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80) 의상과 제자들

의상대사는 신라 왕족 출신으로 신라십성의 일인이다. 원효대사와 함께 신라에 대중불교를 전파한 고승으로 이름이 높다. 황복사에서 출가해 꾸준히 정진하다 당나라 유학길에서 지통으로부터 수학하고, 귀국해 화엄종을 창시했다.
원효대사가 대중불교를 직접 설파했다면 의상은 많은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해 세상에 대중불교를 전파하는 방법에서 괘를 달리한다.
의상은 또 낙산사와 부석사 등의 대규모의 사찰을 건설해 백성들의 마음에 평화를 심어주는 도량으로 삼았다. 낙산사와 부석사는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국 명찰로 법등을 이어오고 있다.

◆신화전설 1: 의상의 제자들
의상의 십대제자들이 부석사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스승 의상이 선묘의 기운을 품은 산에서 법을 펼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제자들은 신라 전역에서 스승의 명성을 들었고, 그가 설하는 화엄 세계가 단순한 교학이 아니라 삶 전체를 연결하는 새로운 시선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산을 오르는 이들이 많아졌다. 부석사의 아침은 늘 제자들의 염불 소리로 시작됐고, 그 소리는 새벽 안개를 흔들며 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울려 퍼졌다.
지통과 진정은 대중을 이끄는 역할을 맡아 수련을 주도했고, 표훈과 양원은 스승의 법문을 정리해 후학에게 전하기 위해 낮에도 밤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엄장은 산 아래 마을을 돌며 가난한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위로했고, 스승은 그런 제자를 보며 너는 법을 말하지 않아도 법이 너를 따른다며 칭찬하곤 했다.

나는 낙산으로 향할 생각이다." 제자들은 순간 놀랐지만 스승의 눈빛이 이미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 눈빛은 언제나 그렇듯 고요했으나 멈춰 있지 않았다. 스승이 가는 길은 늘 바람과 같았다. 그 바람길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더 큰 뜻이 담겨 있었다.
며칠 뒤 의상은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산을 내려가는 길에서 제자들은 서로 말없이 스승의 발걸음을 살폈다. 의상이 걸을 때 땅은 마치 길을 스스로 열어주는 듯했고, 그는 어디를 가든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다.
봄비가 내리던 날 강을 건너는 순간 한 제자는 문득 생각했다. 스승은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경계를 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동해가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엷은 소금을 실어 날아왔다. 의상은 바람결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제자들에게 말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다. 우리 모두가 결국 돌아가야 할 자리도 그와 같다." 제자들은 스승의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그의 삶이 도달한 깊은 깨달음임을 이해했다.
낙산이 가까워지자 제자들의 긴장은 더해졌다. 스승이 무엇을 보게 될지, 어떤 경험을 전하려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컸다. 스승과 함께 걸으며 배우고 깨닫는 그 시간은 그들 삶에서 가장 귀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흔적: 낙산사
강원도 속초 인근의 해안 절경에 자리한 낙산사는 신라 시대부터 관음 신앙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찾는 아름다운 관광지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역사 속에서 낙산사는 단순한 절이 아니라 동해와 관음 신앙, 그리고 의상대사의 깊은 수행이 겹쳐진 성지였다.
의상이 낙산에 도착했다는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비롯되며 그가 바다 위에서 관음의 진신을 보았다는 전승 역시 이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낙산사 해안은 사계절 내내 바람이 다르다. 여름에는 짙은 물결이 힘차지만 겨울에는 바람이 마치 묵언수행을 하듯 조용히 흐른다. 의상이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얻은 깨달음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드러나는 무한한 생명의 흐름이기도 했다.

의상은 이 바다의 변화 속에서 화엄경이 말하는 무진세계의 움직임을 보았다고 전한다. 바다는 하나의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변화 전체가 하나의 큰 흐름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낙산사는 오랜 세월, 많은 화재와 전란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사실 자체가 이곳의 특별한 힘을 말해 준다. 관음전에서 동해를 바라보면 바다와 하늘 사이에 경계가 흐릿하게 사라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시간에는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목소리가 잠시 멈추는 듯하고,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된다.

◆신화전설 2: 홍련암에서의 인연
의상 일행이 낙산에 도착한 날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해안가의 작은 바람조차 말을 아끼는 듯했고, 파도는 마치 피곤한 숨을 쉬듯 낮게 밀려왔다. 의상은 절벽 위에 올라 제자들에게 바다를 등지고 서 있으라고 말했다. 그는 홀로 바다를 바라보며 오랜 세월 자신을 이끌어 온 인연들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황복사 삼층석탑에서 들었던 바람의 속삭임, 관음의 가호가 있던 바다, 지엄의 가르침이 있었던 장안의 밤, 그리고 부석의 기운으로 돌아와 다시 태어났던 신라의 산천까지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한 줄기처럼 이어졌다. 그 흐름 속에서 의상은 자신이 걸어온 길뿐 아니라 앞으로 제자들이 걷게 될 길까지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제자들은 조심히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보았던 것은 바다 위에 퍼지는 짙은 빛의 길이었다. 의상의 몸을 훑고 바다로 번져가는 빛은 인간의 형상도 아니었고 동물의 모습도 아니었다. 크기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모두 그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평안함을 느꼈다. 마치 바람도 멈추고 소리도 사라진 넓은 공간 속에서 자신들이 잃어버린 마음의 한 조각을 되찾는 듯한 느낌이었다.
의상은 "저 빛은 바다의 신비나 한순간의 기적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보는 마음의 깊이를 비춘 것이다. 사람마다 그 빛을 다르게 보겠지만, 그 차이는 마음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 차이 또한 화엄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제자들이 느꼈던 평안함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하게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옆에 서 있던 지통은 스승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스승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스승님이 보신 세계가 무엇인지 조금은 짐작합니다." 의상은 지통의 말을 듣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네가 그 세계를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나의 길은 이제 다한 것이다."
부석사로 돌아온 후 의상의 얼굴은 더욱 맑아졌지만 힘은 서서히 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의 쇠약함을 걱정할 때마다 의상은 웃으며 말했다. "생은 흘러가는 것이고 가르침은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떠난다 해서 이 도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여름날 비가 부석사 뜰에 고요히 떨어지던 오후 의상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불러 말을 건넸다. "너희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서로를 돕고 서로의 길을 인정하는 순간마다 나는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남긴 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고 산사에는 깊은 정적이 내렸다. 제자들은 그날을 두고 스승이 떠난 날이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이 더욱 깊어져 산에 퍼진 날이라고 기억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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