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방그룹 ‘아픈 손가락’ 쿠첸, ‘이중희號’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르나

이석 기자 2025. 12. 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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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내리막길인데 공정위 조사까지…‘밥솥 명가’ 재건 계획에 ‘빨간불’
실적 부진 속 경영에서 물러난 장남 이어 차남도 리더십 타격 우려

(시사저널=이석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2022년 쿠첸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2200만원을 부과했다. 협력업체의 기술을 무단으로 경쟁사에 넘긴 게 문제가 됐다. 당시 공정위는 "단가 인상을 요구한 협력업체와 거래를 끊기 위해 몰래 기술을 유출했다"면서 쿠첸 법인과 함께 범행에 가담한 직원 A씨 역시 검찰에 고발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들을 기소하고 재판에 넘겼다. 쿠첸 측은 법원에서 "유출된 자료는 하도급 업체의 고유한 기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쿠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는 "쿠첸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협력업체 기술 자료를 유용했다. 범행의 경위와 횟수에 비춰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2025년 12월10일 쿠첸에 벌금 10억원을, 함께 기소된 A팀장과 B차장에게 각각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ChatGpt 생성이미지

쿠첸과 공정위의 악연 주목돼

주목되는 사실은 쿠첸이 최근 또 다른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생활가전 업계를 상대로 현장조사를 벌였다. 업계 전반에 만연해 있는 구두계약 관행과 대금 미지급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쿠첸이 협력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조만간 위법 여부와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제재심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가전 업계 안팎에서는 심의 결과에 따라 추가 제재는 물론, 검찰 고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2025년 9월 취임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가 하도급거래의 공정이다"면서 "쿠첸의 경우 협력업체를 상대로 한 갑질이 여러 차례 공정위에 적발된 만큼 괘씸죄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쿠첸은 최근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6년 3000억원에 육박하던 매출은 2024년 1765억원으로 반 토막이 난 상태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쿠첸은 5년 연속 매출이 역성장했다. 같은 기간 100억원에 이르던 영업이익도 57억원 적자로 전환했다. 경쟁사인 쿠쿠홈시스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그나마 2022년부터 쿠첸의 매출이 미미하지만 상승 흐름으로 전환됐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됐다. 해외 진출과 함께 '피켜여왕' 김연아를 브랜드 모델로 발탁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발' 심의제재 착수는 '아픈 손가락'일 수밖에 없다. 가전 업계 한 관계자는 "쿠첸은 현재 쿠쿠와 함께 주방가전 양대산맥으로 꼽히고 있지만 시장점유율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지고 있다"면서 "어렵게 잡은 회생의 동아줄이 공정위 철퇴로 퇴색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부방그룹의 성공신화를 이끈 이동건 회장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방그룹의 모태는 1934년 설립된 부산방직공업이다. 모직물 사업의 성공으로 쉴 새 없이 사세를 키워왔다. 1976년 가전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 수준이었다. 2000년 들어서면서 자체 밥솥 브랜드인 쿠첸을 출시했다. 부방유통을 설립해 이마트 안양점 운영에도 나섰다. 이 회장은 장남인 이대희 당시 부회장에게 이 사업을 맡겼다. 이 전 부회장이 지주회사인 (주)부방을 통해 쿠첸을 비롯한 나머지 계열사를 지배하는 그룹 지배구조도 이때 만들어졌다. 

차남인 이중희 사장은 선박·수처리·환경 사업을 하는 테크로스 계열을 담당하고 있다. 부방그룹은 2010년 세계 1위 선박평형수 처리 업체인 테크로스를 인수했다. 이후 LG의 수처리 계열사인 LG히타치워터솔루션(현 테크로스워터앤에너지)과 하이엔텍(현 테크로스환경서비스) 등을 잇따라 계열사에 편입했다.

이동건 부방그룹 회장 ⓒ연합뉴스

그룹 캐시카우에서 미운 오리새끼로

하지만 매출의 상당 부분은 장남이 이끌고 있는 부방 계열에서 나왔다. 2010년 중반까지만 해도 장남 회사가 그룹 전체 매출의 60%를 넘어섰다. 이 중에서도 쿠첸은 그룹의 '캐시카우'로 불렸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 주방가전 사업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매출이 5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대신 테크로스 계열이 고속성장했다. 현재는 테크로스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룹의 지배구조 역시 차남인 이중희 사장이 지주회사인 테크로스홀딩스를 통해 (주)부방을 비롯한 나머지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장남은 계열사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 전 부회장의 개인회사인 에스씨케이(SCK) 지분도 모두 내놨다. 이 회사는 부방그룹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성장했다. 한때 내부거래율이 매출의 50%를 넘어서면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시달렸다. 이 회사의 지분 100%를 (주)부방에 넘기면서 이 전 부회장은 그룹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희 당시 부회장이 총괄했던 쿠첸의 경영이 급격히 악화하자 이중희 사장 체제로 후계 구도가 정리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쿠첸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심의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쿠첸은 한때 그룹의 성장을 이끈 캐시카우였지만 현재는 아픈 손가락이 됐다"면서 "공정위 조사로 갑질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힐 경우 후계 구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쿠첸 측은 "현재 진행 중인 공정위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면서 "협력업체와 투명하고 공정한 상생 거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의 실적 악화에 대해서도 쿠첸 관계자는 "당사는 현재 본연의 사업 경쟁력 강화와 안정적인 경영 기반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대내외 경영 현안에 흔들리지 않고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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