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⑯ 올드보이-‘K-무비’의 기원을 묻다

■ 드디어, 'K-무비'의 시작
K-무비란 무엇일까.
우리가 할리우드를 떠올릴 때 여러 함축된 의미를 함께 떠올리듯이 K-무비 역시 단순한 국적 표시는 아닐 것이다.
해외 관객이 한국 영화를 기억하는 방식, 곧 한국 영화에서 발견되는 장르적 변용과 문화적 코드가 뒤섞인 특유의 톤을 포괄한다.
세계가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한국 영화를 호명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임권택의 '취화선'(2002)과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로 짚을 수 있다.
영화 '취화선'은 칸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한국적 전통과 작가주의의 얼굴을 세계에 알렸다.
이후 영화 '올드보이'는 오늘날 해외에서 상상하는 K-무비의 얼굴, 곧 과감한 장르 실험과 도발적인 비극성을 촉발한 출발점에 가깝다.
그래서 올드보이는 특별하다. 세계인이 상상하는 K-무비의 기원을 이루는 영화인 것이다.

■ 세계 장르 영화의 '최전선'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뒤, 영화 '올드보이'는 한국 영화가 더 이상 “숨겨진 보석”이 아니라 세계 장르영화의 최전선이라는 인식을 퍼뜨렸다.
해외 관객이 K-무비를 말할 때 떠올리는 강렬한 이미지-기억, 폭력적인 이미지, 기묘한 유머가 뒤섞인 밀도 높은 정서는 상당 부분 이 작품에서 형성되었다.
이후 김지운의 영화 '악마를 보았다'(2010), 나홍진의 '추격자'(2008) 등의 장르영화가 이 정서를 다른 결로 확장했고, 봉준호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과 '기생충'(2019)이 사회적 현실과 장르적 긴장을 결합하며 K-무비의 외연을 넓혔다.

■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변주'
영화 '올드보이'의 중심에는 기억과 비극의 구조가 있다.
박찬욱은 원작 만화의 관념적인 동기를 거의 버리고, "왜 가두었는가?"가 아닌 "왜 풀어주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오대수(최민식 분)는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더 깊은 심연에 다가선다.
진실이 구원이 아니라 파국이라는 점에서, 그 비극적 과오가 자신의 판단 착오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멀게 하듯, 오대수는 자신의 혀를 자른다.
가혹한 운명에 휩쓸린 두 주인공은 이처럼 스스로를 단죄함으로써, 서사의 비극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영화 '올드보이'가 해외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연출과 미장센의 첨예함, 그리고 이러한 신화적 상상력과의 결합 덕분이다.

■ 형식, '비극'을 떠받치다
형식은 이 비극을 떠받치는 주요 기둥이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폐쇄 공간과 눌린 색감으로 오대수의 불안을 화면에 배치한다.
복도 롱테이크 시퀀스는 15년간 억울하게 감금당한 인물의 울분을 폭발시키는 한국 영화사의 명장면이다.
연기 면에서는 최민식의 오대수가 구축한 음울함을 축으로, 유지태의 이우진이 보여준 차가운 절제, 강혜정의 미도가 드러낸 불안정한 감정이 비극의 구조를 단단히 완성한다.
조영욱이 총괄한 음악 역시 이 정조를 지탱한다.
왈츠 리듬은 폐쇄적 서사와 비극에 정확히 대응하며 독특한 긴장을 만든다.

■ 질문으로 '영원히 남는 영화'
영화 '올드보이'가 우리의 기억 속에 강렬히 남는 이유는, 이 작품이 진실 이후의 시간을 담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은 파국의 끝에 선 인물들을 본 채로 상영을 끝낸다.
비극은 죽음이나 처벌이 아니라, 이후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현재로 제시된다.
금기를 저지른 죄의식과 자기파괴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적 선택 역시 현재의 시선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시각적 충격과 잔혹성을 뛰어넘어, 기억과 폭력, 말과 책임을 묻는 현대의 고전으로 남았다.
K-무비라는 말이 가능해진 오늘날, 영화 '올드보이'는 여전히 그 이름의 기원을 묻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소환되는 영화다.
● 영화 '올드보이' 이야기

하나,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는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 <고독>에서 나온 구절이다.
둘,
오대수는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셋,
극 중 오대수가 원한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꼽힌 이름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실명이다.
글 : 영화평론가 조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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