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목적은 민생…‘특검 만능론’ 벗어나 대화하고 공존하라

성한용 기자 2025. 12. 2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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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620
‘통일교 특검’ ‘윤석열-김건희 2차 특검’ 불가피
종교단체-정당 해산론은 민주적 기본질서 흔들기
“한국 사회 성숙 위해 절실한 것은 대화의 복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검은 특별검사를 줄인 말입니다. 통상의 수사나 기소로는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울 때 특검을 설치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합니다.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 검사의 범죄를 특검이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6월3일 대선 직후 도입한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 해병 특검 등 3대 특검은 이례적으로 전직 대통령 부부의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임 때 계속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다음 정권에서 특검을 하는 것이 불가피했습니다.

3대 특검은 12월28일 김건희 특검을 마지막으로 수사 기간이 모두 종료됐습니다. 3대 특검을 도입할 때만 해도 특검 수사는 연말까지 마무리하고 2026년 새해에는 민생과 경제가 국정의 중심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아닌 것 같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당분간 특검 정국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2차 종합특검과 통일교 특검 때문입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월26일 기자회견에서 “노상원 수첩, 여인형 메모, 채 해병 사건 구명 로비 의혹, 김건희·윤석열의 국정농단 등을 포함해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의 전말과 윤석열 정권의 모든 국정 농단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새해 1호 법안은 2차 종합특검이 되어야 한단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통일교 특검도 강한 추진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통일교 특검으로 2022년 대선 당시 국민의힘의 쪼개기 정치 후원금 수수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 합니다. 정교유착은 우리 헌법에서 엄중히 금지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헌법 제20조 제2항에서 ‘국교는 인정되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하여, 정교분리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 제8조 제4항에서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위헌 정당 해산 심판 대상이 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교유착은 위헌 그 자체로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입니다.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국민의힘과 통일교의 유착이 유죄로 확정된다면,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으로서 해산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정청래 대표는 본래 통일교 특검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의혹이 터졌을 때 국민의힘이 통일교 특검을 요구하자 “절대 수용 불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언감생심” 등 강한 표현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러다가 12월22일 갑자기 통일교 특검을 받아들였습니다. 정청래 대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대통령실과 조율을 거친 것입니다. 이유는 두가지였습니다.

첫째, 민심입니다. 12월19일 발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통일교 특검 여론은 찬성 62%, 반대 22%였습니다. 민주당 지지층도 67% 대 22%로 찬성이 훨씬 높았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정청래 대표는 민주당 당원 및 지지자들의 뜻을 가장 충실하게 대변하는 정치인입니다.

둘째, 야당의 ‘도발’입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의 통일교 특검 연대는 단순한 정치 공세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는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싸움꾼 기질을 가진 정치인들입니다. 야당의 통일교 특검 공세가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의 승부 근성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권의 이런 정면돌파 방식은 그리 바람직한 선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구요?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민심은 당위론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 파면 직후 ‘뉴스 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대통령 임기 중 재판에 대한 의견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가 57%,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을 중단해야 한다’가 36%였습니다. 5월에도 52% 대 45%로 재판 계속이 높았습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당위론이 반영된 민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재판은 중단하는 것이 국민주권이라는 헌법 가치에 부합합니다. 실제로 법원도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특검에 대한 여론조사는 어떤 특검이든 찬성 의견이 더 많이 나옵니다. 특검이라는 단어 자체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특검 찬성 여론이 높다는 이유로 특검을 해야 한다면 특검 만능론에 빠져 특검 공화국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온갖 사건을 특검이 다 수사하고 기소한다면 검찰청을 폐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검찰 공화국이 바람직하지 않듯이 특검 공화국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투기가 만연해도 부동산 특검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환율이 심각하고 환투기가 만연해도 환율 특검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특검은 만능 해결사가 아닙니다.

여권이 통일교 특검 도입의 근거로 내세운 “정교유착은 위헌”이라는 논리는 잘못된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12월 2일 국무회의에서 “일본은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종교재단에 해산 명령을 했다”고 했습니다. 12월9일 국무회의에서 “법원이 최종 판단하겠지만, 해산 권한은 주무 관청(문화체육관광부)에 있다. 법인도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면 해산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12월24일 ‘오마이티비 유튜브’에 출연해 “정교분리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정교유착 문제에 대해 이번에 거침없이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국민의힘 해산까지 언급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세영 한겨레 정치부장이 12월24일 페이스북에 ‘정교분리, 제대로 알고 말하라’라는 글을 올려 이규연 수석과 정청래 대표의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헌법의 정교분리 조항은 종교단체의 정치 활동을 부정하고 금지하는 조항이 아니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종교인과 종교단체는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다. 독일의 기민당, 기민련, 일본 공명당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니 종교단체의 위법한 정치개입을 이유로 ‘위헌’의 딱지를 붙여 단체 해산을 요구하는 건 정교분리 원칙을 정치적으로 오용하는 것이다. 통일교든 신천지든, 전광훈 교회든, 종교단체가 정치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현행법(정당법, 정치자금법, 형법, 기타 법률)을 위반했다면 그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위헌을 얘기하며 종교단체와 정당에 대해 해산을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흔드는 행위라는 걸 잊지 말 일이다.”

저는 이세영 부장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여야가 모두 통일교 특검을 해야 한다고 나섰기 때문에 통일교 특검은 하게 될 것입니다. 특검 후보 추천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여야가 조금씩 양보해서 합의하면 될 일입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윤석열-김건희 2차 종합특검도 하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 특검을 하면서 윤석열-김건희 2차 종합특검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특검의 수사 대상과 기간을 최소한으로 좁혀야 합니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 때까지 특검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부동산과 환율이 심각합니다. 민생지원금이 끊어진 뒤 경기도 좋지 않습니다. 정치의 목적은 결국 민생이라는 사실을 여야 모두 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가 2025년 성탄 대축일에 신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세계적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느새 외국인들이 방문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높아진 위상 이면에는 또 다른 슬픔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분쟁, 대화와 타협 없이 대립으로만 치닫는 갈등, 단체와 정당 등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이기주의에 모두 지쳐가고 있습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2월26일치 중앙일보에 ‘다시 대화 운동을 제안하며’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 대화가 가장 불가능한 영역은 바로 의회와 정치다. 적대와 증오로 양극화가 가장 심한 곳 역시, 시장도 시민사회도, 종교도 젠더도, 학교도 언론도 아닌 정치와 의회다. 대화가 본령인 의회는 대화를 차단한 채 상대를 유죄집단·범죄집단으로 간주하여 배제와 적대, 일방통행을 반복한다. 나아가 서로 끝없는 응징·고발·처벌·타도를 언명한다. 국민주권을 통한 선택과 선거의 의미는 실종된다. 스스로 유사 법원과 유사 검찰로 전변되었다. 대화의 실종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갱생과 성숙을 위해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대화의 복원이다. 하여, 대화문화아카데미 60주년을 맞아 다시 대화 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창한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살려낼 이 상서로운 바람이, 최악인 정치와 의회에서부터 불기를 호소한다.”

저는 정신철 주교와 박명림 교수의 지적과 제안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증오와 갈등보다는 공존과 대화입니다. 특검으로 경쟁 세력을 말살하려 하기보다는 정치를 복원해서 민생을 살려야 합니다. 새해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민생과 경제를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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