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을 향한 질주...세기의 커플 ‘보니 앤 클라이드’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2025. 12. 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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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 범죄 콤비의 도주극
“선택의 몫은 개인에 있어”
배우 조형균과 홍금비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멋지게 차려입고 스포츠카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거침없이 은행을 털던 보니와 클라이드.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의 전설적인 범죄자 커플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노래와 대중문화 속에서 소환되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13명을 살해한 잔혹한 연쇄 강도 살인범이기도 하다. 이들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가 공연마다 문제작으로 불려온 이유다.

작품은 두 사람이 경찰의 총탄에 쓰러지는 최후의 장면으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시를 쓰고,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던 보니와 감옥을 막 탈옥한 좀도둑 클라이드의 만남이 출발점이다. 탈출구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본능적인 끌림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보니는 클라이드의 도주를 돕는 과정에서 자신이 갈망하던 짜릿함과 자유를 처음으로 체감한다.

함께 도주에 나섰던 클라이드의 형 벅은 결국 아내 블랜치의 설득으로 자수해 감옥으로 돌아간다. 반면 클라이드는 보니와 함께 범죄의 길을 택한다. 대중적 인지도와 언론의 조명을 등에 업은 이들의 범죄는 점점 대담해지고,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더 빠르게 질주한다.

배우 윤현민과 홍금비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작진은 이 매혹적인 범죄자 커플을 다루면서도 악행을 미화하지 않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쳤다고 밝혔다. 김태형 연출은 18일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 참석해 “음악은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이들이 결국 수백 발의 총알을 맞고 비참하게 죽는 장면으로 공연을 시작하고 끝내는 이유가 있다”며 “시대가 이들을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결정적인 선택의 몫은 결국 개인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문과 사진, 대중의 추앙 속에서 스타처럼 소비되는 범죄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SNS 인플루언서 문화와도 닮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공연은 보니와 클라이드의 불우한 성장 배경과 시대적 결핍을 보여주면서도, 그들의 무모함과 살인의 무게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관객은 두 인물을 응원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범죄가 남긴 결과를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배우 배나라와 홍금비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빠른 전개와 강한 흡인력이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첫 만남에서 시작된 관능적인 로맨스, 첫 강도의 긴장감과 성공의 쾌감, 추적을 피해 도망치는 생활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2시간 45분의 러닝타임이 단숨에 지나간다.

뮤지컬은 결국 음악의 힘으로 완성된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다. 1930년대 유행했던 재즈와 스윙을 기반으로 한 넘버들은 시대 분위기를 살리고, 록 사운드는 강도와 추격 장면의 박진감을 더한다. 11년 만의 재공연을 맞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직접 객석에서 공연을 지켜본 것도 화제가 됐다.

보니 역을 맡은 옥주현은 “프랭크 와일드혼이 여러 장르의 곡을 잘 쓰지만 내면엔 재즈와 블루스가 뿌리처럼 박혀 있는데, 보니 앤 클라이드는 초창기 작품으로 그의 프라이드와 애정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 옥주현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들의 호연도 인상적이다. 클라이드 역의 배나라와 홍금비는 짧은 시간 안에서도 두 인물 사이의 강렬한 끌림과 공범적 유대를 설득력 있게 쌓아 올린다. 배나라는 능글맞고 즉흥적인 클라이드를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홍금비는 솔로 넘버 ‘How ’Bout a Dance’에서 거칠어지는 범죄의 한가운데서도 여전히 꿈을 품은 소녀 보니의 얼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홍금비는 “동정이 아닌 방식으로 이 인물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풀어낼지가 이번 작품의 가장 큰 과제였다”고 말했다.
배우 홍금비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현민, 조형균 등 다른 클라이드 캐스트 역시 각기 다른 결의 불안과 질주 본능을 보여주며 극에 활력을 더한다. 옥주현은 “음악은 달콤하고 몽환적이지만, 이야기는 결코 그렇지 않다”며 “무모했던 시절의 꿈과 그에 대한 책임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범죄를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왜 이 커플이 지금까지 대중문화의 레퍼런스로 남아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대공황기의 미국을 질주했던 전설적인 도주극에 동행해 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공연은 2026년 3월 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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