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쭉하고 딱딱한 걸 입에 넣으라니요”…위험한 달콤함이 부른 ‘바나나 대학살’ [히코노미]
붉은 입술과 잘록한 허리. 사내들의 눈은 흐리멍덩해지고, 턱은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풀린 눈의 초점은 훤히 드러난 배꼽과, 그녀 머리 위에 올려진 노란 바나나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갔다. 넓은 공연장에는 ‘꿀떡’ 침 넘어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주인공은 ‘남미의 폭탄’이라고 불리던 1940년대 최고의 섹스 심볼, ‘카르멘 미란다’였다. 미국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 복판에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그녀의 성취가 기꺼운 기업은 미국 기업 유나이티드푸르트컴퍼니(UFC)였다. ‘바나나는 섹시하다’는 슬로건이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서, 바나나가 대량 소비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UFC는 돈을 쓸어 담았다.
바나나 소비는 달콤했으나, 생산은 쓰고 비렸다. 바나나 농장의 흙바닥은 수천 노동자의 피로 질척였다. 바나나라는 한 척도 안 되는 과일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경제사가 진득하게 녹아있다는 의미다.

350년이 지난 19세기 말. 바나나는 여전히 남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운송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였다. 미국과 유럽은 바나나가 낯설었다. 일련의 사업가들이 호기롭게 바나나를 배에 실어봤지만, 썩어버리기 일쑤였다.

바나나에 비로소 볕이 든 건, 1880년대였다. 냉장선(Reefer Ship)기술이 개발되면서였다. 이 기술을 눈여겨보던 이는 미국 철도 사업가 헨리 메이그스와 그의 조카 마이너 키스였다. 두 사람은 중남미 코스타리카에 철도를 까는 국책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었는데, 철도 노동자들을 먹이기 위해 사업장 바로 옆에서 바나나 농장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바나나는 중남미 날씨에서 재배하기가 쉬웠고, 그만큼 값이 싼 데다가, 두세 개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틀어막기 좋았다.

생산은 쉬웠으나, 문제는 소비였다. 바나나는 여전히 미국인에게 ‘민망한’ 과일이었다. 이 괴리에 메이그스와 키스는 골머리를 앓았다. ‘어떻게 하면 미국인들의 입에 이 길쭉한 바나나를 밀어 넣을 것인가.’


바나나를 먹은 아이들이 굵고 거름진 변을 보자, 키스와 UFC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제 비로소 ‘바나나의 시대’가 열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나나는 아픈 아이를 살리는 신의 음식이었다. UFC의 선박은 매일같이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바나나를 실어 날랐다.

UFC는 그녀의 이미지를 빌려 ‘미스 치키타’라는 마스코트까지 만들었다. 바나나를 베어 무는 미녀들은 대중의 무의식적 성욕을 자극했다. 바나나 앞에서 미국인들은 잠시 청교도적 도덕 감정을 내려놓았다. 몸에 좋고, 달콤한 과일이 무슨 죄인가. 이상한 상상을 하는 무뢰배들의 잘못이지. 바나나는 어엿한 미국의 국민음식이었다.

사람들은 UFC를 ‘엘 풀포(El Pulpo)’라고 불렀다. 문어라는 뜻이었다. 문어의 발처럼, UFC는 중남미의 모든 것을 휘감아 빨아먹고 있었다.

독점은 작은 옹기에 물이 고이는 일과 같아서, 새 물이 유입되지 않은 옹기에는 악취가 났다. UFC는 견제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중남미 민중에게 월급을 주는 건 UFC였으니까. 나랏님조차도 UFC 앞에서는 한낱 이방 같았다. 철도를 깔아주고, 세금을 내면서, 동시에 뒷돈을 먹여주는 기업에 쓴소리할 위인이, 적어도 중남미에 존재하진 않았다. 중남미는 점점 노랗게 물들어갔다. 바나나 하나에 의존하는 ‘바나나 공화국’이었다.

미국 국무부 장관 프랭크 켈로그는 ‘빨갱이 알레르기’가 있는 인물이어서, 콜롬비아 정권에 “UFC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으면 미 해병대를 상륙시킬 수 있다”는 경고장을 보냈다. 콜롬비아 정부는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이 모인 농장으로 군대를 보냈다. 수천명의 노동자, 그들의 아내, 그들의 아이가 모인 현장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콜롬비아 군대는 ‘시민의 군대’가 아니었다.

군의 총질에 너덜너덜해진 노동자들을 보듬은 건 문학이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백년의 고독’이었다. “3000명이 죽었네. 바나나 회사 놈들이 기관총으로 몽땅 쏴 죽여서 시신을 기차에 실어 바다에 버렸어.”
피비린내음이 가득한 대학살에도, UFC의 사업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서, 총 350만에이커에 달하는 중남미 농장에서 바나나를 수확했다. 서울 전체 면적 대비 23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중남미 전체에 바나나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대통령 하코보 아르벤스는 피가 끓는 열혈 민족주의자여서, UFC의 전횡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놀고 있는 UFC의 땅을 유상으로 몰수해 농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다. 보상금은 UFC가 신고했던 땅값을 기준으로 삼았다. 세금을 적게 내려고 터무니없이 낮게 신고한 값이 기준이었다. 아르벤스 식 토지개혁이었다. UFC는 참지 않았고, 바나나에서 다시 피비린내가 나고 있었다.
UFC에겐 쉬운 방법이 있었다. ‘빨갱이 배후설’이었다. 미국 덜레스 형제에게 SOS를 쳤다. 형인 존 댈러스는 미국의 국무장관, 동생 앨렌 댈러스는 CIA 국장이었다. 두 사람은 UFC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로펌 출신이었다. 정치와 경제는 강철로 연결돼 한 몸처럼 보였다. UFC가 이번 사태의 배후에 소련이 있다고 델레스 형제에게 전하자, 형 존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공산주의 대장 소련이 남미에 마수를 뻗치고 있다고 말했고, 동생 엘렌은 언론을 불러 ‘반공주의’ 군불을 땠다.
가짜 뉴스는 손쉽게 유력 언론 1면에 올랐다. 아르벤스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그는 어느새 소련의 앞잡이요, 미국의 첫 번째 표적이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통령 아르벤스는 그 길로 망명길에 올랐다. 과테말라에는 친미 군사 독재 정권이 자리를 잡았다. UFC는 땅을 온전히 돌려받았다.

(이 쿠데타 현장을 목격한 26세의 아르헨티나 의사가 체 게바라였다. 바나나 기업의 탐욕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혁명가를 탄생시킨 셈이다).

처음 맛본 자본주의가 너무 쓰고 맵고 떫어서, 중남미는 그 이후로 좀처럼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회주의 정권의 잇단 실정이 가난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중남미의 시민들은 자본주의를 품기를 주저했다. 중남미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 중 하나. 바나나 껍질 안에 숨겨진 고약한 진실이었다. 칠레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시로써, 아픈 마음을 보듬었다.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가장 달콤하고 육즙이 많은 조각을 차지했다/ 내 조국의 중심 해안, 아메리카의 잘록한 허리를/ 그들은 그 영토의 이름을 ‘바나나 공화국’이라 다시 지었다/그리고 잠든 시체 위로, 불안한 영웅들 위로, 공화국의 깃발들을 획득한 자들 위로, 그들은 파리떼를 풀어놓았다’
-유나이티드 푸르트 컴퍼니 中

ㅇ미국 사업가 마이너 키스는 코스타리카에 철도 사업으로 돈을 벌었는데, 바나나를 수출로 영역을 확장했다.
ㅇ수출을 시작한 이후, 바나나가 전염병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바나나 수익이 크게 늘어났고, 키스는 UFC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ㅇUFC가 중남미에 땅을 잠식하고 횡포를 부리자, 과테말라에서는 토지개혁으로 땅을 몰수 했는데, UFC는 이에 불복해 미국 정부를 움직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ㅇ이후 과테말라는 오랜 기간 내전에 빠졌고, 남미에서는 자본주의가 쉽게 뿌리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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