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강추위에도 ‘텅 빈’ 이동노동자 쉼터… 접근성·절차에 ‘외면’

고건 2025. 12. 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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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받기 바쁜데 QR인증까지?”… 문턱 높은 쉼터, 노동자는 떤다

접근성 떨어져, 한파에도 이용객 ‘0명’
배달기사 없는 쉼터, 어르신만 찾아

26일 오전 찾은 성남의 이동노동자 간이쉼터 모습. 2025.12.26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영하 10도 안팎으로 찾아온 강추위에도 이동노동자들은 건강과 휴식 등을 지원하는 전용 쉼터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접근성과 시설별 편차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는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지난 26일 오전 10시께 찾은 성남의 한 이동노동자 간이 쉼터. 영하 11도까지 낮아진 기온에 두꺼운 패딩 등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시민들이 시설 인근을 지나갔지만, 1시간 30분 동안 시설 내부에 들어온 사람은 2명뿐이었다.

2명 모두 65세 이상 어르신이었다. 야탑역 인근에 있는 쉼터의 내부에는 난방 시설과 TV, 정수기, 간이 소파 등 휴식 시설들이 설치돼 있지만 찾는 이동노동자는 없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모(70대)씨는 “역 근처라 주변을 걷다가 추우면 한 번씩 들어온다. 이곳에 3번째 왔지만, 배달기사 등 일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어르신들 한파 쉼터로 종종 이용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성남뿐 아니라 용인과 화성 등 도내 4곳의 쉼터를 방문해 각각 1시간 이상 머물렀지만, 이동노동자는 1명도 시설 내부에서 만나지 못했다.

화성 동탄신도시에 위치한 이동노동자 간이쉼터의 모습. 내부에 이용하는 이동노동자가 없어 전등이 꺼져 있다. 2025.12.26/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같은 날 오후 2시께 방문한 화성 간이쉼터의 경우 동탄 1신도시 번화가 중심에 있어 시설 주변으로 수십명의 배달기사들이 지나갔다. 인근 기사들에게 쉼터 이용 경험을 묻자, 이들은 번거로움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2년차 배달기사 30대 최종원(가명)씨는 “오토바이를 잠시 주차하기도 힘들고, 콜 기다리는 동안 들어가서 쉬겠다며 출입 인증 절차를 거치는 것도 번거롭다”며 “무엇보다 배달 동선에 맞지 않는데 쉼터를 일부러 찾아가는 것도 시간이 아까워서 잘 안 찾게 된다”고 전했다.

이에 시설의 접근성 개선에 대한 요구가 나온다. 특히 사무실 형인 거점쉼터에 비해 간이쉼터의 시설이 열악한 편인 것으로 파악됐다. 도내 이동노동자 쉼터는 올해 26개(거점 10개, 간이 16개)로, 2023년(19개)에 비해 36% 증가했다.

화성 동탄신도시의 이동노동자 쉼터 출입구에 출입 QR코드에 대한 안내가 부착돼 있다. 2025.12.26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실제 성남과 화성 동탄의 이동노동자 간이쉼터에는 별도의 주차 공간이 설치돼 있지 않다. 화장실도 인근 상가 건물 등을 이용해야 하며 출입할 때 QR코드나 신용카드 등의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박현준 프리랜서권익센터 센터장은 “이동노동자 쉼터는 노동자 휴식권, 건강권을 위해 필요하다. 다만, 수원 등 일부 거점 시설은 편리하고 커뮤니티가 잘 형성돼 효과를 보고 있지만, 접근성 등의 문제로 실효성을 만족하지 못하는 시설도 있다”며 “간이쉼터 등은 임시 건축물로 지어져 불편 사항이 생기고 있다. 관리, 유지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해 그만큼 인력과 예산 등 행정력이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건 기자 gogosi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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