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이후 대구의 1년, 그럼에도 싹튼 것들 [전국 인사이드]

김보현 2025. 12. 2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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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모인 이들이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12월3일 저녁 대구 중앙로역 인근, 현수막과 작은 스크린이 전부인 집회에 300여 명이 모였다.

'윤석열퇴진 대구시국회의'라는 이름으로 모인 90여 개 단체 활동가들은 성명문을 쓰고 무대를 쌓았으며, 모두가 평등한 집회가 되도록 노력했다.

대구처럼 민주노총, 진보정당,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 매일, 매주 집회를 연 사례는 서울을 제외하면 드문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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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1년을 맞은 12월3일 대구 동성로 CGV한일극장 앞에서 ‘내란 청산! 사회대개혁 실현! 대구시민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거리에 모인 이들이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에 누군가 “집회를 해야 추워지나 보다” 하고 농담을 던지자, 주변으로 웃음이 번졌다. 12월3일 저녁 대구 중앙로역 인근, 현수막과 작은 스크린이 전부인 집회에 300여 명이 모였다. 보수 집회의 행진 대오가 ‘윤석열 대통령’을 외치자,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국민의힘 지지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장면, 보수의 심장으로 뭉뚱그려지는 시선에 던지는 돌멩이. 여기에 ‘분투’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더 적절한 단어가 없을까 하는 아쉬움에 쉽게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123일간 이어진 광장에서 대구 시민들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집회는 지난해 12월4일 ‘내란 범죄자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구호로 시작해서, 올해 4월4일 ‘TK 콘크리트는 깨지기 시작했다’로 마무리됐다. 당시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은 26차례 열린 대구 집회를 모두 생중계했다. 그리고 최근 내란 사태 1주년을 맞아 그때의 영상, 성명서, 손피켓, 사진을 아카이빙한 온라인 사이트 ‘분투:123일의 기록’을 열었다(page.newsmin.co.kr/tkreboot/timeline). 연인원 11만3000여 명, 역사의 무게를 견뎌낸 대구 시민의 기록이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순간 대구 도심에서 4만5000여 명이 함께 환호했을 때, TK의 딸들이 보내온 연대의 글을 읽을 때 대구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나와 내 주변이 느끼는 고립감은 그 전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내란과 선 긋지 않은 채 영남당을 자처했고,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는 순간을 여전히 마주했다. 대구·경북 밖에선 더욱 거센 혐오가 쏟아졌다. 대선 결과 같은 지표를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지역 곳곳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부여잡으며 광장을 이어갔다. 〈뉴스민〉은 광장에 나온 이들에게 남은 작고 단단한 돌멩이를 담기 위해 ‘TK 리부트’라는 기획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말들은 비단 내란 사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다. 박정희라는 상징 아래 강요된 침묵, 양당 체제 속 주어진 반쪽짜리 선택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언론이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들어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렇게 모은 자성과 다짐의 말은 하나하나 변화의 씨앗이었다.

12월3일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내란 청산! 사회대개혁 실현! 대구시민대회’. ⓒ민주노총 대구본부

이곳의 집회는 뜨거웠다, 국회 앞 못지않게

한편으로 광장은, 원래 대구가 갖고 있던 저력을 드러낸 자리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서로 지지고 볶던 지역 활동가들의 연대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했다. ‘윤석열퇴진 대구시국회의’라는 이름으로 모인 90여 개 단체 활동가들은 성명문을 쓰고 무대를 쌓았으며, 모두가 평등한 집회가 되도록 노력했다. 대구처럼 민주노총, 진보정당,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 매일, 매주 집회를 연 사례는 서울을 제외하면 드문 것으로 안다. 이들은 대선 이후 발표한 해산 입장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해서 광장의 배움과 시간을 잊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광장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열망을 가지고 지역사회 곳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12·3 내란 1년을 맞은 12월3일 대구 동성로 CGV한일극장 앞에서 ‘내란 청산! 사회대개혁 실현! 대구시민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실제로 올해 민주노총 대구본부가 만든 ‘달곰이지부’를 비롯해 광장에서 형성된 느슨한 연대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 이주노동자 대회 등 여러 투쟁 현장으로 이어졌다. 11월28일 발간된 민주노동연구원 보고서 ‘윤석열 탄핵 광장과 노동: 청년 불안정 노동자와 민주노총의 연결’에선 이들의 활동을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기 어려웠던 청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더 정확한 언어와 이해”라며 “누구나노조지회, 꿀비지회, 달곰이지부 등은 광장 청년들에게 당장 조합원이 되지 못하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자 했다”라고 서술했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감각이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이처럼 지역 단체들의 노력이 튼튼한 바탕이 됐다.

우린 그때 무엇에 대항하여 싸웠는가. 1년이 지나 다시 열린 광장에서 물었다. 윤석열과 윤석열들에 맞서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 국회 앞 못지않게 대구의 집회도 뜨거웠다. 그 열기, 지역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는 아직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

12·3 내란 1년을 맞은 12월3일 대구 동성로 CGV한일극장 앞에서 ‘내란 청산! 사회대개혁 실현! 대구시민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12·3 내란 1년을 맞은 12월3일 대구 동성로 CGV한일극장 앞에서 ‘내란 청산! 사회대개혁 실현! 대구시민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김보현 (<뉴스민>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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