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아마존의 ‘침 없는 벌’, 곤충 최초로 법적 권리 획득···서식지·기후 환경 보장

김기범 기자 2025. 12. 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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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페루 아마존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무침벌. 벌 보호단체 ‘비와일드’ 누리집 갈무리

남미 페루 아마존의 ‘침이 없어 쏘지 않는 벌’이 세계 최초로 법적 권리를 지닌 곤충이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10월 페루 아마존 열대우림 인근의 사티포 지역에서, 지난 22일에는 나우타 지역에서 일명 무침벌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조례가 각각 통과됐다고 29일 보도했다. 이들 벌은 세계 최초로 법적 권리를 부여받은 곤충이 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세계적으로 선례가 없는 이들 조례에 따라 무침벌은 건강한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살충제로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서식지와 생태적으로 안정된 기후 조건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내용과 무침벌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결정에 사전예방주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조례에 포함됐다. 사전예방주의 원칙은 환경에 대한 위협이 존재하는 경우 그에 관한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하더라도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미다. 위협이나 해를 당하게 될 경우 단체나 개인 등이 무침벌을 대신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 절차를 대신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무침벌이라고 불리는 이 벌은 지구상의 벌 가운데 가장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종이다. 전 세계에 약 500여종이 있는데,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아마존에 서식하고 있다. 카카오, 커피, 아보카도 같은 작물을 포함해 아마존 식물 약 80% 이상의 수분을 담당하면서 열대우림의 생물다양성 유지에 기여해왔다. 원주민들은 과거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 벌들을 기르면서 공존해 왔다.

남미 페루 아마존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무침벌. 벌 보호단체 ‘비와일드’ 누리집 갈무리

그러나 빠르게 진행 중인 기후변화와 열대우림 파괴, 살충제와 제초제 등으로 인해 이들은 멸종위기에 놓인 상태다. 살충제와 제초제는 무침벌뿐 아니라 전 세계의 벌 군락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로사 바스케스 에스피노자 아마존리서치인터내셔널 창립자는 가디언에 “여러 원주민 집단과 대화를 나눠보면 ‘더 이상 벌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부터 한다”면서 “과거에는 정글에 들어가서 30분이면 무침벌을 찾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몇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외래종 벌과의 경쟁도 무침벌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사람들이 양봉을 위해 도입한 ‘침이 있는’ 외래종 벌들에 밀려 무침벌들의 서식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아마존리서치인터내셔널 등 단체와 전문가 등은 원주민들과 협력해 무침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권리 부여 캠페인을 벌여왔다. 또 과학자들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종 목록인 적색목록에 무침벌을 등재하기 위한 캠페인도 벌이는 중이다.

이들 캠페인은 초기에 무침벌 관련 학술 연구가 거의 이뤄져 있지 않은 것 때문에 난항을 겪었다. 과학적 연구결과가 없다 보니 이들 벌이 페루 토종인지 아닌지, 멸종위기에 놓였는지 아닌지조차 확인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남미 페루 아마존에 서식하는 무침벌. 온라인 국제청원사이트 아바즈 누리집 갈무리

이로 인해 전문가, 환경단체 활동가 등은 2023년부터 무침벌의 서식 범위와 생태 자료를 지도화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 작업을 통해 무침벌 감소와 삼림 파괴 사이의 연관성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페루 정부는 지난해 무침벌을 페루의 토종벌로 인정하게 됐다. 페루 법률은 토착종을 보호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무침벌의 토종 인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온라인 국제청원사이트 아바즈에서도 무침벌을 보호하기 위한 청원이 진행 중이다. 이 청원은 페루 의회에 페루 전체의 무침벌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제정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으로, 30일 현재 약 38만7695명이 동참했다.

원주민단체인 ‘에코 아샤닌카’ 대표인 아푸 세자르 라모스는 가디언에 “무침벌과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안은 원주민과 열대우림의 살아있는 경험에 가치를 부여한다”면서 “이는 원주민들에게 있어 큰 진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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