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김부장’의 불안은 모두의 이야기다[IGM의 경영전략]

한경비즈니스 외고 2025. 12. 3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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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 쏘아 올린 공의 여파가 꽤 크다. 리더십 강의나 코칭 현장에서 많은 리더들이 이 드라마를 언급하고 있다. 드라마 속 특정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선배이자 친구의 이야기이고 결국은 내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삶의 절반쯤을 살아온 시점에서 과연 회사를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까. 막막하다. 그렇다면 사회생활 초입에 있는 김 사원과 김 대리는 과연 안심해도 될까. 요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질문이 있다. 과연 내 일자리는 안전한가?

◆AI 발전과 리더의 역할

일자리를 둘러싼 가장 큰 변수는 기계(로봇 포함)와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이다. 최근까지는 우리의 효율을 높여주는 편리한 도구로 여겨졌던 기술이 이제는 인간의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최근 만난 한 기업의 대표는 3년 안에 30명을 채용할 계획을 20명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나머지 10명분의 업무는 이제 AI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AI 활용을 위해 “이 일을 과연 사람이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해 왔는데 이제 그 답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이 느끼는 커리어 불안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2025년 경력과 관련된 국내외 설문들을 살펴보면 응답자의 73%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안정적인 직업은 없다”, 72%는 “자신의 커리어 방향에 대해 확신이 없다”고 느낀다고 답한 부분이 있었다. “10년 후 기술이 내 일자리를 대체할 것 같다”고 전체의 65%가 답한 항목도 있었다. 

당연하지 않을까? 오히려 이런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더 이상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주목할 만한 응답도 있었는데 72%의 응답자가 “현재의 업무가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 부분이었다. 앞의 세 가지 응답은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적 요인이지만 마지막 응답만큼은 개인과 조직이 어느 정도 개입하고 바꿀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직장인이 생각하는 ‘성장’의 의미부터 다시 살펴보자. 2022년 SK행복아카데미가 실시한 ‘성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43.6%는 전문성과 역량을, 23.4%는 자신의 시장 가치를, 19%는 다양한 업무 경험을 꼽았다. 

반면 승진을 언급한 비율은 13.9%에 그쳤다. 요즘 구성원들이 승진에 예전만큼 매력을 느끼지 않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경쟁력 없는 직장인’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 해답은 이 조직 안에서 전문성을 갖춘 ‘직업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조직과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구성원이 좋은 포트폴리오를 쌓아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경력개발 이론 중 ‘포트폴리오 경력개발 모형’이 있다. 이는 개인이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적극적으로 조합·확장하며 자신의 경력을 가치와 선택에 따라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덕업일치’ 역시 포트폴리오 경력이 지향하는 모습일 수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진 지금 경력의 안정성은 더 이상 고용 보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 안팎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이동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 전문성의 확보와 확장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구성원들이 현재의 업무를 통해 어떤 전문성을 기르고 어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 분명히 인식하도록 도와야 한다. 원온원 미팅에서 경력개발 주제가 빠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리더들은 경력개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고 구성원이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준비된 직장인의 특징

HR 부서의 역할도 달라진다. 단순히 교육 과정을 설계·운영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의 발전과 개인의 경력개발을 함께 설계하고 연결하는 기능이 요구된다. 최근 많은 조직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학습 커뮤니티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학습 커뮤니티는 개인의 자발적 학습과 경험 공유를 촉진하는 효과적인 매개체다. 어쩌면 이제 조직은 개인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재정의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으로는 구성원이 ‘다가올 변화에 준비된 직장인(Future-ready Worker)’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Future-ready Worker란 AI, 데이터, 클라우드, 자동화 도구 등 디지털 기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생산성은 물론 의사결정력과 창의성까지 확장할 수 있는 인재를 의미한다. 

이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 조직이 정해준 경로가 아니라 개인화된 성장 계획을 가지고 있고, 디지털 도구를 적극 활용해 자신의 생산성을 높이며, 역할과 책임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한다. 또한 현재의 직위와 무관하게 리더십 잠재력을 축적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러한 경험을 위해 조직에서는 실제 업무에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자동화, AI 활용 프로젝트를 경험하게 만들고 부서 간 협업, 문제 해결 중심 프로젝트에 디지털 툴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단순 학습이 아닌 실제 성과 창출에 연결시키며 성장을 강하게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포트폴리오 경력 완성과 Future-ready Worker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이다. 학습 민첩성이란 새로운 상황에서 빠르게 배우고 그 배움을 실제 행동과 성과로 전환하는 능력을 말한다. 단순히 지식이나 경험의 양이 아니라 낯선 문제 앞에서 자신을 얼마나 빠르고 깊이 있게 업데이트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학습 민첩성은 타고나는 성향이라기보다 훈련 가능한 영역이다. 우선 정답을 찾기보다 가정을 시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맞다”에서 “내 생각을 검증해보자”로 전환하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서 빠르게 배우는 사람은 의견을 내되 그것을 쉽게 내려놓을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습관은 경험을 해석하는 것이다. 학습 민첩성이 높은 사람은 일이 끝난 뒤 반드시 경험을 되짚는다. 무엇이 예상과 달랐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나의 가정은 무엇이었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를 질문하며 학습을 만든다. 바쁜 사람 혹은 조직일수록 이 짧은 복기가 능력의 격차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순환보직과 프로젝트 이동을 학습 장치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돌리는 인력 운용의 관점에서 벗어나 경험을 설계하는 학습의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학습 민첩성을 키우는 이동을 위해서는 이전 역할과 의도적으로 다른 맥락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동 전에는 “이번 이동에서 무엇을 학습하고 검증할 것인가”를 명확히 하며 이동 후에는 성과보다 적응 과정에 대한 리뷰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잘하는 능력보다 아직 모르는 것을 배우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소일 것이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인기 그룹 god의 노래 ‘길’의 가사다. 시간이 흘렀지만 요즘 직장인들의 마음에도 와닿는, 꼭 필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데 오늘의 칼럼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임주영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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