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곳간 비어가는데 '탈모 치료' 검토? 인기와 미래의 괴리
탈모와 건보 고갈론의 함수 1편
대통령 ‘탈모 치료’ 건보 적용 언급
높아진 건보 적립금 고갈 가능성
2033년 65.8조원 적자 예상돼
건보 보험료 현실화해야 하지만
법으로 묶어둔 보험료율 상한선
국민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아
![건강보험은 국민의 건강 증진과 사회보장을 확대하기 위해 만든 사회보험제도다.[사진|뉴시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9/thescoop1/20251229125548336pfkf.jpg)
# 탈모 치료가 때아닌 '건강보험' 논란의 복판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월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을지 살펴보라'고 지시하면서다. 여론은 엇갈렸다. 한편에선 "탈모 인구 1000만 시대에 필요한 정책"이란 옹호론이 쏟아지지만, 다른 한편에선 "한가하게 탈모 치료를 운운할 때냐"는 반론이 나온다.
#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했든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사실 후자다. 건강보험 적립금이 머지않아 고갈될 게 분명해서다. 바닥을 드러내는 건강보험의 곳간을 채울 방법도 마땅치 않다. 건강보험료율을 올리는 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고, 정부 지원금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의 전망대로 건강보험금 적립금이 고갈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희귀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마지막 기댈 언덕마저 잃을 수 있다는 건 생각하기 싫은 미래다.[※참고: 이 대통령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희귀질환 치료 문제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치료·진단·복지·지원 전반에 걸친 개선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긴 했지만, 건보 고갈론이란 난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라'는 발언은 적절했던 걸까. 대국민 업무보고를 위한 자리였다면 '건강보험 고갈론의 위험성과 대책'을 살펴보는 게 마땅하지 않았을까. 탈모와 건강보험 고갈론의 엇갈린 함수를 취재했다.
"탈모도 병의 일부 아닌가.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쓴다고 하더라. 혹시 검토해봤나. 옛날에는 이거(탈모)를 미용으로 봤지만 요즘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 검토라도 해보면 좋겠다(이재명 대통령 2024년 12월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
이재명 대통령의 탈모 건강보험 지급 발언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탈모 치료 지원을 찬성하는 측에선 "우리나라 탈모인이 1000만명에 육박한다는 걸 감안하면 적절한 조치"라고 말한다. 반대편에선 "탈모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건 과도하다"고 맞선다.
![이재명 대통령의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해 보라는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사진|뉴시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9/thescoop1/20251229125549709kikm.jpg)
보건복지부는 논란을 의식한 듯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17일 "유전적인 요인으로 생기는 탈모의 경우에는 의학적인 치료와는 연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건강보험 급여를 하지 않고 있다"며 "급여의 적용 기준과 타당성,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봐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 건보 재정 괜찮나 = 이 대통령의 '탈모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이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할지를 논할 만큼 넉넉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보험 적립금 고갈론은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도대체 건강보험건보의 곳간 사정은 어느 정도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건강보험의 구조부터 살펴봐야 한다. 건강보험은 연금을 쌓아놓는 국민연금과 운용 방식이 다르다. 국민연금은 '연금기금'이란 금고에 돈을 적립하고, 필요한 만큼만 꺼내 수령자에게 지급한다. 국민연금의 적립금이 고갈됐다는 건 수령자에게 줄 연금이 아예 없다는 뜻이다.
반면, 건강보험은 한해 걷은 보험료를 그해 쓰는 구조다. 받은 보험료만큼 사용한다는 거다. 그래서 건강보험 적립금(준비금)의 의미도 국민연금과 다르다. 건강보험은 그해 쓰고 남은 돈을 보험금이 부족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 '예비비'로 쌓아둬야 하는데(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 시장에선 이 적립금을 '준비금'이라고 부른다.
이번엔 건강보험이 어떤 재원으로 구성돼 있는지 살펴보자. 건강보험금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 국고지원금, '담뱃세'에서 일부를 떼는 건강증진부담금, 기타수입(자산운영수입·징수금수입 등)으로 이뤄져 있다. 2024년 기준 보험료 수입이 전체의 84.7% 가장 많았고, 국고지원금과 담배부담금이 각각 10.3%, 1.9%를 담당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적립금 규모는 얼마나 될까.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4년 건강보험 적립금은 29조7221억원이었다. 2024년 건강보험의 월평균 지출액이 8조1135억원(전체 97조3626억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건강보험공단이 아무런 수입을 올리지 못해도 적립금만으로 3.6개월치의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 적립금 고갈론의 근거 = 문제는 이처럼 쟁여놓은 건강보험 적립금이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4년 10월 발표한 '의료개혁과 비상진료대책을 반영한 건강보험 재정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5년 9000억원인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2026년(-5000억원)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강보험 적립금은 2030년(-9000억원)부터 적자를 기록해 2033년엔 –65조8000억원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뉴시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9/thescoop1/20251229125551011rsir.jpg)
새 정부도 지난 9월 발표한 '제3차 장기재정전망(2025~2065)'에서 건강보험 적립금이 2026년 적자로 돌아서 2033년 적립금을 모두 소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공교롭게도 그 징조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2024년 건강보험료 당기수지는 1조7244억원으로 2023년(4조1276억원) 대비 58.2% 감소했다.
문제는 건강보험 적립금 고갈이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보험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급증하는 데 건강보험료를 부담하는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고갈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명목상 답은 간단하다. 보험료를 올리든지, 국고지원금을 늘리든지, 건강증진부담금을 확대하면 된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언급했듯이 건강보험은 걷은 만큼 쓰는 구조다. 많이 쓰기 위해선 보험료를 많이 걷어야 한다는 건데, 그리 간단치 않다. 국민건강보호법에서 보험료율의 상한을 설정해 놓고 있어서다. 법 제73조에 따르면 직장인 가입자의 보험료율은 8% 이내에서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처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2025년 8월 2026년 건강보험료율을 기존 7.09%에서 7.19%로 0.1%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건강보험료율이 상한선에 바짝 다가섰다는 얘기다. 상한선을 높이려면 국민건강보호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건강보험료 인상을 반대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게 변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25년 8월 실시한 '국민건강보험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현재 소득 대비 건강보험료의 수준을 묻는 질문에 전체의 77.6%가 부담된다고 답했다. '매우 부담된다'와 '다소 부담된다'는 각각 25.3%, 52.3%를 기록했다. 국민의 10명 중 8명이 건강보험료가 부담스럽다고 답한 셈이다.
당연히 건강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응답자의 80.3%가 건강보험료율 인하(35.1%) 또는 동결(45.2%)을 요구했다. 건강보험료율 법정 상한선(8% 이내)을 개정하는 문제를 두고도 '부정적'이라고 답한 이가 54.1%에 달했다(긍정적 32.3%).

이처럼 건강보험료율의 법정 상한선을 끌어올리려면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정치권에서 이를 추진할 리 만무하다. 당장 2026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시작으로 2028년 4월 제23대 국회의원선거, 2030년 3월 제22대 대통령 선거 등 2년마다 굵직한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의료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비급여 항목이 많고 본인 부담률이 높다는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에 건강보험 가입자가 체감하는 보험료 부담은 더 크다"며 "건강보험 적립금이 고갈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건강보험료 인상은 가입자의 부담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직장인 건강보험의 절반을 내는 기업의 부담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경제까지 나쁜 상황에서 총대를 메고 보험료율 인상 필요성을 개진할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의 또다른 축인 국고지원금과 건강증진부담금의 상황은 어떨까. 두개 모두 불안하기만 하다. 이 이야기는 視리즈 탈모와 건보 고갈론의 함수 2편에서 이어나가보자.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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