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장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역 이전 고민”…실현 가능성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경기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력 생산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가뜩이나 전력 수요가 집중된 수도권에 ‘전기 먹는 하마’인 대규모 반도체 생산 공장이 들어설 경우 지역균형발전을 해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정부가 실제로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을 추진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 장관은 지난 26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경제연구실’에 출연해 “용인에 에스케이(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입주하면 그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기, 15기가와트(GW) 수준이라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 지금이라도 지역으로 전기가 많은 쪽으로 옮겨야 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또 “12차 전기본(전력수급기본계획)에 그 내용도 담아서, 이제는 기업이 만들어지면 어쩔 수 없이 전력 공급하는 게 아니라 기업들이 전기가 많은 곳에 가서 생산 활동을 할 수록 발상을 바꿔야 되는 단계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는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지역에서 소비)를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강조해왔는데,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해 ‘지산지소’ 원칙 적용의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3월 공식 발표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프로젝트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일대에 시스템반도체 특화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용인 처인구 이동·남사면 777만㎡ 부지에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생산설비(Fab) 6기와 80여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연구기관 등을 함께 입주시키는 게 핵심이다. 2031년 전후 완공을 목표로 삼성전자는 360조원 이상 투자를 예고했다. 에스케이하이닉스도 이 국가산단의 동쪽인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2027년 초 준공을 목표로 반도체 생산설비 4기 등을 건설 중이라서 해당 지역 전력과 용수 부족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용인 국가산단 계획 발표 당시부터 환경·시민단체들은 전력 수급 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 50여개 시민사회 단체들로 구성된 ‘용인반도체국가산단재검토와 초고압송전탑건설반대 전국행동’은 이달 출범식을 열고 “수도권에 막대한 전력을 보내기 위해 대규모 장거리 송전선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송전선로 경과 대역에 포함된 다수 지역 주민의 환경·생활권이 침해될 위기에 처했다”며 ‘산단 저지’ 행동에 돌입한 상태다. 앞서 10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성명을 내고 “수도권 전체 전력수요(40GW 이상)의 약 40%에 달하는 추가 전력을 용인 클러스터에서 사용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고 반도체 생산을 위한 공업 용수가 하루 170만톤 이상 소비돼 한강권역의 물 부족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며 산단 추진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반도체 업계에선 용인 클러스터의 계획이 변경될 경우 우리나라 반도체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현재 수도권에 반도체 생산 설비 및 소재·부품·장비 기업 등 반도체 공급망이 형성된 상황에서 지역에 새 공장이 세워지면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해야 할 위험이 커진다”며 “지방에선 숙련 인력를 확보하는데 한계도 있어서 기업 입장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공장을 지역에 세우는 모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기후에너지환경부 쪽은 28일 “한 부처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구체적인 이전 계획을 가진 발언이라기 보단 지산지소형 시스템 차원에서 고민을 밝힌 것”이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용인 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계획 변경은 산업계의 반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 필요성 등 복잡한 사정들이 많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용인시와 삼성전자 등 기업들이 반대할 경우 큰 갈등이 벌어져 대규모 소송전으로까지 번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풀이도 나온다. 일단 용인 국가산단은 2024년 말 지정·고시됐는데, 현재 토지 주인들을 상대로 한 본격적인 보상 절차가 완료되진 않아 계획 변경으로 인한 경제적·법적 부담은 비교적 적은 상황이다. 국토계획법 및 산업단지계획 승인 관련 규정을 보면, 산단 지정 해제를 위해서는 경제성 부족 및 환경 문제, 정책 변경 필요성이 있어야 하고, 국토교통부 및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부 등 부처 의견 수렴 및 용인시 의견 반영 등을 통한 산단 지정 해제 고시 절차가 필요하다. 용수 부족 등으로 인한 환경 문제, 지산지소 등 전력 정책의 변경 필요성 등을 사유로 용인 클러스터의 국가산단 지정 해제를 추진하는 것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 물론 시행사인 한국토지공사가 이미 토지 소유자들에게 보상 협의 통지서를 발송한 것이 국가가 토지를 취득하려는 민법상 ‘이행의 착수’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아, 이 경우에도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전이 벌어질 수 있다.
이번 김 장관의 발언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역 이전’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크게 불거질 전망이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장관의 인터뷰 뒤 입장문을 내고 “전기 없는 용인 클러스터는 허상이며 전기 있는 지방으로 가는 것만이 살 길”이라며 “송전탑을 지을 수 없는 현실, 알이100(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라는 무역 장벽,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정신을 위해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새만금에 산단을 이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북 지자체들은 “이미 확보된 새만금 에너지 용지 약 32㎢를 활용해 약 4GW 재생에너지를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다”며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 용인지역 4개 당협위원장들은 앞선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 이전론에 명확히 반대하고, 행정적·재정적·법적·제도적 지원을 통해 사업을 신속하고 확고하게 추진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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