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막던 남친 '지능 11세' 장애…징역 50→27년 '반토막' 왜?
대구 원룸 강간미수·살인미수 사건…징역 27년

번호키가 '삑' 하고 울린 순간,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은 끔찍한 지옥이 됐다.
원룸 현관 앞, 비밀번호 입력음이 멈추자 문이 열렸다. 그 찰나 뒤편에 붙어 있던 신원미상의 남성이 손을 뻗어 문을 잡았다. 배달라이더 복장이었다.
배달을 하러 온 사람처럼 복도를 서성였던 그는 피해 여성이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발을 들이 밀었다. 현관문이 닫히기도 전에 손이 문틈을 파고들었고, 낯선 남자는 집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성폭행 위기 여친 구하려다 뇌손상 '영구장애'
피고인 이 씨는 배달라이더로 약 3년간 일해 왔다. 혼자 거주하는 여성이 많은 원룸 건물은 배달 복장으로 출입해도 의심을 덜 받을 것이라 여겼고, 여성을 성폭행하는 상상을 하다 실행을 결심했다.
범행 나흘 전인 2023년 5월 9일부터 5월 12일 오후 9시 무렵까지 스마트폰에 남은 검색 기록은 "강간", "한밤 중 여자 화장실서 몰카", "D 살인사건", "부천 엘리베이터 살인사건" 등이었다.
2023년 5월 13일 오후 10시 7분, 이 남성은 대구 모처에서 흉기 한 자루를 구입했다. 범행도구를 손에 넣은 뒤 그는 원룸촌을 돌며 대상을 물색했다. 오후 10시 56분쯤 골목을 혼자 걷던 여성 피해자 A씨를 발견하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뒤따라 붙었다.
피해자 A씨가 원룸 건물로 들어가자 남성도 따라 들어갔다. 배달을 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려는 듯 주변을 서성였다. 피해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도록 두고, 그는 계단을 이용했다. 몇 층에서 멈추는지 살피며 올라갔고, 3층에 도착했다. 복도에선 피해자 앞을 스쳐 지나가며 다른 방에 볼일이 있는 듯 행동했다.
A씨가 자택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이 씨는 바로 뒤따라가 현관문을 잡고 침입했다. 이어 피해자를 바닥에 넘어뜨린 뒤 흉기로 위협하며 "가만히 있어라. 시키는거 다해라"라고 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반항하는 피해자를 마구 때리며 성폭행을 시도했다.
그때, 현관문이 다시 열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A씨의 남자친구 B씨가 들어와 이 씨를 제지하면서 성폭행은 미수에 그쳤다. 남자친구와 함께 흉기를 든 이 씨를 붙잡으며 함께 제지하던 A씨에게 이 씨가 흉기를 휘둘렀고, A씨는 다쳤다.
범행은 복도까지 이어졌다. 이 씨는 원룸에서 B씨가 양손으로 몸을 밀치자 화가 나 흉기를 휘두르며 원룸 앞 복도로 나왔다. B씨와 복도에서 몸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살해할 마음을 먹고 흉기를 휘둘렀으나 미수에 그쳤다. 이 씨는 그대로 원룸 건물에서 뒤쳐나와 오토바이로 도주했다.
비록 살아남았지만, B씨의 피해는 끔찍했다. B씨는 응급실로 이송된 후 과다 출혈로 인해 2~3 차례나 심정지가 발생하였고, 병원에서는 소생 가능성이 없으므로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알리기도 했다. 20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약 40여일 만에 가까스로 의식을 찾았으나,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
담당의사는 "B씨의 사회연령은 만 11세 수준에 머무르고, 언어, 인지행동장애, 신경 손상에 대한 완치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일상생활 중 효율적 문제 해결이 어려우며, 간단한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다른 범행도 있었다. 이 씨는 2021년 7월 초순 대구 북구의 한 모텔에서 한 여성을 나체를 8회 촬영한 혐의(카메라등이용촬영)로도 유죄 판단을 받았다.

◇ 1심 '법정 최상한' 징역 50년→2심 징역 27년
1심은 이 씨에게 징역 50년을 선고하고, 등록정보 10년 공개·고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과 장애인관련기관 각 10년 취업제한, 2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이 씨는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7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씨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수사 단계부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 강간살인미수 범행이 처음부터 계획된 범행은 아니고 우발적 측면이 있어 보인다는 점,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등이 언급됐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의 중대성 및 피해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감안하더라도 1심이 유기징역의 법정 최상한인 징역 50년을 선고한 것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B씨의 불행한 삶이 간추려져 있었다. 전체 지능지수(FSIQ)가 61로 '매우 낮음' 수준에 해당하고, 적응행동 표준점수도 52점으로 '낮음' 수준에 머물러 의사소통·생활기술·사회성 등 전반의 적응행동이 낮은 상태가 지속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범행 이후 주의력·집중력 저하와 대인관계 기피가 나타났고, 평생 치매예방약과 머리영양제를 복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판결문에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