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뷔한 류현경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게 여전히 설렌다”

하은정 대중문화 저널리스트·우먼센스 편집장 2025. 12. 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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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생 29년 만의 첫 연출작 《고백하지마》로 감독 데뷔한 배우 류현경

(시사저널=하은정 대중문화 저널리스트·우먼센스 편집장)

배우 류현경이 연출자로 변신했다. 29년 동안 스크린과 드라마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그는 첫 장편 연출작 《고백하지마》를 통해 연출·제작·출연은 물론 배급까지 직접 책임지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배우가 감독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꽤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대중의 신뢰를 받아온 배우가, 조용하지만 단단한 방식으로 영화의 전 과정을 직접 책임지는 사례는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류현경의 이번 행보는 개인의 도전을 넘어, 한국 영화계에도 충분히 발전적인 시도로 읽힌다.

류현경은 화려한 스타성보다 스며드는 연기로 신뢰를 쌓아온 배우다. 그는 감정을 과시하지 않고, 인물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장면의 중심을 잃지 않는 연기와 안정적인 존재감으로 오랜 시간 대중에게 '편안한 배우'로 자리 잡아왔다. 그래서 그의 이번 도전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연출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중학교 시절 비디오반에서 만든 10분짜리 단편영화 《불협화음》이 그 출발점이다. 왕따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EBS에 소개되기도 했다. 친구들과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출연과 촬영까지 맡으며, 그는 일찍이 '만드는 일'의 재미를 경험했다. 그때의 감정과 촉은 연기를 이어오는 동안에도 살아있었다.

ⓒ류네

1996년 SBS 드라마 《곰탕》으로 아역 배우로 데뷔한 이후, 그는 정확히 29년째 배우로 살아왔다. 수많은 현장을 거치며 연기의 감각을 다듬는 동안에도 이야기를 만들고 구조를 고민하던 그 시절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배우로서 쌓아온 시간은 결국 다시 연출이라는 자리로 그를 이끌었다.

그가 선택한 첫 장편 연출작 《고백하지마》는 실제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한 번의 고백에서 출발한다.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연기와 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고백 이후 남겨지는 어색함과 거리감,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고백하지마》는 사건을 밀어붙이기보다 감정의 여백을 따라간다. 완결된 문장보다 망설임과 침묵이 먼저 포착되고, 인물의 감정은 설명되지 않은 채 화면 위에 남는다. 그 결과 영화는 코믹한 리듬과 함께, 보고 난 뒤 은근한 쓸쓸함을 남기는 독특한 온도를 획득했다.

이 작품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남도영화제 시즌2에 공식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다. 주요 상영 회차는 매진됐다. 류현경은 직접 제작사 류네를 설립해 배급업을 정식 등록하고 기획부터 마케팅, 극장 개봉까지 전 과정을 총괄했다. 배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 그리고 독립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고백하지마》는 류현경이 배우로서, 그리고 창작자로서 쌓아온 시간의 결과물이다. 튀지 않지만 오래 남는 감정,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온도. 이 영화는 그가 어떤 배우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영화 《고백하지마》 스틸컷 ⓒ류네

첫 장편 연출작으로 《고백하지마》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처음부터 장편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뭐라도 찍어보자'는 마음이었다. 촬영이 취소된 날, 그냥 카메라를 켜보니 그 안에서 고백이 나왔다. 그 장면이 너무 솔직해 보였다. 그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기록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대본 없이 촬영한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정해진 말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과 반응이 그대로 연출됐다. 어떤 순간에는 이게 연기인지, 실제 감정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 모호함이 이 영화의 질감이라고 생각했다."

배우 김충길의 실제 고백에서 출발한 이야기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고백이라는 감정 자체가 굉장히 불완전하다. 설렘과 부담, 어색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 이후의 공기, 말과 말 사이에 생기는 거리감이 흥미로웠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들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연출뿐 아니라 제작, 배급까지 직접 맡았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촬영이 끝나면 영화가 완성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관객을 만나기까지 정말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배급사를 만났는데 '유튜브에 올리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배급하기로 마음먹었다."

영화제 상영 당시 관객 반응을 직접 본 경험도 컸을 것 같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들이 웃고, 또 각자 다른 감정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걸 봤다. 그때 '이건 극장에서 상영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연말에 가볍게 웃으면서도, 보고 나면 조금 쓸쓸함이 남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1인 배급사 '류네'를 설립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모든 게 처음이었다. 심의, DCP 제작, 홍보 메일 작성까지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언론시사회 신청 날 컴퓨터 앞에서 대기하던 순간은 정말 살이 떨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들면서도 설렜다. 사실 회사 설립에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 바로 배우 박정민씨다. 출판사를 운영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걸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꼭 큰 시스템 안에 있어야만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나 역시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닿길 바라나.

"러닝타임이 짧은 편이라 마음의 준비 없이 산책하듯 극장에 왔으면 한다. 보고 나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도 저런 적 있었지' 같은 생각이 남았으면 좋겠다. 거창한 사건은 없지만, 은근히 오래 떠올려지는 영화였으면 한다."

이번 작업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그때 그냥 찍어볼걸'이라는 아쉬움이었다. 너무 눈치를 보면서 안 하고 넘어간 순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영화는 '하고 싶으니까 하자'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앞으로도 그런 선택을 계속하고 싶다."

감독으로서의 다음 작업도 준비 중이다.

"오래전부터 조금씩 써온 연애 연대기 이야기가 있다. 시간의 흐름이 길게 담긴 작품이라 쉽지는 않지만, 굉장히 애정이 가는 이야기다. 연출과 연기를 굳이 나누고 싶지는 않고, 좋은 작품이 있다면 두 역할 모두 계속 이어가고 싶다."

또 다른 계획은 있나?

"새해에 곽준빈(유튜버 곽튜브)과 함께 영화를 하나 찍기로 했다. 사실 나는 곽준빈의 팬이다. 유튜브를 잘 챙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곽준빈 채널은 예전 콘텐츠부터 거의 다 봤다. 여행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나 솔직한 태도가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연기에 대한 관심도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걸 알게 됐고,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유튜버'와 '유튜버를 해보고 싶은 영화배우'의 이야기를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놉시스 한 장짜리를 써서 이야기했는데, 반응이 좋아 같이 해보기로 했다."

곽준빈의 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봤나.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곽준빈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연기 도전작 《짠따록: 인간 곽준빈》을 보고 그렇게 느꼈다. 연기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연기보다 빠니보틀이 맡았던 연출 쪽이 더 아쉬웠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곽준빈은 자신ㅈ이 가진 리듬과 솔직함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런 장점이 잘 살아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봤다."

끝으로, 《고백하지마》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현실에서 시작된 한 번의 고백, 그리고 그 감정을 끝까지 따라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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