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라도 놓칠라 귀·입 막고 전화 삼매경…'응급의료 컨트롤타워' 가보니

박정렬 기자 2025. 12. 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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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상황실
중앙 1곳, 광역 6곳 등이 응급·중증환자 이송·전원 관제
전문인력, 특화 시스템 갖췄지만, 한계도…"종합대책 필요"
지난 2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울·인천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한 상황요원이 전화로 환자의 상태를 전원(轉院) 병원에 알리고 있다./사진=박정렬 기자


#. 지난 2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울·인천광역응급의료상황실. 한 상황요원이 전화로 환자의 상태를 전원(轉院) 병원에 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변 소음에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손으로 귀와 입을 막은 채 통화는 한동안 계속됐다. 불과 몇 분 만에 "CT상 mediastinum(종격동)과 aortic arch(대동맥궁)까지 가스 형태의 abscess(농양) 소견" "Lt.tonsill(왼쪽 편도)에도 absess 소견" 등 환자 정보를 전달한 그는 "우선 CT를 보내드리겠다"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모니터에 띄워진 당일 발신·수신 병원 목록은 이미 20개가 훌쩍 넘어있었다.

이날 보건복지부와 출입기자단이 함께 찾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상황실은 전국(중앙)과 수도권(서울·인천)을 담당하는 두 개의 상황실이 한 층에 위치했다. 전국에 이런 '응급의료 컨트롤타워'(상황실)가 경기·강원, 대전·충청, 대구·경북, 광주·전라, 부(산)울(산)·경남 등 광역별로 5개 더 있다.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은 "2014년 중앙응급의료상황실(당시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이 개소할 때부터 병원 간 전원 지원 업무를 수행해왔다"며 "이어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에 따라 광역 6개 상황실이 순차 개소했고 병원 간 전원에 이어 119 병원 선정까지 공동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상황실은 최종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을 수소문하는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 병원을 찾아 헤매는 119구급대에 '최후의 카드'와 같다. 응급·중증 환자를 이송·치료하면서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시간으로 각 병원의 유효 병상·진료 여부 등을 알 수 있는 '내 손안의 응급실'이 일반인에게까지도 공개됐지만 현장 상황을 100% 반영하지는 못한다. 당직 근무하는 의사의 진료과나 응급실에 온 환자의 응급도는 물론 어느 병원이, 어떤 환자를 최종 치료할 수 있는지도 세밀하게 알지 못해 '응급실 뺑뺑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각 상황실은 전문인력과 전국적으로 수집하는 실시간 정보를 토대로 의료 현장의 '빈틈'을 메운다. 먼저 인력은 상황실에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상황팀장과 상황의사, 응급구조사와 간호사로 구성된 상황요원이 교대 근무하며 24시간 '원팀'이 돼 이송·전원 병원을 함께 파악하고 연계한다.

이에 기반이 되는 것이 10년간 모아온 응급의료센터의 정보와 네트워크 사업을 토대로 한 '차세대 응급의료 상황관리 시스템'이다. 3번의 업데이트를 거쳐 현재 환자의 위치, 치료 역량을 감안한 '최적의 병원'을 선별하고 전용 회선으로 다이렉트 연결까지 가능하게 개선됐다. 김정연 실장은 "병원의 상황을 알고 있는 가운데 상황의사 등 전문의가 이송·전원에 직접 개입해 수용을 설득하고 독려하니 (119구급대보다) 환자를 더 잘 받는다"며 "광역 상황실은 현지 병원에 대한 정보력이 높아 어떤 질환을 잘 받고 치료를 잘하는지 등을 알고 있어 병원 선정에 활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9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서 김정언 상황실장이 이송·전원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정면 화면에는 △취약지 응급영상판독 지원사업 △중독정보관리 업무지원시스템 등 주관 사업 현황과 △내 손안의 응급실 △전국 응급실 모니터링 시스템 등이 실시간으로 노출된다./사진=박정렬 기자


중앙·권역응급의료상황실은 '접수 기준'이 있다. 우선 119구급대가 이송하는 환자는 구급상황관리센터(소방청 및 시 · 도)가 요청하는 Pre-KTAS(한국형 병원 전 응급환자 분류 도구) 1단계 환자가 공동 대응 대상이다. 광역 내 전원은 응급실 재실 중인 환자이면서 해당 의료기관의 진료 역량이 부족해 전원이 필요한 환자나 응급시술, 수술, 처치가 필요한 경우일 때 타 병원 연결을 돕는다.

개별 상황실당 상황요원은 평균 20명으로, 의사를 포함하더라도 전국 400여 응급의료기관의 중증·응급 환자를 이곳에서 모두 담당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내년 광역 상황실 상황 요원을 각 5명씩, 총 30명 늘리는 예산이 책정됐지만 교대근무를 감안하면 실상 근무시간당 1명 남짓 늘어나는 것에 그친다.

이에 의료 현장에서는 "없는 것보다 낫다"는 다소 미온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병원 간 전원은 '진단'이 내려진 환자이지만 119구급대 이송은 '진단 전'이라 병원 선택에 제한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응급실 뺑뺑이'가 △소아청소년 △산모 △다발외상환자 등에 주로 집중되지만 배후진료 역량이 줄어드는 상황에 광역상황실만의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지금도) 한 환자당 평균 10건 이상은 전화한다. 배후 진료를 위한 세부분과 정보까지는 받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응급의학계는 애초 '응급실 뺑뺑이'를 한 가지 수단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119구급대와 상황요원의 역량 강화, 응급의료 수가 인상이나 전문의 채용 지원 등의 보상책이 종합돼야 중증·응급 환자 미수용 문제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지난달 성명서를 내고 "지역 응급의료기관이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중증응급환자는 중앙응급의료센터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응급의료기관의 진료 능력, 이송 거리를 고려한 우선 수용 권고, 해당 사례 형사적 면책 제공 등을 통한 해결이 보다 현실적"이라며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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