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지역’에서 ‘시간을 설계하는 도시’ 청송

김종철 기자 2025. 12. 2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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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포 기능 회복, 젊은 상태 가까운 반응 다시 끌어내"
항노화가 노화의 속도 늦추는 방법?
역노화 산업단지, 주민·농업·연구·산업 함께 얽는다
청송AI 역노화 연구·산업협력 업무협약 체결. /청송군제공

 청송에서 조금 낯설은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현실 앞에서 또 하나의 공단이나 개발 사업 대신  ‘시간’을 선택했다. 경북도와 청송군, 대구가톨릭대학교 AI역노화연구원이 함께 추진하는 역노화 산업단지 구상은 사람의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을 지역의 미래 전략으로 끌어올린 시도다.

청송을 비롯한 경북 북부 지역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인구는 줄고 고령 인구 비율은 높아져 농업 중심의 산업 구조는 더 이상 젊은 세대를 붙잡기 어렵다. 학교와 상가가 줄고 마을의 활력도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처럼 대규모 제조업 공단을 유치하거나 인구 유입을 전제로 한 개발 전략은 현실성이 낮다. 대신 청송은 이미 주어진 조건, 즉 초고령 사회라는 현실 자체를 연구와 산업의 출발점으로 삼는 길을 택했다.

역노화,  '건강한 시간을 늘리는 연구’

역노화는 흔히 항노화와 혼용되지만, 연구의 출발점은 다르다. 항노화가 노화의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역노화 연구는 이미 시작된 노화 상태를 생물학적으로 어느 지점까지 되돌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노화가 단순히 시간이 쌓인 결과가 아니라 세포 기능과 유전자 조절 상태가 변화한 가역적인 생물학적 상태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노화된 세포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회복시키거나 노화 신호를 조절해 젊은 상태에 가까운 반응을 다시 끌어내는 실험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이는 시간을 거꾸로 완전히 되돌린다는 의미라기보다 노화로 인해 흐트러진 생물학적 균형을 다시 정상 범위로 회복시키려는 시도에 가깝다.

다시 말하자면, 역노화는 노화를 제거하거나 부정하는 기술이 아니라 노화 과정 중 되돌림이 가능한 구간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연구다.

청송에서 추진되는 역노화 연구 역시 이러한 관점에 서 있다.

목표는 인간의 수명을 무한히 늘리거나 늙지 않는 존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노화로 인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간을 가능한 한 줄이고 건강한 상태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데 있다. 이 점에서 항노화가 노화의 속도를 늦추는 접근이라면 역노화는 이미 진행된 노화 과정 중 일부를 되돌려 건강한 상태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고령화 사회가 안고 있는 부담과도 맞닿아 있다.

노인성 질환의 발병 시점이 늦춰지고 기능 저하의 속도가 완화될수록 개인의 삶의 질은 높아지고, 지역과 사회가 감당해야 할 의료·돌봄 부담도 함께 줄어든다. 청송에서 역노화 연구가 지역 전략으로 선택된 이유는 이 연구가 단지 생명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지속 가능성과 삶의 질을 함께 다루는 실천적 연구이기 때문이다.

Adam Antebi 독일 막스 플랑크 노화생물학연구소장이 역노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청송군 제공

□ 역노화 산업단지 

청송이 구상하는 역노화 산업단지는 일반적인 산업단지와 성격이 다르다. 대규모 공장을 유치해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연구–검증–제품화–서비스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단지의 중심에는 AI 역노화연구원과 공동 연구·분석 공간이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역노화 관련 기초 연구와 함께 청송 사과를 비롯한 지역 농산물과 천연물의 성분 분석, 기능성 평가, 데이터 축적이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가 단발성 연구 결과로 끝나지 않고 시간이 쌓일수록 가치가 커지는 장기 데이터로 관리된다는 점이다. 역노화 연구는 단기간 성과보다 장기 추적과 비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가 산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검증 과정이 필수다. 이를 위해 산업단지에는 공동장비센터와 분석·표준화 시설이 함께 들어선다. 원료의 성분과 품질을 동일한 기준으로 분석하고 시제품 단계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는 공간이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장비와 검증 과정을 공동으로 활용함으로써 초기 창업 기업이나 중소기업도 연구 성과를 빠르게 제품으로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다음 단계가 소재·제품화 영역이다. 기능성 원료, 건강식품, 화장품, 웰니스 관련 기업들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한다. 이 과정은 대량 생산보다 빠른 개선과 재검증을 중시한다. 연구–시제품–데이터 분석–개선이 반복되면서 소규모 기업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다.

이 모든 과정은 지역 농업과 분리되지 않는다. 청송 사과와 인근 지역 농산물은 단순한 원료 공급을 넘어 연구와 산업의 출발점이 된다. 품종과 재배 방식, 수확 시기, 가공 조건에 따라 기능성 성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데이터로 축적하고, 그 결과를 농가와 공유하는 구조다. 농업은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품질과 기능성으로 설명되는 산업으로 전환된다.

산업단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연구와 산업의 결과는 웰니스 서비스와 체험 영역으로 확장된다. 주민과 방문객이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생활습관 개선과 회복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연구와 산업의 성과가 일상에서 체감될 때, 역노화 산업단지는 비로소 지역의 삶과 연결된다.

KAIST 이승재 교수가 현재 존재하는 역노화 연구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송군 제공

□ 왜 청송이어야 하는가

“이런 연구와 산업은 대도시에서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이 뒤따른다. 그러나 역노화 산업단지의 성격을 고려하면 청송이라는 입지는 우연이 아니라 조건에 부합하는 선택이다.

첫째, 역노화 연구는 실험실보다 생활 환경과 시간이 중요하다. 노화와 건강은 단기 실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장기간의 생활 습관과 환경 영향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청송은 초고령 인구 비율이 높고 생활 방식과 환경 변화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역이다. 이는 역노화 연구를 실험실 밖에서 검증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둘째, 청송은 농업과 자연환경이라는 분명한 자산을 갖고 있다. 기능성 산업은 원료의 신뢰성과 스토리가 중요하다. 이미 사과로 잘 알려진 청송이라는 지역 브랜드는 기능성 소재와 웰니스 산업을 확장하는 데 강력한 기반이 된다.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가 곧 제품의 가치가 되는 시대에, 청송이라는 이름 자체가 경쟁력이 된다.

셋째, 인구와 노동력이 제한된 지역일수록 대규모 제조업보다 지식·데이터 기반 산업이 적합하다. AI와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도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청송은 큰 공장이 아니라 작지만 밀도 높은 산업 생태계를 실험하기에 알맞은 지역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이 겪는 문제는 지역 안에서 풀 때 지속된다. 역노화 산업단지는 외부 기업을 잠시 유치하는 사업이 아니라, 주민·농업·연구·산업이 함께 얽힌 구조를 만드는 시도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이를 지역의 미래 전략으로 전환하려는 점에서 청송의 선택은 의미를 갖는다.

청송의 역노화 산업단지는 나이를 되돌리는 도시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아픈 시간을 줄이고 건강한 시간을 늘리는 도시, 그리고 농업과 자연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지역을 제안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지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청송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을 정면으로 꺼내 들었다. ‘늙어가는 지역은 어떻게 미래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한 실험이 지금, 청송에서 진행되고 있다.

/김종철기자 kjc247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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