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낙태를 원한 부인에게 의원은 오히려 안태방(安胎方)을 처방했다

옛날 한 젊은 부인이 황혼 무렵에 너울을 쓴 채로 혼자서 어디론가 향했다. 너울은 옛날 사대부집 여성들이나 궁중의 나인들이 외출 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검은 비단 등으로 만든 모자나 두건을 말한다.
부인은 장옷까지 걸치고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겼다. 부인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약방이었다. 부인은 약방 대문 한켠에서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렸다. 인기척이 나자 의원이 진료실 문을 열고 내다봤다. 그런데 부인은 의원이 허락하기도 전에 서둘러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진료실 안에서도 부인은 너울을 벗지도 않는 것을 보니 무언가 감추고자 불안한 듯 보였다.
의원은 부인에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아녀자가 혼자서 어인 일로 오신 것이요? 보아하니 병색은 보이지 않는데 말이요.”라고 물었다.
곁에는 의원의 제자도 있었다. 의원은 제자에게 눈치를 주자 제자가 자리를 비웠다. 부인은 의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는 아랫마을 감나무집 대감댁의 둘째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잉태를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혹시 이 여인이 불순한 관계로 잉태가 되어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인가?’하고 의심했다.
부인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는 이미 두 살배기 아이가 있는데, 당시 출산할 때 난산으로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만 떠올리면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간담(肝膽)이 서늘해집니다. 그래서 다시 출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섭습니다. 제 월사가 끊기고 태기(胎氣)가 있다는 것은 집안에서 아무도 모르옵니다. 부디 낙태하는 처방을 주시어 이 목숨을 온전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은 그때서야 부인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의원은 부인에게 “하늘이 의원을 둔 것은 요절이나 횡사를 구제하고자 해서인데, 어찌 의원이 독한 약을 써서 생명을 끊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의원은 부득이한 경우 약으로 낙태를 시킬 수 있는 요량이 있었지만 한 생명을 지우는 일이라 꺼려했다.
그러나 부인은 끝내 물러나지 않고 더욱 간절히 요청해왔다. “의원님이 오늘 낙태 처방을 주지 않으시면 저는 이 약방을 떠날 수 없습니다. 출산을 하다가 죽을 바에 미리 목을 매거나 강에 빠져 죽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울먹이는 것이다.
의원은 어쩔 수 없이 진맥을 해봤다. 부인의 맥은 대허(大虛)했다. 사실 임신맥은 매끄러운 활맥(滑脈)이면서 완만해야 한다. 그런데 활맥은커녕 맥이 거의 잡히지 않았다. 의원은 ‘이 상태에서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유산이 되겠구나.’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의원은 약재 방에서 황련, 당귀 각 1냥, 건강, 백출 각 5돈, 감초 3돈을 조제해서 그것을 막자사발에 넣어 대충 갈았다. 약재들을 가루 낸 이유는 부인이 어떤 약재들인지 확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의원은 “이 약들을 달여서 수십 첩을 먹도록 하게나.”하고 일러주었다. 부인은 ‘독한 비방(祕方)이여서 이렇게 가루 내서 처방을 해 주신 거구나. 설령 내가 처방을 안다고 한들 발설하지는 않을 텐데, 매사에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분이시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의원의 처방을 낙태방으로 알고 가족들 몰래 열심히 달여서 먹었다.
10여 개월이 지난 후에 그 부인이 다시 찾아왔다. 부인은 의원에게 큰 절을 올리며 “저는 의원님의 처방이 낙태 처방으로 알고 복용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처방을 복용하면서 낙태는 되지 않고 오히려 몸이 건강해지면서 출산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이 처방은 안태(安胎) 처방이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고 열심히 마저 복용했습니다. 의원님 덕분에 순산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도 건강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부인이 되돌아간 후 옆에 있던 제자가 의원에게 물었다. “스승님, 지난번 낙태를 원했던 부인 아닙니까? 어찌 낙태를 원하는 부인에게 안태 처방을 해 주신 겁니까?” 그러자 의원은 “그 부인은 낙태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난산이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 낙태를 원했을 지라도 의원된 자로서 애걸하는 얼굴빛에 구애되어 함부로 낙태하는 처방을 투여한다면, 그것은 칼을 쥐고 살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라고 답했다.
그러자 제자는 “그럼 의원으로서 낙태하는 처방은 절대 쓰면 안되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스승은 “부득이하게 임신을 중절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부부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성교를 해서 임신이 된 경우, 자식이 많거나 아이를 기를 수 없는 경우, 혹은 여승이나 기생이 임신한 경우가 그렇다. 이런 경우는 출산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낙태 처방을 받기도 한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사실 옛날에는 유교적 생명관을 바탕으로 태 또한 생명으로 여겼기에 대놓고 낙태를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 간혹 독초를 이용해서 스스로 낙태를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독한 약으로 억지로 유산을 시키면 다시 임신하기가 어렵거나 사태(死胎)가 빠져나오지 않거나 출혈이 멈추지 않은 등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인대전양방>과 같은 부인과 전문 서적에는 단산방(斷産方)이나 낙태방(落胎方)이 나오기도 하지만, 환자가 원한다고 해서 의원들이라도 무작정 낙태처방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태(胎)라도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본초서에는 약재의 효능을 기록하면서 유산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띈다. 유산의 가능성이 있는 약재는 독한 약도 있었지만 평상시 흔하게 먹는 식품과 약들도 있다. 예를 들면 신곡(神麯, 약누룩)과 맥아(麥芽, 보리길금)다.
신곡과 맥아는 소화를 돕고 체기를 풀어주는 약재이지만, 기혈을 아래로 내리고 태기를 불안정하게 하는 작용이 있어 잘못 복용하면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임신 초기에는 신곡과 맥아를 금기로 여겼다. 이 때문에 보리길금이 들어가는 식혜 역시 임신 초기에는 피해야 할 음식으로 분류된다. 임신 초기에는 음식이라고 해서 항상 안전한 것이 아니다.
<상한경험방> 一女人, 黃昏時, 蒙頭以來告曰: "身今有孕, 而初産時, 産難幾死, 至今思之, 心膽驚寒. 乞賜落胎之劑, 以全此命." 余思之, 天以醫在, 欲濟夭橫, 豈可用藥而絶生氣可乎? 因據理開諭, 終不退而請之甚懇. 診之, 其脈大虛, 乃敎以黃連ㆍ當歸 各一兩, 乾干ㆍ白朮 各五戔, 甘艸 三戔, 煎服數十貼矣. 後聞順産子云. 醫拘於懇乞之顔情, 妄投落胎之劑, 則何異手刃而殺之乎! (어떤 여인이 황혼 무렵에 몽두리를 쓰고 찾아와서 말하였다. "제가 지금 잉태를 하였는데, 처음 출산할 때 난산으로 거의 죽을 뻔하였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마음이 놀랍고 간담이 서늘합니다. 부디 낙태하는 처방을 주시어 이 목숨을 온전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생각해 보니, 하늘이 의원을 둔 것은 요절이나 횡사를 구제하고자 해서인데, 어찌 약을 써서 생명을 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치를 따져 깨우쳐주었지만 끝내 물러나지 않고 더욱 간절히 요청해왔다. 진맥을 해보니 그 맥이 대허하기에, 황련·당귀 각 1냥, 건강·백출 각 5돈, 감초 3돈을 달여서 수십 첩을 먹으라고 일러주었다. 뒤에 듣자니 아이를 순산하였다고 한다. 의원이라는 자가 애걸하는 얼굴빛에 구애되어 함부로 낙태하는 처방을 투여한다면, 칼을 쥐고 살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부인대전양방> 斷産方論. 論曰 : 欲斷産者, 不易之事. 雖曰天地大德曰生, 然亦有臨産艱難; 或生育不已; 或不正之屬, 爲尼爲娼, 不欲受孕而欲斷之者. 故錄驗方以備所用. 然其方頗衆, 然多有用水銀, 蝱蟲, 水蛭之類, 孕不復懷, 難免受病. 此方平和而有異驗, 列具於後. (낙태방론. 논하여 말하기를 임신을 멈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천지의 큰 덕은 자식을 낳는 것이라 하지만 또한 분만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혹은 자식을 그만 낳고자 하기도 한다. 혹은 부정한 경우가 있는데, 여승이나 창녀가 임신한 경우가 그렇다. 이런 경우는 임신을 원하지 않고 단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쓸 수 있는 경험방을 기록한다. 그런데 그런 처방이 사뭇 많지만 주로 수은·맹충·수질 등의 약물류가 든 것이 많아서 임부가 다시 임신하기가 어렵고 병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 이 처방은 화평하면서도 특이한 효과가 있어 뒤에 나열하여 갖춰둔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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