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자과학 키우고 싶어…中서 귀환"

최원석 기자(choi.wonseok@mk.co.kr) 2025. 12. 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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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IBS 양자과학 연구단장 인터뷰
2011년 국내 자리 없어 중국행
14년간 칭화대 교수 재직하며
세계적인 석학 반열에 올라서
"中, 기초분야 연구 전폭 지원"
부모님 곁에서 여생 보내고
후배들에게 도움 주려 귀국
김기환 기초과학연구원(IBS) 트랩이온 양자과학 연구단장이 연구 분야를 설명하고 있다. IBS

"한국에 교수 자리가 없어 낙담하고 있는데, 중국 칭화대에서 러브콜이 왔어요. 늘 한국에 오고 싶었지만, 이제야 돌아오게 되었네요.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고 대한민국 양자 연구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평범한 사람들도 양자역학을 공부하고, 서학개미들이 양자컴퓨터 주식에 열광하는 시대다. 하지만 2011년만 해도 대한민국은 '양자 불모지'였다.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후과정까지 마친 인재를 품지 못해, 중국으로 떠나보냈다.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향했던 젊은 물리학도는 세계적인 석학이 돼 금의환향했다. 그사이 14년의 세월이 흘렀고, 30대의 혈기왕성한 청춘은 쉰을 갓 넘긴 베테랑 연구자가 됐다.

김기환 기초과학연구원(IBS) 트랩이온 양자과학 연구단장은 지난 29일 자신의 연구단을 출범시켰다. 그는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돌아올 기회를 준 한국과 IBS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고 덕분에 큰 성과도 냈지만, 앞으로는 한국에서 더 연구하며 젊은 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김 단장은 양자컴퓨터, 양자통신의 기반이 되는 양자정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양자연산을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구축하려면 이온을 안정적으로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온이 양자연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다. 김 단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이온을 제어하고 측정하는 '이온트랩' 기술을 연구했다. 김 단장은 여러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하고, 오래 유지하는 연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학위 과정을 모두 한국에서 마쳤지만, 그를 석학으로 키운 곳은 중국이었다. 김 단장은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에 자리를 잡으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국내 이공계에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그조차 돈이 안 되는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설 자리가 없었다.

당시 그에게 유일한 기회는 중국의 '청년 천인계획'이었다. 칭화대가 양자정보 분야의 연구센터를 만들었고, 당시 센터장이 교수 자리를 제안했다. 그렇게 김 단장은 2011년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 정부가 연구정착금 6억원을 지원했으며, 지방정부와 대학은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을 추가로 보태줬다.

김 단장은 "중국은 스스로 대국이라는 인식이 있어 가능성 있는 분야에는 모두 투자하고 있다"면서 "연구자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실하고, 기초연구 분야임에도 돈 걱정 없이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석학 반열에 오른 뒤에도 한국 측의 제안을 기다렸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 곁에 있고 싶었고, 중국에서 여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맞는지도 고민이었다. 김 단장은 "양자 분야가 전략 기술로 지정되고 세계적으로 민감해지는 만큼 한국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김 단장은 "중국에 있는 한인 과학자들은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며 "어느 정도 조건만 맞으면 한국에 돌아오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에서 지원하는 연구정착금과 정부의 연구비로는 연구를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IBS는 김 단장을 모셔오기 위해 10년 이상의 안정적인 지원, 확실한 연구 인프라스트럭처 지원 등을 내걸었다. 김 단장은 "한국에서 아무도 양자정보 분야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부터 도전적인 연구를 해왔던 저도 아직 새로운 걸 할 때는 무섭다"면서 "IBS는 긴 호흡을 갖고 있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했다.

양자정보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그의 목표는 '더 깊이 있는 질문'을 하나씩 탐구하는 것과 젊은 후배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김 단장은 "나도 젊었을 때 고등과학원 세미나에서 양자정보 분야의 해외 석학들을 보고 이온트랩 연구를 결심했다. 후배들이 저를 보고 이 길을 걷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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