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투사' 안성례 전 관장 별세…민주화의 길을 밝히다

박선강 기자 2025. 12. 2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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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현장서 생명 지켜낸 헌신
구속자 가족협의회 회장 활동
광주시의원으로 약자 권익 확대
광주정신 세계로 확장한 지도자
안성례 오월어머니집 설립자가 오월 어머니들의 한(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광주의 어머니'이자 5·18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인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지난 28일 향년 8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고인의 삶은 단순히 격동의 시대를 견뎌낸 수동적인 피해자의 삶이 아니었다. 그는 역사의 고비마다 결단했고, 행동했으며 치유의 길을 열어낸 개척자였다. 의료 현장에서 시작된 그의 헌신은 거리의 투쟁으로, 제도권 정치로, 그리고 공동체의 치유로 확장되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행동하는 양심'… 의료인에서 민주화 투사로
안 전 관장은 1938년 11월 19일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57년 전남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병원 간호사로 근무했다.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 간호감독이었던 안 전 관장은 의료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사명감을 실천했다. 당시 그는 계엄군의 통제와 압박 속에서도 병원 의료진을 진두지휘하며 환자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데 모든 것을 쏟았다. 특히 혈액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들에게 헌혈을 호소해 '피 나눔'이라는 5·18의 숭고한 대동 정신을 이끌어낸 주역이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1980년에 멈추지 않았다. 항쟁 이후 그는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남편이자 평생의 동지였던 故 명노근 전남대 교수가 5·18 주동자로 몰려 투옥과 해직을 반복하는 동안, 안 전 관장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시에 '구속자 가족협의회'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독재 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다.

1980년대 내내 그는 교도소와 법정, 그리고 최루탄이 자욱한 거리를 오갔다. 억울하게 잡혀간 학생과 시민들을 위해 탄원서를 쓰고, 석방 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민주화 운동 진영에서 안성례라는 이름은 든든한 '어머니'이자, 결코 타협하지 않는 '강철같은 여성'을 상징했다. 그는 개인의 안위를 뒤로한 채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앞장섰으며, 이러한 그의 헌신은 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 쟁취의 밑거름이 되었다.

제도권으로 확장된 오월 정신… 여성·복지 전문가로
1990년대,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자 안 전 관장은 '오월 정신의 생활화'를 목표로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다. 1991년 초대 광주시의회 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후 재선에 성공하며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에 기여했다. 그의 의정 활동은 단순한 정치 행위가 아니었다. 거리에서 외쳤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실제 조례와 정책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이었다.

그는 특히 여성과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정책 수립에 주력했다. 가부장적인 지역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의원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와 권익 신장을 위한 다양한 의제를 공론화했다. 시의원 시절 그가 보여준 꼼꼼한 행정 감시와 대안 제시는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 정치인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이 시기에도 5·18 진상 규명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광주가 민주 인권 도시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행정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오월어머니집' 설립…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완성
안 전 관장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는 단연 2006년 사단법인 '오월어머니집'의 설립이다. 그는 5·18 이후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정신적 고통(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유가족과 여성 피해자들의 현실에 주목했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각자의 고통 속에 고립되어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그는,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초대 관장을 맡은 그는 사재를 터는 헌신과 열정으로 오월어머니집을 단순한 쉼터가 아닌 '치유와 역사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그는 오월어머니집을 통해 캄보디아, 미얀마 등 아시아 국가의 민주화 운동 피해 여성들과 연대하며 '광주 정신'을 세계로 확장했다. 광주의 어머니들이 겪은 아픔을 승화시켜, 세계의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인권 운동의 거점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이는 안 전 관장이 가진 통찰력과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다.

87년의 헌신, 별이 되어 지다
평생을 자신보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헌신해 온 안성례 전 관장은 노년에도 오월어머니집을 지키며 방문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전하는 데 힘썼다.

유족으로는 아들 명윤석씨와 딸 혜원·규원·지원(전 광주트라우마센터장)·진(광주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광주천지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0일 오전 11시30분, 장지는 국립5·18민주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