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터줏대감’ 북적북적 그곳…시민의 안전을 84년째 지켜왔다 [우리동네 경찰서]

김아린 2025. 12. 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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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찰의 창경 80주년,
헤럴드경제는 서울의 31개 경찰서를 소개합니다.
우리동네 경찰서 (4) 성동경찰서
서울 성동구 성동경찰서 전경 [성동경찰서 제공]

[헤럴드경제=김아린 기자] 서울 동북권의 중심 왕십리역 4번 출구에서 도보로 불과 2분 거리. 이곳에 서울 성동경찰서가 있다. 1941년부터 8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성동서는 광진, 강남경찰서가 문을 열기 전까지 성동부터 강남과 송파, 강동까지 담당했다. 서울 동쪽 권역의 치안을 오롯이 책임지던 시절이다.

성동서는 관할 구역의 정중앙에 있다. 어디에서든 요청이 오면 신속하게 달려갈 수 있다. 성동서 관계자는 “경찰 출동은 0.1초 싸움이라고 할 만큼 빠른 초동 대응이 중요하다”며 “경찰이 필요할 때 가장 가까이에서 성동 주민들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왕십리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성동서의 민원실은 시민들로 늘 북적인다. 교통 요충지에 있고 접근성이 뛰어나 성동 주민들은 물론 외지인들 방문도 많다. 성동서를 찾는 민원인 숫자는 서울 안에 있는 31개서 중 최상위권이다. 특히 고령 민원인들에게 수요가 많다. 성동서 관계자는 “동네 어르신들은 경찰을 찾을 일이 생기면 왕십리역을 자동으로 떠올리실 만큼 우리 서가 각인돼 있다”며 뿌듯해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5호선과 경의중앙선, 수인분당선, ITX 청춘 다섯 개 노선이 지나는 왕십리역에 위치해 유실물 처리도 타서 대비 압도적으로 많다. 서울 지하철 전체 유실물의 40% 이상이 성동서에 접수된다. 반환되는 유실물 비율도 30%대로 높은 편이다.

교통이 편해 시민들이 쉽게 발걸음하는 만큼 ‘아날로그’ 민원 처리가 성동서의 강점이다. 온라인을 활용한 비대면 민원이 늘지만, 성동서는 여전히 대부분의 민원을 시민과 얼굴을 마주하고 접수한다.

성동서의 얼굴들 : 베테랑 수사관부터 새내기들까지
성동경찰서 수사과 지능팀 김수환 경사(왼쪽)와 교통범죄수사팀장 조장귀 경위가 22일 오후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수사과 지능팀 소속 김수환 경사는 피해자 48명, 총피해액 41억여원에 달하는 대규모 전세 사기를 일망타진한 주인공이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김 경사는 수감 중인 임대인을 여러 차례 접견 조사하며 자백을 받아냈다. 임대인이 부동산 다수를 매입할 능력이 전혀 없는 점을 수상히 여겨 추적한 결과 배후에 있던 공인중개사, 공인중개보조원 등 6명을 추가 적발했다. 김 경사는 “전세 사기를 당한지도 모르고 있던 임차인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려주고 좀 더 빠르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이 가장 뿌듯하다”고 소회를 밝다.

교통범죄수사팀장인 조장귀 경위는 3년간 끈질긴 추적 끝에 배달 기사들의 조직적인 보험 사기를 밝혀냈다. 13년 넘게 경제·지능 범죄를 수사해 온 조 경위는 배달 기사들이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 등 감시가 허술한 구역에서 허위로 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타 내는 수법을 공유한 정황을 적발했다.

그에게 덜미가 잡힌 배달 기사들은 16명. 이들의 공동 범행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2003년부터 성동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 경위는 “다른 관할지역의 시민들도 성동서까지 찾아와서 신고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며 “편하게 찾아주는 경찰서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성동경찰서 경무계 소속 백민기 경사, 오대영·이희준 경장이 22일 오후 헤럴드경제 취재에 응대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8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경찰서인 만큼 내로라하는 선배들이 많다. 성동서의 한 직원은 “성동서가 훌륭한 선배 경찰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역량을 키우고 싶어 하는 초임 경찰들이 앞다투어 오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성동서에서 성장하는 경찰관 ‘삼형제’가 있다. 경무계 마스코트라고 불리는 백민기 경사, 오대영·이희준 경장이다.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를 비슷하게 졸업하고 경찰 등용문을 통과해 성동서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우리 서는) 선배들이 끌어주는 분위기라 배우며 ‘고속 성장’하기 좋다”고 했다.

억울한 ‘장발장’ 없도록…경미범죄委 활발
서기용 성동경찰서장이 22일 오후 성동서에서 직원들과 차담을 갖고 있다. [임세준 기자]

성동서는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피의자가 전과가 없고 피해가 없거나 가벼운 경우 감경 여부를 결정하는 ‘현대판 장발장 구하기’ 제도로 알려져 있다. 성동서장으로 부임한 지 1년 6개월이 된 서기용 서장은 위원회 활성화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

서 서장은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리게 된 어르신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있을 텐데 천편일률적으로 재단하지 않도록 하는 차원”이라며 “사법 행정의 시작인 경찰이 첫 단추를 잘 끼우도록 입건 전부터 촘촘하게 심사를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동이 발전하는 배경에는 성동 주민들의 뛰어난 공동체 치안 의식과 더불어 성동 경찰의 치안 뒷받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맡은 바 임무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병기 성동경찰서 경무과장이 22일 오후 성동경찰서 내부 노후 시설을 안내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현재의 성동서 청사는 1986년 지어졌다. 건물 곳곳도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낡아가고 있다. 지하 주차장은 안전 진단에서 탈락해 현재 아예 폐쇄 상태다. 천장을 받칠 수 있도록 설치된 철근 기둥 130여개로 버티는 위험한 처지다. 신축 청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됐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말만 무성하다.

정치권에서는 성동서를 인근으로 옮기고 빈자리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언급해 왔다. 직원들은 왕십리역 코앞의 지금 자리가 치안 활동을 펼치기에 적임지라고 생각한다. 최근 성동서가 자체 조사를 했더니 경찰 구성원 90% 이상이 경찰서 이전에 반대했다.

35년 전 성동서를 초임지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이병기 경무과장은 “1941년 개서한 성동서는 80년 넘는 역사가 녹아 있는 치안 유산”이라고 했다. 이 과장은 “본래 부지에 재건축되는 것이 성동서를 찾는 많은 민원인과 자율방범대·안보자문협의회 등 협력단체를 비롯한 경찰들의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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