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형 위성 84기 띄워…전세계 관측 목표"
자체개발 '옵저버-1A' 성공 후
경기도와 협업 '경기샛-1' 안착
군집 위성 시스템 구축 추진
위성이 보내온 영상을 보고
전세계 항만 물동량 읽어내
경제지표 미리 예측 가능
산불 등 재난현장 포착할 것

"언젠가 우주에 가게 된다면, 제 손에는 초소형 위성들이 들려 있을 겁니다. 그걸 우주 공간에 하나씩 놓고 오고 싶어요. 초소형 위성들로 지구촌 곳곳의 모습을 한 시간 단위로 '새로 고침'하는 데이터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연말 분위기가 완연한 서울 광화문에서 박재필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대표를 만났다. 그의 표정에는 미래에 대한 설렘과 무거운 책임감이 교차했다. 척박한 한국에서 뉴스페이스 시대(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우주 시대)를 개척해 온 그에게서는 지난 17일 마침내 상장이라는 궤도에 진입하며 꿈꾸던 우주 비즈니스를 본격화할 수 있게 된 설렘, 동시에 수천 명 주주의 자산을 책임져야 하는 상장사 대표로서의 무게감이 묻어났다.
박 대표의 '위성을 놓는다'는 표현은 은유나 낭만이 아니다. 수십억 원에서 수조 원이 필요하던 거대 위성의 시대를 지나 수억 원대의 초소형 위성을 수십 기씩 띄워 '군집 위성'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나라스페이스는 100㎏ 이하의 초소형 위성을 제작하고, 위성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까지 아우르는 초소형 위성 토털 솔루션 기업이다. 연세대 천문우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던 박 대표가 2015년 창업했다. "초기에 '한국에서 무슨 우주냐. 그것도 스타트업이'라는 비아냥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굳게 믿었죠. 우주는 더 이상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요."
창업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나라스페이스는 초소형 위성을 설계·제작하는 하드웨어 역량뿐만 아니라, 위성이 궤도에서 보내오는 영상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고부가가치 정보로 가공하는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확보했다. 이른바 초소형 위성 산업의 '엔드 투 엔드' 솔루션을 갖춘 셈이다. 기술력 역시 궤도 위에서 입증했다. 지난해 자체 개발한 '옵저버-1A'를 발사해 성공적으로 운용 중이며, 최근에는 경기도와 협력한 '경기샛-1'까지 안착시켰다. 박 대표는 "우리는 단순히 위성이라는 기계를 만드는 제조사가 아니라, 우주에서 얻은 정보를 비즈니스 자산으로 전환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위성이 보내온 영상을 보고 전 세계 항만의 물동량 변화를 읽어내 경제지표를 예측한다든지, 산불이나 홍수 같은 재난 현장을 실시간으로 포착해 대응하는 등 공공과 민간 모두에 강력한 의사 결정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그간의 성과들은 척박한 국내 우주 생태계에서 묵묵히 버텨온 시간의 산물이다. 박 대표는 2018년 뜻이 맞는 젊은 우주 창업가들과 함께 '스페이스 마피아'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의 '페이팔 마피아'처럼 끈끈한 결속력으로 기존 우주 산업의 문법을 파괴하겠다는 도발적 의지가 담겼다.
맏형인 박 대표와 20대였던 신동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 이성문 우주로테크 대표, 조남석 무인탐사연구소 대표 등이 멤버다. 민간 주도의 우주 개발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 "사기꾼 아니냐"는 냉소 섞인 시선 속에서 서로의 멘탈을 지탱해주던 개척자들의 생존 공동체였다.
박 대표는 "코스닥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한국 우주 스타트업도 자본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면서 "나와 동료들이 품었던 비전이 허상이 아니었음을 자본시장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성적표'라는 점에서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이제 박 대표의 시선은 2031년을 향하고 있다.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자체 위성 양산 설비를 구축하고 해외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최종 목표는 총 84기의 위성을 띄워 전 세계 어디든 1시간 주기로 관측 가능한 군집 위성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박 대표의 뒷모습에서 우주를 꿈꿨던 소년의 열정과 수천 명의 주주를 등에 업은 경영자의 무게가 동시에 느껴졌다. "상장은 끝이 아니라, 더 먼 우주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실탄을 확보한 궤도 진입일 뿐입니다." 스페이스 마피아의 맏형은 그렇게 다시 자신의 궤도로 돌아갔다.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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