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함선 9000척 건조…2차대전 전세 바꾼 미국 해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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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의 해양시대
바다는 대륙과 대륙, 문명과 문명을 연결해 주지만 본질에선 무질서의 공간이었다. 그러다 힘을 가진 자의 공간이 됐다. 바다를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였고, 핵심 수단은 선박이었다. 선박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의지와 힘이 구현되는 실체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그러므로 ‘김진형의 해양시대’는 바다를 실제 권력으로 만든 선박, 그로 인한 해양력에 대한 얘기다.
![2차 세계대전 중 활약한 미 수송함(리버티선)의 건조 과정. 선박 전체를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눠 이를 조립해 나가는 방식으로 만들어, 건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미 전쟁정보국]](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7/joongangsunday/20260127103944319bijd.jpg)
16세기 말 세계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대양을 넘나드는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크고 강력한 군함 구성된 함대는 스페인을 최고의 해양 강국으로 만들었다. 영국은 16세기 후반기에 해군력 확보와 함께 신대륙 탐험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결국 1588년 영국과 스페인 해양 주도권 싸움이 벌어졌다. 양국이 맞붙은 칼레해전에서 세계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함대에 패했다.
![16세기 해양 강국이었던 영국이 보유했던 레이스-빌트 갈레온의 모형. [사진 위키피디아]](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7/joongangsunday/20260127103945677yxhr.jpg)
스페인 함대의 패배는 단순한 군사적 실패가 아니라 바다에서의 권력 개념과 세계 질서의 변화를 가져왔다. 영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시작을 의미했다. 해양력이 무역·금융·해상 보험 같은 해양 기반 시스템을 중심으로 발전되는 계기가 됐고 선박이 전투의 수단을 넘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인프라가 되었다.
1890년에 미국 해군 제독이자 전략가인 앨프리드 머핸(1840~1914)은 해군의 힘이 국가의 세계적 영향력에 결정적이라는 ‘해양력’ 개념을 발표하였다(『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이 이론은 미국·영국·독일 등의 해군 전략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유럽 국가들의 군함 건조 경쟁을 촉발했다. 이 경쟁이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머핸 제독의 이론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사람 중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이 있다. 1907년부터 1909년까지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령으로 1만4000명 승조원을 태운 전함 16척을 포함한 총 28척의 해군 전함 기동부대인 ‘대백색함대(Great White Fleet)’가 편성되어 세계 일주 항해를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의 강력한 해상 전투력을 전 세계에 알리고, 미국이 더 이상 내륙 국가가 아닌 세계적인 해양 강국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특히 러일전쟁 승리 이후 태평양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일본제국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외교적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미국의 조선 산업 부흥으로도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일반적으로 탱크·항공기 등이 동원된 대규모 지상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쟁의 최종 승패를 가른 공간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였다. 전선은 대륙에 있었지만 전쟁 지속력을 제공하는 힘이 해상에 있고 해양 통제력은 국가생존을 결정짓는 핵심이란 걸 보여 주었다. 전함 중심의 해전에서 항공모함 중심의 해전이 됐으며 특히 태평양에서의 해상전은 함포의 사정거리보다 항공기의 작전 반경이 바다의 주도권을 결정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육상에서의 ‘해상전’도 결정적이었다. 바로 조선소였다. 미국은 ‘가장 강한 함대를 만든 나라’이자 ‘가장 빠르게 배를 만들어내는 나라’였다. 1935~1945년 미국은 상선·군함을 포함해 약 9000척에 달하는 함선을 건조했다. 상선 및 수송선은 비상조선계획(Emergency Shipbuilding Program)을 통해 리버티선 2710척, 빅토리선 531척을 포함하여 총 5000척 이상의 화물선을 생산했다. 해군 함정은 에식스급 정규 항공모함 24척을 포함한 항공모함 143~151척, 전함 8~10척, 구축함 352척, 잠수함 200척 이상을 건조했다. 1939년 약 1000만 톤 수준이었던 상선단 규모는 1944년 말 약 5000만 톤으로 5배가량 급증했다. 전쟁 중에는 약 1만4000톤급 수송선(리버티선)의 평균 건조 기간은 42일이었다(최근엔 1년여). 최단기록은 4일 15시간이었다. 에식스급 정규 항모의 경우 1~2년 내 취역이 가능했고 호위 항모는 수개월 단위로 생산이 가능했다.
단일 국가 기준으로 인류 역사상 최대·최고 속도의 조선 생산량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60개 이상 대형 조선소 네트워크의 활용이었다. 동·서부와 걸프 연안 전역에 분산 배치돼 적의 폭격 위험을 최소화하였다. 또한 건조 방식을 모듈·표준화하였고 선체를 블록 단위로 제작 후 용접으로 조립하는 방식을 채택,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이 덕분에 전투에서 손실하더라도 빠르게 보충했다. 독일이 격침한 선박의 수보다 더 빠르게 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야말로 연합국의 전력을 결정적으로 우위에 있게 했다. 결국 전쟁의 승패는 국가 산업 생산력에서 갈렸다.
바다를 지배하는 힘, 해양 통제력은 단순히 바다를 점령하는 개념이라기보다 필요할 때 자유롭게 바다를 사용하고 동시에 상대방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군함의 숫자뿐만 아니라 항구, 조선 능력, 상선대, 해상 교통로 보호 체계, 외교까지 포함된 종합적 국가 역량을 말한다. 해양 통제력은 선박 한 척의 힘이 아니라 선박을 둘러싼 국가 시스템의 힘이다.
수송선 1척 건조에 ‘4일 15시간’ 신기록
바다에서의 승패는 언제나 군함의 위력과 상선의 지속성 결합 여부에 따라 갈렸다. 16세기 말 영국과 스페인 칼레해전, 제1.2차 세계대전의 해전이 모두 해당한다. 해양 통제력과 국제질서는 군함과 상선이 결합된 상태에서 성립된다. 이것을 가장 먼저 이해한 국가는 영국이었고 미국은 이것을 가장 크게 구현한 국가이다. 반면 스페인과 독일·일본은 해양 전투에서는 강점이 있었지만, 지속 가능한 해양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바다는 지금도 중립적이지 않다.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관리와 통제는 언제나 상선과 군함, 두축의 선박 균형에 의해서 완성된다. 군함은 바다를 지키고 싸우기 위해 존재하고, 상선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존재한다. 세계 무역의 절대다수는 해상 수송에 의존하며 이 물류가 멈추는 순간 국가 안보와 경제는 무너져 내린다.
역사는 반복해서 증명한다. 바다에서 승리한 국가는 상선과 군함이라는 선박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함께 운용한 국가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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