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처럼 쌓인 골재… "법 있는데 안 지켜져"
사용 의무 어겨도 거의 처벌 안해
위반 업체 실질적 행정처분 내려야

부산·경남 곳곳의 골재업체 야적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김해와 부산 등 주요 순환골재 생산업체마다 처리되지 못한 골재가 산처럼 쌓여 있다.
28일 본지에 접수된 제보에 따르면 김해시 생림면, 한림읍, 부산 사하구 등에 있는 골재업체 야적장에는 순환골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순환골재 의무사용 제도는 법으로 명시돼 있음에도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이를 기피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의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지켜지지 않는 제도 운영이다. 건설폐기물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에서 순환골재와 순환토사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어겨도 실질적인 처벌 규정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제 식구를 단속하지 않는 관행 속에서 국가기관조차 의무사용을 외면하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 3월께 부산항 건설사무소를 비롯한 공공 발주처들은 "공감은 한다"면서도 "관할이 아니다", "계약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해 왔다. 분기마다 '권고 공문'을 보내는 수준에 그치는 행정으로는 건설현장의 인식을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을 어겨도 불이익이 없다면, 값싸고 품질이 개선된 순환골재를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현장의 냉정한 현실이다.
순환골재에 대한 불신 역시 뿌리 깊다. 과거 일부 저품질 제품으로 인해 쌓인 부정적 인식이 아직도 건설업계 전반에 남아 있다. 주민 민원과 환경단체 반발을 우려한 발주처와 시공사가 '안전한 선택'이라며 천연골재를 고집하는 사이, 순환골재 생산업체들은 출구 없는 재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최근(12월 22일) 정부가 순환골재 품질인증을 KS인증으로 일원화하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국토교통부는 중복 인증을 해소하고 품질 신뢰도를 높여 순환골재 활용 기반을 넓히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KS인증을 통해 품질·공정·자재관리까지 함께 심사함으로써 "순환골재는 품질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을 깨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제도가 아무리 정비돼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국가기관이 시행하는 공사 현장부터 순환골재 의무사용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출발점이다. 공공이 외면한 자원순환을 민간에만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야적장에 쌓여 있는 순환골재는 '쓸 수 없는 폐기물'이 아니라 이미 품질 기준을 통과한 '사용 가능한 자원'이다.
순환골재 사용은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살리는 선택이다. 천연자원 고갈을 막고, 건설폐기물을 자원으로 되살리며, 원가 절감과 물류 비용 감소 효과도 크다. 그럼에도 법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자원순환 정책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자성이 필요하다. 순환골재 생산업체는 품질로 신뢰를 증명해야 하고, 건설업계는 낡은 인식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기관과 공공 발주처가 법의 취지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 의무사용을 지키지 않는 기관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행정처분과 사후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순환골재는 정책 실패의 현장이다. 공공이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자원순환 사회로 가는 길은 더 멀어질 것이다.
Copyright © 경남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