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파리협정 10년의 증명… 해답은 실용적 생태주의
2024년 1월 29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전국농민연맹(FNSEA) 주도로 농민들이 트랙터 1000대를 몰고 나와 파리로 진입하는 ‘파리 포위(Siege of Paris)’ 작전을 펼쳤다. 이들은 “(에마뉘엘) 마크롱의 환경 규제가 우리를 죽인다”고 외쳤다. 시위는 2월 1일 벨기에 브뤼셀로 번졌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열린 유럽의회 앞 광장에서 농민들이 타이어를 태우고, 1300대의 트랙터로 도시를 마비시킨 것. 시위대는 “규제가 아니라 빵을 원한다”고 소리쳤다. 2월 6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농민 시위 등에못 이겨 유럽 그린 딜의 핵심 법안이었던 ‘살충제 사용 50% 감축 법안(SUR)’을 공식 철회했다. 이는 환경보호를 최우선시했던 유럽이 정치적 반발에 밀려 환경 규제를 스스로 꺾은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유럽 내 녹색 반발(Green Backlash)과 극우 포퓰리즘의 목소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이하 파리협정) 10년이 지난 2026년에도 지속하고 있다. 필자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후 위기를 막는 일이 생계를 위협해선 안 된다”는 대중의 불만에 정면으로 응답한다. 그는 무조건적인 규제나 탈성장을 반대하고,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 녹색 재산업화를 통해 경제성장과 기후 대응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는 거세지고 있는 녹색 반발을 잠재우고, 유럽식 기후 모델의 유효성을 지켜나가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파리협정을 맺은 지 10년이 지났다. 당시 전 세계 195개국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고, 나아가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는 이 위대한 협력과 보편적 연대의 순간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전력을 다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간의 성과가 자랑스럽다.
프랑스는 2024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30% 줄였다. 특히 2017~2024년에 20%를 감축했는데, 2017년 이전에 는 연간 감축률이 1%에도 미치지 못했다. 2017~2021년에는 연평균 2% 이상, 2022~ 2024년에는 연평균 4% 이상 감축률을 달성했다. 목표는 2030년까지 배출량을 50% (1990년 대비) 줄이는 것이다. 매년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를 2억7000t 줄일 계획이다.

프랑스의 녹색 성과는 사회 전체가 이뤄낸 것이다. 경제 발전과 환경보호, 배출량 감축과 고용 창출을 동시에 추구한 생태학적 접근 방식이 거둔 결실이다. 프랑스는 접근 가능한 대안을 내지 않은 채로 규제만 강요하지 않는다. 경쟁력을 희생하는 선택도 거부한다. 프랑스의 목표는 ‘주권’과 ‘고용’ ‘탈탄소화’를 함께 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선택이 명확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나는 경제·기획·에너지·농업· 산업 등 모든 국정 운영의 핵심에 ‘생태계’를 뒀다. 또 총리에게 생태·에너지 계획 수립을 직접 책임질 것을 지시했다. 2025년 12월 12일 발표한 ① '국가 저탄소 전략(SNBC· Stratégie Nationale Bas-Carbone)'이 대표적이다. 이 전략은 정책 전반에서 프랑스의 탄소 중립을 이끌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다.
프랑스는 녹색 정책에 여섯 가지 핵심 원칙을 두고 있다. 첫 번째, 과학을 존중하고 보호한다. 프랑스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 합의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IPCC는 2025년 12월 1일 제7차 평가보고서(AR7) 작성에 착수했고, 모든 집필진(기후 학자·과학자 등)과 첫 회의를 파리에서 열었다. 프랑스는 연구개발기본법(LPR·Loi de programmation de la recher-che)과 ‘프랑스 2030’ 프로그램을 통해 소형모듈원자로(SMR), 저탄소 수소, 지속 가능 연료, 수자원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백 개의 실용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과학적 진실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진 현재, 이 분야 투자를 가속하고, ‘과학을 위한 프랑스의 선택(Choose France for Science)’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최고 연구자를 계속 유치할 것이다.
두 번째, 수입 화석연료 의존을 끊는다. 프랑스는 국가적 자립과 기후 보호의 동시 실현을 위해 탈탄소화된 자립형 에너지 체계를 선택했다. 나는 2022년 벨포르(Befort)에서 화석연료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원자력발전 재도약이라는 3대 축을 제시했는데,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4년 기준 프랑스는 전력 95% 이상을 청정에너지로 생산하며, 2050년까지 해상 풍력발전 단지를 조성할 구역도 확정했다. 원자력산업을 재건해 신규 EPR2(European Pressurized Reactor 2·유럽형 가압 경수로) 원자로 6기 건설과 자금 조달을 시작했다. 2027년까지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소로) 전환할 계획이다.
세 번째, 산업 탈탄소화를 지원한다. 지난 3년간 프랑스의 녹색 투자는 약 30% 증가했고, 2024년 신규 공장 3분의 1은 친환경 산업 분야였다. 국가 탄소 배출량 약 10%를 차지하는 50개 주요 산업 단지에 대한 탈탄소화도 착수했다. 이들 시설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일 것이다. 이런 친환경 산업은 프랑스 전역에서 일자리를 만든다. 전기차, 배터리, 히트 펌프, 태양광발전 패널을 전국에서 생산할 것이다. 이런 노력을 유럽 차원으로 확장해 불공정 경쟁에서 산업을 보호하고, 규제를 간소화해야 한다. EU 집행위원회가 향후 진정한 ‘유럽 우선 원칙(European preference)’을 바탕으로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네 번째, 사람을 위한 발전을 지속한다. 생태계 보호는 일상을 개선해야 한다. 주택을 개조하면 에너지 비용을 줄이고, 국가 화석연료 의존을 낮추며, 삶의 질을 높인다. 이런 변화를 실현하려면, 구매력과 형평성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프랑스는 ‘사회적 리스(Social Leasing)’ 프로그램을 통해 2024년에만 저소득 5만 가구가 월 100유로(약 17만원) 미만의 비용으로 전기차를 구입하도록 지원했고, 2025년에도 5만 가구에 혜택을 제공했다. 또 주택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② '마프림레노브(MaPrimeRénov)' 등을 통해 녹색 전환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선택이 되도록 했다. 생계를 걱정하느라, 지구 종말을 앞당기는 선택을 강요해선 안 된다. 다섯 번째, 기후변화에 적응한다. 기후변화는 이미 현실이 됐고, 가속하고 있다. 프랑스는 2025년 3월 10일 세 번째 ‘국가 기후 적응 계획(PNACC·Plan national d'adaptation au changement climatique)’을 채택하고, 지역부터 국가 차원의 모든 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경로를 수립했다.
여섯 번째, 유럽과 세계로 투쟁을 확장한다. 유럽은 2050년 탄소 중립이 목표인 야심 찬 대륙이자, 최대 기후 재원 제공자며, 프랑스는 파리협정과 글로벌 기후 목표를 지키는 수호자로 역할하고 있다. 2017년 ‘원 플래닛 서밋(One Planet Summit)’을 출범시켜 20개의 구체적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프랑스의 노력은 유엔의 ③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 다양성 프레임워크(GBF·Kunming- Montreal Global Biodiversity Framework)' 와 ‘공해(公海) 조약(Agreement on 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 채택을 이끌었다. 여기에 플라스틱 오염 방지(40억유로), 생물 다양성 및 식량 안보(190억유로)를 위한 자금을 조달했다. 프랑스는 모든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며,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파트너십(JETP)’을 지원한다. 이것이 내가 브라질에서 열린 COP30을 앞두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파리협정 이후 지난 10년은 성과와 야망의 시기였다. 동시에 국제적 긴장은 고조됐고, 과학을 불신했으며, 국제사회가 분열한 시기였다. 민족 간 자유와 박애라는 보편적 이상을 지우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프랑스는 과학에 대한 존중, 산업적 야망, 진보와 연대, 유럽의 리더십을 지침 삼아 기후와 지구를 지키는 투쟁을 지속해 왔다. 다가오는 10년을 모두 성공하는 시기로 만들자. 10년 전 파리에서 한 약속을 충실히 지킨다면 우리는 해낼 수 있다.
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프랑스의 국가 차원 로드맵. 5년 단위로 탄소 예산을 설정해 교총, 농업, 주택 등 각 부문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법적으로 제한한다.
② 프랑스 정부가 운용하는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보조금 제도. 낡은 집의 단열재를 교체하거나 친환경 난방 장치를 설치할 때 공사비 일부를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서민 난방비 부담을 줄이고, 건물 부문의 탄소 배출을 낮추기 위한 기후 정책이다.
③ 2022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생물 다양성 당사국총회(COP15)에서 채택된 합의. 기후변화 대응에 파리협정이 있다면, 생물 다양성 보전에는 GBF가 상징적이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지와 해양의 최소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30 by 30’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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