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량 연애'를 응원할까 [유수경의 엔터시크릿]

유수경 2025. 12. 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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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 출신 남녀의 연애, 계산 없는 직진의 사랑
한국에선 어려운 포맷, 일본에선 가능했던 이유
일본 연애 예능 '불량연애' 출연자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일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불량 연애’의 흥행은 단순히 기상천외한 콘셉트 때문만은 아니다. 소위 ‘양키’라 불리는 불량배 출신 남녀의 연애를 전면에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공개 직후 비영어권 시리즈 톱10에 오르며 일본을 넘어 한국과 아시아권까지 빠르게 반응을 끌어냈다. 자극적인 설정에 비해 시청자들의 체류 시간은 길었고, 화제성도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불량 연애’는 14일간의 공동생활 속에서 과거 불량배로 살아왔던 11명의 남녀가 사랑을 찾는 과정을 담는다. 소년원 출신, 전직 야쿠자, 폭주족 등 이력도 무시무시하다. 첫 화부터 출연자 간 몸싸움이 벌어지고 보안 요원이 개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도입부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게 된다. 이유는 분명하다. ‘불량 연애’는 자극을 던져놓고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출연자들의 과격한 언행 뒤에 숨어 있던 태도와 감정이 드러난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서툴게 편지를 쓰고, 설령 거절을 당해도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누군가를 선택하기 전에 조건을 따지기보다,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에 솔직해지려 애쓴다.

이 지점에서 ‘불량 연애’는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국내 연애 예능과 대비된다.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는 점점 정교해졌다. 외모, 직업, 나이, 경제력은 물론이고 출연자 간의 서사도 치밀하게 설계된다. 감정은 생기지만 그 감정이 관리되고 편집되는 과정 역시 시청자에게 노출된다. 안전하고 세련됐지만 동시에 계산적이다.

반면 ‘불량 연애’에는 계산이 거의 없다. 출연자들은 사회적으로 세련된 언어를 갖추지 못했고 감정을 포장하는 법도 서툴다. 대신 감정의 방향은 분명하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상처를 받으면 상처받았다고 확실히 티를 낸다. 이러한 태도가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을 얻는다.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이자 진행자인 메구미는 “요즘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본심을 억누르는 사람이 많다”며 “그래서 오히려 양키들이 가진, 본심으로 정면 충돌하는 방식에 가능성을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은 시청자들이 무엇에 피로를 느끼고 있는지를 정확히 짚는다.

물론 이 포맷이 한국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학폭, 범죄, 과거의 일탈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피해자가 존재할 수 있는 과거를 서사로 소비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분명하다. 출연자의 과거가 재조명되는 순간, 프로그램은 예능이 아닌 논쟁의 장으로 옮겨진다.

그럼에도 ‘불량 연애’가 국경을 넘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과거 자체를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묻는 질문은 하나다. “어두운 터널을 거쳐온 한 인간이 어떤 태도로 사랑하고 있는가.” 단순히 불량배의 연애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관계를 배워가는 과정이 함께 담긴다. 출연자들이 아동 식당 봉사에 참여하고, 아이들에게 온기를 나눠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장면은 왠지 모를 뭉클함을 선사한다.

‘불량 연애’를 보다 보면 우리가 왜 이렇게 계산된 연애 서사에 익숙해졌는지를 자연스럽게 자문하게 된다. 누군가의 거친 진심보다 정제된 호감 표현에서 더 큰 안전함을 느끼게 된 지금의 풍경 역시 돌아보게 된다. 이 프로그램을 응원하는 이유는 범람하는 연애 예능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정의 초심을 다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격적인 콘셉트로 출발한 ‘불량 연애’는 결국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남긴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그리고 당신은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냐고.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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