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 관두고 ‘전업 여친’ 할래”…성평등 선진국서 부는 여성 Z세대들의 이상현상 [한중일 톺아보기]
![스웨덴에서는 거의 모든 남자가 육아 휴직을 한다. 한 손에 카페라테를 들고 다른 손에 유모차 핸들을 잡은 ‘라떼파파’가 거리에 넘친다. [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8/mk/20251228142704793wiyp.jpg)
특히 스웨덴은 한국에서는 높은 여성 고용률과 남녀가 평등하게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는 소위 ‘라떼파파(latte papa·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끄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의 나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일과 가정의 양립이 완성돼 있다는 이 성평등 선진국에서 근래 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이나 남자친구 등 파트너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갓생(부지런하고 모범적인 삶)’과 ‘성공’이 화두인 한국의 시각에서 볼때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이 기이한 현상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그래픽=제미나이]](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8/mk/20251228142706116ipbe.jpg)
특히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제도가 충실해 남녀 모두가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고, 노동을 통한 사회 공헌을 중시하는 문화도 확고합니다.
다만 고율의 세금을 물리는 대신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모델은, 국민 대다수가 경제활동에 제대로 참여해야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스웨덴에서 ‘일과 육아의 병행’은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 같은 확고한 사회적 합의에 작은 균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소프트 걸(Soft Girl)’ 현상입니다.
‘소프트 걸’이란 단어가 스웨덴에서 처음 등장한 건 2020년경 부터입니다. 이때는 틱톡에서 유행하며 주로 파스텔톤 의상, 핑크색, 과한 볼터치 등 ‘소녀 감성’이 특징인 외적 코드를 지칭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무렵부터는 ‘반(反)노동·전업 여자친구’ 등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트렌드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앞서 언급했듯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남성 파트너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삶”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내용의 핵심은 ‘내려놓기’입니다. 치열한 커리어 경쟁 대신, 느긋한 삶과 자신의 정신과 신체적 건강(웰빙)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선언입니다.

빌마씨는 2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발적 실업을 택했습니다. 틈틈히 의뢰가 들어오면 소일거리로 모델일을 하는 정도입니다.
결혼한 상태가 아니기에 전업주부는 아닙니다. 대신 스스로 말하길 ‘전업 여자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육아나 가사일 때문이 아닌 “전업여자친구로서의 삶을 위해 일을 관뒀다”고 당당히 말합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남자친구가 일을 할 때 빌마씨는 요리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스웨덴어로 ‘전업 여자친구’(#hemflickvan)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위해 일을 그만뒀다. 일이 나를 너무 지치게 했었는데 더 없이 평온해졌고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지금이 행복하다.”
틱톡에서 1만7000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그의 게시물에 찍힌 수십만 건의 ‘좋아요’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지친 스웨덴 Z세대들의 속내를 대변하는 듯 합니다.
실제로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프리랜서 등으로 전향해 근로 시간을 크게 줄이거나 승진 기회를 마다하고 파트타임 근무를 택하는 스웨덴 여성들도 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이들에게 직장은 생계 수단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아닙니다. 월급 통장에 얼마가 찍히느냐 보다 정신적 여유로움과 마음의 충족감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구드룬 쉬만 전 스웨덴 페미니스트당 대표(왼쪽)는 소프트걸 트렌드에 대해 “마치 50년대 같다. 한심하다” 라고 일침을 가했다. [사진=유튜브 캡처]](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8/mk/20251228142708679wfrx.jpg)
물론 비판이 많습니다. “사회적 책임 회피일 뿐” “자기 한 몸 편하려는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등 날선 목소리가 쏟아집니다.
구드룬 쉬만 전 스웨덴 페미니스트당 대표는 “여성이 다시 가정에서 가사일에 묶이는 것을 조장하고, 사회 진출을 저해한다”며 “노동권과 경제적 자립을 위해 싸워온 여성 투쟁의 역사를 모르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성평등 선진국에서 인정할 수 없는 성평등 퇴보현상이라는 겁니다.
맞벌이가 필수적인 스웨덴 경제구조상, 또 가뜩이나 고물가가 전지구적 화두가 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이탈은 다른 납세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하지만 단순히 성평등의 ‘퇴보’로만 보기에도 문제가 간단치 않습니다. ‘소프트 걸’의 상당수는 어찌됐건 ‘일 중독’이 성별과 관계없이 심신을 망친다는 문제의식 하에서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둔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나다운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의 평등을 지향하는 몸부림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지난해 8월 발표된 연례 청소년 조사에서 스웨덴 초·중학생의 14%가 스스로를 ‘소프트 걸’이라고 자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향후 스웨덴에서 이러한 트렌드가 더 확산될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만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의 한 장면. [뉴스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8/mk/20251228142709968eubi.jpg)
이에 근래 한국 2030 세대 사이에서 ‘워라밸’을 넘어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조용한 사직’이나 ‘소확행’ 또는 아예 구직을 단념하는 니트(NEET)족이 늘어나는 현상도 스웨덴에서의 상황과 궤를 같이합니다.
특히 한국사회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가치관의 대전환’입니다. 젊은 인재들은 더 이상 높은 연봉이나 승진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려 하지 않습니다.
스웨덴의 ‘소프트 걸’ 현상은 단순히 “일하기 싫다”는 투정일 수 있지만, “무엇을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효율과 성장에 매몰돼 개인의 행복을 소모품 취급해오지는 않았는지, 한국 사회도 한번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높은 GDP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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