다(그렇다고 공간 때문이니 일부 의원들의 비정상적 ‘이탈’까지 이해하자는 뜻은 아니니 오해 없기를).
우리가 수많은 회사, 학교와 조직에서 ‘소통의 답답함’을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도 생각보다 많은 부분, 바로 공간에 있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닌 ‘공간 구조의 문제’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지속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온라인 토론이 오프라인 토론을 압도하는 현상은 이 공간의 비밀을 명확히 보여준다. 인터넷상의 토론은 물리적인 공간 구조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입장하고, 참여하고, 반응하는 공간 구조 자체가 지극히 쉽고 수평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닉네임 뒤에 숨어 심리적 부담감이 적고, ‘좋아요’나 댓글과 같은 즉각적인 피드백 구조가 활발한 참여를 유도한다(물론 그만큼 반대급부적인 문제도 있다). 반면, 아직도 많은 오프라인 회의실은 물리적 권위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단상이나 상석이 존재하는 공간, 넓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구조는 계층적 위계를 강화하며, 하급자나 소극적인 참여자에게는 발언의 문턱을 높인다.
나는 기업으로부터 새 사옥 설계나 기존 사옥 리노베이션 설계 의뢰를 받을 때, 가장 먼저 회사 대표와 임원, 그리고 직원이 서로 대면하는 회의실이나 접견실의 구조를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그 공간은 곧 그 기업의 소통 문화와 리더의 철학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넓은 공간에서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아래 사람을 대하는 것에 익숙한 대표가 이끄는 기업은, 하급 직원들 열에 아홉은 소통에 답답함을 느낀다. 넓은 공간은 심리적 거리를 만들고, 긴 테이블은 물리적 장애물로 작용하여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억압한다. 회의는 일방적인 지시나 보고의 장으로 변질하기 쉽다.
이와 반대로, 좁은 공간에서 작은 원형 테이블에 편하게 둘러앉는 대표실을 가진 회사는 확연히 다른 문화를 보여준다. 수평적인 소통 구조가 대표의 공간에서부터 확립되었기 때문에, 하부 부서의 회의실도 유사하게 자유롭고 개방적인 구조로 운영된다. 또한, 이러한 조직의 온라인 토론방 참여 역시 다양하고 활발한 경향을 보인다. 공간이 수평적 소통을 장려함으로써, 직원들은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때문이다.

공간을 설계한다는 것은 면적에 맞춰 단지 벽돌과 콘크리트를 쌓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소통의 흐름, 권위의 배치, 그리고 인간 심리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보이지 않는 심리의 세계를 조정하는 일이다. 이러한 공간의 비밀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일상적인 대화의 기술까지도 향상시킬 수 있다. 구체적인 예 하나 들어보자. 한 ‘공간 심리학자’의 흥미로운 실험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앉는 자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가장 흔한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상대방과 대면할 수 있는 방식은 크게 네가지다. ①긴 방향으로 마주 앉기 ②짧은 방향으로 마주 앉기 ③서로 나란히 앉기 ④모서리에 대각선으로 앉기.

이 중 ①긴 방향으로 맞은편에 상대를 앉히는 자리 배치가 가장 대화가 어렵고 심리적 긴장도를 높이는 배치로 나타났다. 이는 시선이 직접적으로 마주 보고, 테이블이라는 물리적 장애물이 길게 놓여 있어 경쟁적인 구도와 권위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상대방에게 권위를 세우고 통제하고 싶다면 이 자리를 택하면 된다. 하지만 정말로 그 사람과 진정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면 ④모서리를 두고 서로 대각선으로 앉아 볼 것을 권한다. 대각선 배치는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보다 심리적 압박감을 현저히 낮춘다. 시선이 직접적으로 부딪히지 않아 긴장이 완화되고, 상대방의 몸짓이나 표정을 편안하게 관찰할 수 있다. 내가 만난 많은 이들도 이 대각선으로 앉는 것이 마주 보는 것보다 서로의 대화가 훨씬 쉽고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확인해주었다. 정면 대결의 구도를 풀고 ‘협력적 구도’를 무의식 중에 형성해주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시간’이라는 가장 비싼 재료뿐만 아니라, ‘소통’이라는 가장 섬세한 무형의 재료를 다룬다. 우리가 건축의 거장들을 평가할 때 그들의 건물 외형이나 기능성에만 주목하지만, 진정한 명작은 그 공간 안에서 발생하는 인간 상호작용의 질을 극대화하는 건물이다. 국회처럼 고함이 오가는 공간이 아니라, 작은 목소리도 경청하는 공간, 권위로 짓누르는 곳이 아니라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흘러넘치는 공간을 사회에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건축가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임무일지 모른다. 건축은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인간 심리를 짓는 예술이며, 공간은 우리가 맺는 관계의 숨겨진 계약서이기 때문이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요즘, 만약 가족이나 동료와 서먹한 상황이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테이블의 정면 대신 식탁 모서리에 대각선으로 가까이 앉아 말을 걸어보면 어떨까. 작은 공간 변화가 가져올 대화의 마법을 경험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임우진 | 건축가. 이론보다 현장을, 현상보다 그 원인을, 그리고 건물 그 자체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공간과 도시를 만들어왔다. 25년간 파리에서 활동 중이며, 여러 나라에 살면서 체화한 통문화적 시선으로 비판보다는 영감에, 우월함보다는 다양성의 가치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관심의 일부를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에 담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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