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3분의 1 토막” 부동산 한파 5년째… 베이징 랜드마크도 텅텅[박세희의 ‘차이나 스캔’]

박세희 특파원 2025. 12. 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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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희의 ‘차이나 스캔’ - 위기의 ‘부동산 시장’
先분양 안 팔리자 ‘後분양’ 전환… 매수심리 여전히 꽁꽁
10월 주택 판매량 전년比 42%↓… 상가도 한 집 걸러 공실
건설사 ‘완커’ 마저 흔들… 中정부 지원 없다면 뉴노멀 될 수도
중국 베이징 둥청구의 랜드마크 ‘갤럭시소호’ 내 텅 빈 상점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베이징 = 글·사진 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헝다(恒大), 비구이위안(碧桂園)에 이어 최대 부동산 업체인 완커(萬科·Vanke)까지 흔들린다. 중국 정부는 2026년을 부동산 안정화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여러 대책을 내놨다. 새해는 중국 부동산 안정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3분의 1 토막 난 집값에 얼어붙는 매수심리 =지난 28일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의 한 쇼핑몰 1층에 마련된 아파트 분양사무소 직원은 “이미 완공돼 있어 안전하다. 즉시 입주가 가능하다”고 연거푸 언급했다. 공원 바로 옆 아파트 단지, 편리한 교통망, 학교와 가까운 입지임과 동시에 이미 완공된 상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5년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다수 부동산 개발사들의 공사 중단 및 인도 지연이 반복된 데 따른 반작용이다.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그동안 아직 완공되지 않은 주택을 먼저 분양해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공사 자금을 조달한 뒤 완공 후 인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해당 방식으로 피해를 입는 입주 예정자들이 대거 발생했고, 이에 따라 최근에는 주택을 완공한 뒤 분양하는 ‘완공 후 분양’ 방식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얼어붙은 매수 심리 탓에 해당 분양사무소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5년 넘게 이어지는 부동산 위기는 중국 시민들 삶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한창 상승했던 2018년 허베이(河北)성 동부 친황다오(秦皇島)시에 아파트를 구입한 리(李) 씨는 “지금 우리 아파트 가격은 구입한 가격의 3분의 1 정도”라면서 “나를 포함해 많은 지인이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러려니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의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2020년 이후 급속도로 내려앉았고 내리막의 정도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분석에 따르면 중국 70개 도시의 신규 주택 가격은 11월 기준 전년 대비 2.4% 하락했다. 베이징(-2.1%), 광저우(廣州, -4.3%), 선전(-3.7%) 등 1선 도시(주요 대도시)들의 부동산 가격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하락은 29개월 연속으로, 2년 반 넘게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부동산정보공사가 10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0대 건설업체의 신규 주택 판매량도 지난해 동기 대비 약 42% 급감했다. 차오양구에서 10년 넘게 부동산을 해온 한 관계자는 “부동산은 심리 아닌가. 계속 가격이 내려가다 보니 집을 사려는 사람이 아예 사라지고 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역시 한파다. 27일 둘러본 베이징 둥청(東城)구의 랜드마크 ‘갤럭시소호(SOHO)’는 두 집 걸러 한 집꼴로 공실이 있을 정도로 휑한 모습이었다. 갤럭시소호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베이징 중심가의 랜드마크 중 한 곳으로, 주변에는 외교부 등 정부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유동 인구가 적지 않은 곳이지만 2∼3층뿐만 아니라 입지 좋은 위치에 있는 1층 상가도 공실이 많았다. 갤럭시소호 2층의 한 베이커리 주인은 “7년째 이곳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데 경기가 안 좋다 보니 공실이 많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요즘 공실이 더 많아졌다”면서 “임대인이 임대료를 낮춰준 점은 좋지만 상가 자체에 활력이 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부동산 컨설팅 기업 CBRE에 따르면 중국 전역 오피스 공실률은 올해 1분기 기준 23.5%에 달한다. 임차 수요가 부진하면서 명목임대료 지수의 하락 속도도 이전 분기 대비 2.9% 빨라졌다.

차오양구의 쇼핑몰 한편에 마련된 아파트 단지 분양 사무소. 손님이 없어 한적한 모습이다.

◇中 부동산 지속적 하락세… ‘뉴 노멀’ 되나 =헝다, 비구이위안에 이어 완커도 디폴트(채무상환불이행) 위기에 몰리면서 시장 불안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완커가 내년 말까지 갚아야 할 부채는 134억 위안(약 2조7000억 원) 수준, 이자부 부채 규모는 3643억 위안에 이른다. 일단 채무이행 의무 유예기간이 연장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디폴트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완커는 특히 국유기업인 선전메트로가 최대 주주라는 점에서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인식돼왔지만 이러한 완커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은 더욱 커진 모양새다.

중국 정부는 새해 부동산 시장 부양을 주요 목표로 삼고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달 10∼11일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는 내수 촉진과 함께 부동산 리스크 해소를 내년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신규 주택 공급 제한과 기존 중고 주택 활용, 개발업체 사업 전환 지원 등을 할 방침이다. 베이징,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들도 잇따라 부동산 시장 부양 정책을 내놓고 있다. 먼저 베이징시가 최근 주택 구매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내놨다.

이 같은 조치들이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모건 스탠리의 중국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로빈 싱은 블룸버그 통신에 “더 과감하고 새로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다면 부동산 경기 침체는 2027년 또는 그 이후에나 바닥을 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클레이즈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중국 부동산 시장의 지속적인 하락세는 부동산과 거시 경제, 노동 시장, 그리고 디플레이션 사이의 부정적인 악순환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중국의 부동산 위기는 ‘언젠가 끝나는’ 게 아니라 ‘위기의 성격이 바뀌는’ 시점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통 부동산 거품 붕괴가 시작된 후 정상화까지 수년이 걸리고 이 시기를 지나면 위기의 성격이 변화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7∼2028년 이후 거래가 정체되고 가격은 안 오르며 관심도도 하락하는 ‘뉴 노멀’(새로운 정상) 단계로 진입할 거라는 전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앨릭스 로 칼럼니스트는 “중국의 부동산 침체는 오래 갈 것”이라면서 “투자자와 정책 입안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구조적 재편’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침체 SNS 게시글… 검열·단속 나선 中 정부
1만7000건 적발 삭제 조치

중국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는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으로 평가된다. 이에 중국 정부는 부동산 시장과 관련한 여론 동향을 면밀히 관리하며, 온라인상 허위·과장 정보에 대한 단속과 검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北京)시 주택건설위원회는 공안국 등 관계 부처와 함께 더우인(두音), 샤오훙슈(小紅書) 등 주요 SNS 플랫폼 담당자들을 불러 공동 면담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면담의 주제는 부동산 분야의 온라인 혼란 억제와 온라인 생태계 관리 강화에 관한 것으로, 위원회는 일부 SNS 계정들이 베이징 부동산 시장 침체를 과장해 전하고 시장에 공황을 조장하며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등 시장 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해당 플랫폼들은 자체 점검을 통해 불법적이고 유해한 정보 1만7000여 건을 적발해 2300개 이상 계정을 조치했다고 펑파이(澎湃) 신문은 전했다.

앞서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 상하이(上海) 지부도 부동산 관련 온라인 콘텐츠를 규제하는 ‘특별 캠페인’을 통해 샤오훙슈와 빌리빌리(bilibili)에서 4만 건 이상의 게시물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규정 위반을 이유로 관련 계정 7만여 개도 제재했다. 당국이 통계 데이터 비공개를 요구하기도 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 주택 규제 당국은 중국부동산정보(CRIC)와 중국지수연구원에 ‘추후 통보가 있을 때까지 상위 100대 개발사의 매출 합산 공개를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당국의 이러한 단속은 부동산 부문에 관한 온라인상의 공포나 불만 표출이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당국의 우려를 드러낸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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