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배우자 '업무추진비 유용' 알고도 은폐했다... 육성 녹음 공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지난 2022년 배우자의 '구의회 업무추진비 유용'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한 뒤, 증거를 삭제하도록 지시하는 등 사건을 은폐한 사실이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이런 사실이 담긴 김 원내대표의 육성 녹음 파일을 입수했다.
아무런 공적 권한이 없는 국회의원 배우자가 구의회에 배정된 세금인 업추비를 사적으로 유용한 것은 '업무상 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다. 당시 재선 국회의원이었던 김 원내대표가 배우자의 공금 횡령 의혹을 알고도 덮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은 물론 강제 수사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병기, 배우자의 '구의회 업추비 유용' 알고 있었다
뉴스타파는 최근 김 원내대표의 배우자 이 모 씨가 2022년 7월부터 최소 8월 말까지 당시 조진희 서울 동작구의회 부의장의 업추비 카드를 전달받아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을 보도했다. (관련 기사 : "사모가 썼다"... '김병기 배우자 업추비 유용' 자백 녹취 공개)
취재진이 확보한 2022년 8월 말 조 부의장과 당시 김병기 의원실 보좌 직원 A 씨 간 전화 통화 녹음 파일에 따르면, 조 부의장은 "어젯밤에 (카드 결제 내역을) 계산을 다 해봤다. 사모님(김병기 배우자)이 쓰신 게 7월 12일부터 8월 26일까지"라며 "7월 12일에 바로 (카드를) 드렸다. 8월은 내가 거의 안 썼다. 다 사모님이 썼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의 배우자 이 씨도 A 씨와 통화에서 자신이 업추비를 쓴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이 씨는 "(조진희의 업추비 증빙 자료에 적힌) 인원수는 대부분 '가라'(허위)일 것"이라며 "조진희는 진짜로 만나서 얘기를 하든지 해야지"라고 말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씨는 서울 동작구는 물론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의 한정식집, 중식당, 일식집 등에서 조 부의장의 업추비 카드를 썼다. 2022년 7월~8월까지 이 씨가 유용한 업추비는 최소 270만 원~370만 원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이 씨의 업추비 유용을 알고 있던 사람은 보좌 직원 A 씨만이 아니었다. 김 원내대표도 당시 배우자의 업추비 유용을 알고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사건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A 씨 등과 수시로 연락했다. 뉴스타파는 2022년 8월~9월 김 원내대표가 A 씨와 나눈 전화 통화 녹음 파일을 입수해 분석했다.
김병기 육성 녹음 파일 확보... 3년 전 이미 '업추비 유용' 알았다
2022년 8월 말 당시 재선 의원이었던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 사무총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이 무렵 민주당에는 '김병기 배우자가 조 부의장의 업추비 카드를 쓰고 다닌다'는 제보가 들어갔다. 그러자 당 지도부는 김 원내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2년 8월 28일, 김 원내대표는 A 씨에게 전화해 "옆에 누가 있냐"고 물은 뒤 A 씨가 "없다"고 하자 얘기를 꺼냈다. 김 원내대표는 "조진희 부의장 업추비 카드를 안사람이 쓴 것 같다. 조진희가 '이거 카드 다 쓰라'고 해서 우리 안사람이 누구 만날 때 썼나 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조진희한테 '야 너는 왜 밥 안 사냐' 그러니까, 조진희가 '나 카드 없어. 사모가 갖고 있어' 이랬나 보다. 그게 녹음이 됐다는 말이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다른 통화에서도 김 원내대표는 "(당에서는) 이 건에 대해서 보니까 '사모님이 직접 안 썼으면 무슨 문제가 되겠냐'고 했다. 그런데 우리 안사람이 일부 직접 쓴 게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당신(A 씨)한테 다 오픈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무슨 대응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날 통화에 따르면, 김 원내대표는 배우자 이 씨의 업추비 유용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김 원내대표는 A 씨와 통화에서 "우리가 식사를 하고, 조진희가 카드로 식사를 하게 해줬으면 (법에) 걸리는 거냐"고 물었다. A 씨는 "문제가 심각하긴 하다. 부의장 업추비를 엉뚱한 데에 썼으면 업무상 횡령이 될 수 있고, 범죄가 되는 거다"고 답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다시 A 씨에게 "조진희가 '이OO(배우자)가 업추비 카드를 썼다'고 말하면, 둘(조진희, 배우자 이 씨) 다 걸리는 거냐"고 물었다. A 씨는 "둘 다 걸리는 거다"고 답했다.
배우자 업추비 유용 인지 후, ‘사건 은폐’ 지시
김 원내대표는 보좌 직원으로부터 '배우자의 업추비 유용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뜻밖의 선택을 했다. 이 사건을 은폐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김 원내대표는 '조 부의장이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는 계획을 밝혔다. 8월 28일 통화에서 김 원내대표는 A 씨에게 "조진희는 자기가 다 카드를 쓴 걸로 하겠다고 한다. 이건 당연히 (배우자 이 씨가 썼다고 하면) 자기도 죽으니까. 이렇게 돼 있다"고 말했다. 사건을 덮기 위해 조 부의장과 이미 '말을 맞췄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김 원내대표는 배우자 이 씨의 업추비 카드 결제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누가 확보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관련 법에 따라 구의회 업추비 결제 내역(시간, 장소, 인원수 등)은 외부에 공개된다. 이 때문에 누군가 조 부의장의 업추비 결제 내역을 보고 해당 식당에 가면, 이 씨의 결제 모습이 녹화된 CCTV 영상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었다.
8월 28일 이어진 통화에서 김 원내대표는 "그런데 조진희가 (내가) 썼다고 말해도, 그게 실제로는 조진희가 쓴 게 아니지 않느냐, CCTV도 있고"라며 "수사 고발을 하면 (업추비 결제 내역을) 건건이 조사할 것 아니냐. CCTV고 뭐고 다 조사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음 날 통화에서도 김 원내대표는 "지금 문제가 아내가 (조진희 업추비 카드로) 밥을 먹었는지 죄다 CCTV를 얻으려고 덤벼들 텐데"라며 우려를 표했다.
결국 김 원내대표는 이틀 뒤인 8월 31일, A 씨에게 '배우자 이 씨가 업추비를 쓴 식당에 가서 CCTV를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말 것을 요청하라'며 사건 은폐를 지시했다. 아래는 관련 통화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 김병기 원내대표 : OOOOO(배우자 이 씨가 업무추진비를 쓴 식당) 그런 데는 직접 가서. 혹시라도 누가 물어보면, 의원에 대한 거 일체 제공하지 말아라. 그런 얘기를 해 둘 필요가 있을까?
● A 씨 : CCTV 영상을 누구한테 보여준다 이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그래도 한번 가볼까요? 점심 때 저희가 한번.
○ 김병기 원내대표 : 응. (CCTV 영상에) 몇 시 몇 분 뭐 이런 거 있잖아. 그러니까 여자 두 명이거든. (식당 측에) '김병기 의원실인데요. 혹시라도 CCTV 이런 거 얘기 나오고 그러면, 절대 보여주지 마셔라.'
● A 씨 : 제가 한번 가볼게요. CCTV 누가 보여달라는 사람 있느냐. 아무래도 의원님이 요즘 보안에 신경을 많이 써서 이렇게 물어본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죠?
○ 김병기 원내대표 : 그래.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상의하기로 하고.
-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 보좌 직원 A 씨 전화 통화(2022.8.31.)
몇 시간 뒤, A 씨는 김 원내대표와 통화에서 지시 사항을 이행했다고 보고했다. "사모님하고 통화해 말씀드렸다. 식당도 확인했다. 누가 확인하러 온 사람은 없었고, 자기네들은 CCTV 안 보여준단다"며 "식당 측에 '의원님께서 동석자 보안을 중요시해 물어봤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달라'고 얘기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원내대표는 "고맙다, 수고했다"고 답했다.
김병기, 보좌진에 "7월~8월 일정 기록, 다 지워라"...수사 대비 정황
이후 김 원내대표는 보좌진에게 업추비 유용 기간과 겹치는 자신의 일정 기록도 전부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2022년 9월 1일 통화에서 김 원내대표는 A 씨에게 "내가 다른 직원한테도 얘기했는데, 오늘이 9월 1일이지 않느냐. 8월 일정 다 지우라고 해라. 나와 관련된 일정 다 지우라고 해라"고 지시했다.
배우자 이 씨의 업추비 결제 기록과 자신의 동선이 겹친 적이 있어, 관련 증거를 은폐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 원내대표는 8월 22일 서울 은평구에서 열린 민주당 행사에 참석했는데, 이날 밤 10시쯤 은평구 소재 한 식당에서 조 부의장의 업추비 6만 원이 지출된 것으로 확인된다.
9월 1일 이어진 통화에서 김 원내대표는 다시 A 씨에게 "8월뿐 아니라 7월을 포함해서 이전 일정 기록도 다 지우라"고 말했다. 조 부의장의 육성 녹음 파일에 따르면, 배우자 이 씨는 2022년 7월 12일부터 최소 8월 말까지 조 부의장의 업추비 카드를 사용했다.
이 외에 김 원내대표는 A 씨에게 "영수증 계산 때문에 직전 한 달 치 일정 기록은 꼭 남겨 놓던데. 그거 백업 받지 말고, 연필로 적어서 수기로 관리하라"고도 지시했다. 대화 맥락상 업추비 유용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정 기록을 전자 문서가 아닌 종이 문서로 남기라고 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병기 배우자 업추비 사건, '육성 녹음' 추가 공개 예정
뉴스타파는 김 원내대표에게 연락해 배우자 이 씨의 업추비 유용 사실을 언제부터 알았는지, 같이 조 부의장의 업추비를 사용한 사실이 있는지, 보좌진에게 사건 은폐를 지시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김 원내대표는 답변을 거부했다.
앞서 그는 지난 26일 보도된 배우자의 업추비 유용 사건에 대해 "지난해 윤석열 정권 당시 수사기관에서 보도 내용을 포함해 모두 수사했고, 혐의 없음으로 종결한 사안이다"며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입장을 냈다. 뉴스타파는 배우자 이 씨의 업추비 유용과 관련한 김 원내대표의 육성 녹음 파일을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다.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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