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표면 흙 구워 착륙장-도로 만드는 기술, 국내서 개발 중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025. 12. 2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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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달 기술’ 어디까지 왔나
마이크로파로 달 표면 흙 굳혀… 벽돌 등 블록형 자재 제작 가능
탐사용 ‘종이접기 바퀴’도 개발… 태양광 이상 에너지원 확보 숙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개발 중인 달 로버 탑재형 소결 장치. 달 표면을 단단히 굳혀 도로 등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왼쪽부터 정병권 건설연 주임연구원, 정태일 수석연구원, 공준호 수석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제공
병오년 새해 태양계와 그 너머를 포함한 심우주 탐사 거점, 희소 자원인 헬륨-3 채굴 등 달 탐사의 가치가 재조명된다. 미국 중심의 유인 달 탐사계획 ‘아르테미스 II’ 임무로 우주비행사 4명이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달 궤도로 떠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달 표면에 화성 탐사를 위한 전초기지를 구축하고, 2028년까지 미국인을 달에 보내는 사업에 추가 투자를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국내에서도 2032년까지 독자 기술로 달에 착륙선을 보내고, 로버로 달 표면 탐사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 16일 우주항공청이 발표한 우주과학탐사 로드맵에 담겼다. 이후 달 기지를 건설하고 달의 물과 자원을 탐색·추출·저장하는 인프라를 구축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달 기지 구축에 필수적인 착륙장과 도로 건설 기술, 거친 달 표면을 탐사하는 로버 기술 등 첨단 달 탐사 기술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 전자레인지 원리로 달 표면 평탄화

달 기지를 지으려면 대량의 건축 자재가 필요하다. 필요한 재료를 모두 지구에서 우주선으로 조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지 생산 수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대기가 없는 달의 진공 조건에서 달 표면 흙인 월면토를 굳혀 다양한 자재를 만드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가열할 때 쓰이는 전자기파인 마이크로파로 월면토를 굳혀 균질하고 단단한 덩어리로 만드는 소결 공정이다.

현재 건설용 직육면체 벽돌과 테트라포드 형태의 블록 자재를 만드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다음 목표는 우주선이 이착륙하는 착륙장, 차량과 우주비행사들이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도로 구현에 필요한 평탄화 기술이다.

건설연 연구팀은 로버에 탑재할 수 있는 형태로 소결 장치를 제작해 고도화하고 있다. 달 지표면에 직접 마이크로파를 방사해 단단하게 굳히는 개념이다.

현재 가장 큰 숙제는 전력이다. 건설연 우주건설연구그룹 총괄연구책임자인 이장근 기획조정본부장은 “마이크로파 소결 장치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태양광 이상의 에너지원이 필요하다”며 “우주용 원자로 등과 연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연은 실제 달 표면 환경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인공 월면토 10t을 포함한 진공 챔버 장비를 구축하기도 했다. 흙을 포함한 진공 챔버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마이크로파 소결 시스템도 진공 챔버에서 테스트한다. 연구에 필요한 인공 월면토를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도 자체 마련했다. 강원 철원군 현무암 지대에서 원료를 조달한다.

● 달 탐사용 ‘종이접기 바퀴’도 등장

달 탐사 로버용 전개형 바퀴를 장착한 2륜 로버. KAIST 제공
이대영 KAIST 우주연구원·항공우주공학과 교수팀은 국내 민간 로버 제작기업인 무인탐사연구소(UEL),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양대 연구팀과 함께 달 탐사 로버용 바퀴를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17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공개됐다.

달 표면에 형성된 구덩이 지형인 피트(Pit)와 용암동굴은 대기가 없는 달의 극심한 온도 변화와 우주 방사선을 피할 수 있는 천연 은신처다. 태양계 초기 지질 기록이 보존돼 있을 것으로 보여 과학·탐사 가치도 매우 높다.

피트와 용암동굴은 급경사, 낙하 위험이 있어 접근이 까다롭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유럽우주국(ESA) 등 전 세계 주요 우주연구기관은 소형 로버를 활용해 탐사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발목을 붙잡은 것은 바퀴였다. 특히 상황에 따라 직경을 조절할 수 있는 가변형 바퀴 구현이 관건이다.

기존 로버용 바퀴는 진공 상태에서 평평한 금속 표면이 맞닿아 접착되는 냉간 용접 현상, 연마력이 강한 월면토 노출로 인한 내구성 문제 등에 부딪히며 실용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연구팀은 종이접기 원리와 소프트 로봇 기술을 결합한 전개식 바퀴를 제안했다. 접착제 없이 아치 구조와 힘의 분산만으로 무게를 지지하는 구조체인 ‘다빈치 다리’ 원리를 응용했다. 경첩 같은 부품 없이도 접혀 있을 때는 지름 23cm, 펼치면 50cm까지 커진다.

연구팀은 개발한 바퀴를 2륜 로버 형태로 제작해 압축 테스트, 극한 온도 테스트를 거쳐 인공 월면토와 제주도 용암동굴 등에서 주행 테스트까지 마쳤다. 달 표면의 중력을 기준으로 100m(지구 기준 4m) 높이에서 떨어져도 멀쩡할 정도로 튼튼하다.

이 교수는 “달 피트·용암동굴 진입 문제에 처음으로 해답을 제시한 기술”이라며 “통신·항법·전력 등 남은 과제가 있지만 독자 달 탐사 시대를 선도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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