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햇빛과 바람을 나누다…신안 지역형 기본연금 실험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2025년 섣달 초순, 진도학회 제26회 국제학술대회에서 박우량 전 신안군수의 기조발표가 있었다. 고경남 전 유네스코팀장이 대신 발표한 내용의 대강은 신안군에서 최초로 시도하여 성공한 햇빛연금과 바람연금의 추진과 성과였다. 전체 주제인 '기후위기 시대 지역문화의 변동'이라는 컨셉과 잘 맞는 발표라고나 할까. 햇빛과 바람 등 자연을 기반으로 한 '지역형 기본연금'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외 10여 개가 넘는 주제발표들이 있었는데 나중 기회가 되면 소개하기로 하고 진도 및 현지 주민들의 관심이 높았던 연금 주제에 대해 개괄적이나마 소개해두기로 한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은 오랫동안 자동화, 노동 소멸,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맥락에서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 인류 사회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기본소득 논의 역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박우량 전 군수의 신안군 '햇빛연금·바람연금' 모델은 기본 기본소득 이론과 결을 달리하는 특징이 있다. 이 모델은 단순한 소득 재분배 정책이 아니라 자연, 에너지, 지역공동체를 결합한 새로운 사회계약의 실험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장차 연구 논문들이 쏟아져나오리라 생각되는데 기본적으로는 '햇빛과 바람이라는 자연 에너지 자산에서 발생한 수익을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정기적이고 보편적으로 배분하는 제도'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는 복지를 넘어선 연금, 더 정확히는 '기본연금(basic dividend)의 성격을 가진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신안군의 사례
벨기에의 정치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필립 반 파레이스는 기본소득을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무조건적 현금 지급으로 정의한다. 즉, 무조건성, 보편성, 현금성, 노동과의 분리 등이 핵심 키워드다. 하지만 파레이스의 이론은 소득의 재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이다. 국가의 조세 능력에 크게 의존하며 자연자원이나 지역성은 부차적 요소로 남는다는 단점이 있다. 북유럽식 논의에서는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국가의 복잡한 선별 시스템을 단순화하는 행정 효율성 모델로 제안된다. 사회적 안전망의 보편화, 노동시장 유연화 대응, 실업 및 비정규 노동 보호 등이다. 하지만 이 역시 중앙정부 주도의 재정 이전 모델이며 자연이나 지역공동체와의 결합은 약하다. 19세기 후반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모순을 토지세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헨리 조지는 토지와 자연자원을 공동체의 공유 자산으로 보고 그 지대를 배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유형은 자연자원과 소득을 직접 연결한다는 점에서 신안의 모델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런데 기본사회란 소득만이 아니라 출생, 돌봄, 정착, 노동, 노년에 이르는 인간의 생애 전 주기를 떠받치는 최소한의 사회적 토대를 제도와 문화로 함께 보장하는 개념임을 주목해야 한다. 소득 정책을 넘어 사회 설계의 문제라는 뜻이다. 신안군 연금은 태양광 및 풍력을 이용한 재생에너지 수익을 주민에게 정기적으로 배분하는 제도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자연을 공공자산으로 재정의하고 그 수익을 권리로 배당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지역형 기본사회의 경제적 하부구조인 셈이다. 이번 발표에 의하면 2025년 현재 1인 가구 연간 약 500만 원이 분배되고 있다. 물론 구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배당금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국 지자체 중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난(2025년 현재 약 2,200명) 이유도 이 연금과 관련되어 있다. 자연을 보호 대상을 넘어 공공자산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모델임에는 분명하다. 자연을 개발 대상이나 단순 보존 대상이 아닌 지속적 배당을 낳는 공공자산으로 위치시켰다는 의의가 크다. 기본소득 개념을 국민 단위에서 지역 주민 단위로 배치했다는 의의도 빼놓을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의 생태경제학적 전환을 이룬 시도임이 분명하고 국가정책을 지역 문명 모델로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자치분권의 맥락도 거론할 만하다. 물론 한계는 분명하다. 재생에너지 수익의 변동성과 설비 주체의 문제, 주민 간 배분 기준의 정당성,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중앙정부 제도와의 충돌 가능성, 특히 생태적 리스크(건강, 어업, 자연 훼손 등)를 최소화해야 하는 문제 등 눈에 보이는 문제들만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생태 문명 전환 담론을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진도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생애주기를 횡단하는 보다 자세한 연금 방향들이 주장되었다. 미비점들을 보완해나가는 일은 장차 비슷한 시도를 하는 시군 지역자치의 몫일 수 있다. 눈 밝은 지자체의 리더들이 이 논의를 담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실행에 옮긴다면 말이다.
남도인문학팁
나는 여러 차례 본 지면이나 기타 지면들을 통해 우리의 전통적인 배냇소(씨압소) 정책에 대해 주장해왔다. 내 질문은 "불확실성이 구조화된 시대에 우리 사회는 미래세대의 자립(성년)과 공동체의 지속을 어떤 장치로 보장하는가?"였다. 복지의 확대를 넘어 다음 세대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다 기른 어미 소를 돌려주고 송아지를 차지하는 구조이니 생애 초기 자산의 선 분배가 핵심이다. 배냇소는 금융이 아니라 신뢰를 담보로 하는 약 2년의 돌봄 시간을 요구한다. 코뚜레 시기 등 임신과 분만주기는 곧 성년의 주기이므로 시대에 따라 편차를 둘 수 있다. 예술 돌봄으로 치환하면 5년이나 10년 주기일 수 있다. 특히 재원의 출처를 국가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나 시니어 그룹 등 대동 사회가 지녔던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재구성하고 설계한다는 장점이 있다. 신안군의 방식은 재생에너지를 통해 자연자산 수익을 복지적 관점에서 배당하고 에너지 전환의 이익을 주민 삶의 안정으로 연결하는 기본사회의 하부구조다. 하지만 이 제도만으로 기본연금이 지속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연금만 있으면 사람이 머무는 효과는 있겠지만 자라나는 사회가 되기는 어렵고 배냇소만 있으면 뛰는 개인은 생기겠지만 바탕이 지속되기는 어렵다. 지면상 짧게 말한다면 오늘날 문화정책의 기본처럼 되어 있는 성과 중심 공모 구조는 실험 가치를 고립시킨다. 기초예술, 인문 창작, 독립문화 등은 버티는 시간이 중요한데 말이다. 세계적인 AI센터 등이 들어설 영암과 해남의 솔라시도 지구에 대응하여 도레미파의 인문학적 토대를 재구성하자고 제안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른바 남도형 기본사회는 자연의 수익을 기본연금으로 삼고 돌봄의 관행을 기본자산으로 제도화하여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이 스스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남도형 지역 기본사회 구조를 이루는 세 가지 축이 있다. 자연축은 신안군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는 바 해상풍력 등의 바람, 태양광 등의 햇빛, 숲, 경관으로서의 안개 등 무수하다. 생애축은 배냇소에 비교되는 출생과 청년 기본배당, 노동(문화노동을 포함), 기본연금과 공동체 돌봄의 노년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문화축은 무형유산, 공동체 의례, 관계의 지속적인 재생산(두레나 계 등)이 해당되겠다. 예컨대 블루카본의 갯벌연금, 그린 카본의 숲 연금, 나무연금 혹은 문화지구 연금 등 고안할 내력이 부지기수다. 이들을 하나의 틀로 묶어 기후위기, 저출생, 지역소멸 등에 대응하게 한다. 햇빛과 바람이 기본소득의 자산으로 탈바꿈하듯이 문화 또한 자산으로 기능하게 하는 틀을 구성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나 모델은 시간을 두고 싸목싸목 전개해 나가기로 한다. 당분간은 백가쟁명이 필요하고 리더 그룹들을 통해 선별 응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신안군 사례인 햇빛연금과 바람연금의 문화적 확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긴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