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청년 운동에 기여한 목덕 박사 일행 경성역 도착[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2025. 12. 2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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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2월 29일 조선일보에는 전날 아침 일찍 경성역(서울역)에 막 도착한 서양 사람의 사진이 하나 실린다.

그는 미국 출신의 선교사로 코넬대를 졸업하고 기독교 청년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194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존 모트(John Mott) 즉 목덕(穆德) 박사다.

기사는 목덕 박사와 함께 온 만국 기독교 청년회 부총무인 '뿌락만(巴樂萬)' 씨의 이야기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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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1929년 12월 29일 조선일보에는 전날 아침 일찍 경성역(서울역)에 막 도착한 서양 사람의 사진이 하나 실린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미국 출신의 선교사로 코넬대를 졸업하고 기독교 청년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194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존 모트(John Mott) 즉 목덕(穆德) 박사다. 그는 무슨 일로 조선을 방문했을까.

“세계적 웅변가로 일찍이 명성이 높던 만국 기독교 청년회 총간사 목덕 박사 일행은 28일 아침 7시 45분 경성 착 열차로 오게 되었다. 기차 연착으로 약 40분이나 늦어서 아직도 전기등이 꺼지지 아니하여 환영을 나갔던 조선 전국의 각 교회 지도자 수십 명은 이른 아침의 찬 바람을 무릅쓰고 박사 일행을 고대하게 되었고, 조선일보 사장 이상재, 윤치호, 신흥우 등 세 분은 부산까지 출장하여 박사 일행을 동반하고 돌아왔는데, 목덕 박사는 차중(車中)에서 방문한 기자에게 아래와 같이 말하더라. ‘아직도 컴컴한 이른 아침에 이와 같이 우리 일행을 맞아 주시니 너무도 감사합니다. 나는 이번이 귀국(貴國)에 네 번째 오게 된 것입니다. 10여 년을 두고 사귄 조선 산천을 또 밟게 되어 충심으로 기뻐합니다. 그동안에 귀국의 변천(變遷·세월이 흐름에 따라 바뀌어 변함)이 많은 것은 사실이오 여러 가지로 향상 발전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올시다. 어제 아침에 부산에 도착하여 지금이야 경성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아직 시찰이 충분치 못하나 지난 몇 해 동안에 놀랄 만치 변천되었을 것을 짐작합니다. 나는 특히 귀국을 항상 나의 가슴속에 넣고 있어 좋은 일이나 걱정되는 일을 여러분과 같이하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순전히 기독교 청년회의 사업만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한두 해 뒤 예수께서 탄생하신 나라 유태(猶太)의 예루살렘에서 국제 선교 연맹을 개최하게 되는데, 귀국에서도 참가하심이 어떠냐고 여쭈러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과 내일 동안 귀국 각 교회 대표자 여러분과 모여서 의논하고자 하는 회의 이름은 말하자면 국제 선교 연맹의 준비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에 아직 그런 기관이 없으니까 그 기관을 조직하고자 합니다.’”

기사는 목덕 박사와 함께 온 만국 기독교 청년회 부총무인 ‘뿌락만(巴樂萬)’ 씨의 이야기로 계속된다.

“목덕 박사 일행 중에는 박사의 부인과 영식(令息·아들) 외에 비서 한 사람과 만국 기독교 청년회 부총무인 ‘뿌락만’ 씨도 참가하였는데 그는 우리 조선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 온 명사인데 뿌락만 씨의 차중 이야기는 아래와 같더라. ‘나는 조선에 20번째 나옵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에 윤치호(尹致昊) 씨와 같은 학교에 다녔고 나의 선비(先비·돌아가신 어머니)의 분묘는 양화진에 있고 동생이 지금 중앙 청년회에 있는 고로 나는 국적이 미국 사람이지마는 조선에 오는 때에는 나의 고국에 돌아오는 감상이 납니다. 조선 사회의 향상 발전을 나보다 더 고맙게 생각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국제 선교 연맹은 12월 28일 오후 2시 반 경성 장곡천정 조선호텔 대강당에서 조선 각지의 각 교회 대표자가 모여 개최되었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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