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DY SHOW MUST GO ON

아레나옴므플러스 2025. 12. 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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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에 새바람이 분다. 몇 년 전 대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연달아 폐지되면서 분위기가 어두웠지만, 코미디언들은 전화위복처럼 유튜브와 공연장으로 퍼져나갔다. 스케치 코미디, 스탠드업 코미디, 그리고 만담과 콩트가 대한민국을 웃기기 시작했다. 코미디를 가두던 틀이 사라지니, 오히려 희극인의 진가가 드러났다.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훌륭한 코미디언들이 많았고, 놀랍게도 이들은 비극적인 시대 상황도 희극으로 승화시켰다. 그중 오직 마이크로 승부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만담 콤비를 만났다. 요즘 가장 뜨거운 다섯 팀이다.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의 대부,
대니초

미국에서 18년, 한국에서 8년. 대니초의 스탠드업 코미디 경력은 20년이 훌쩍 넘는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화와 정서적 차이도 있기 마련. 한국 관객을 웃기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생각했지만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이 오히려 강점이 됐다. 한국 사람이라면 지나칠 상황도 색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광장시장에 갔는데 마약김밥을 파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외국인에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초창기에는 그런 농담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코미디에 관심이 있었지만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직장에 들어간 이후다. 

UCLA 졸업 후 컨설팅 회사에 들어간 그는 틈틈이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했다. 그러다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풀타임'으로 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배우가 연기하면서 생활비를 벌지 못하면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처음부터 돈을 잘 번 건 아니지만 나중에는 회사 월급보다 더 벌었어요. 그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죠." 그가 바라보는 코미디는 일상에서 나온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기술은 '포착'에 있어요.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탔는데 맞은편에 휠체어 탄 아저씨가 있어요. 위아래 아크테릭스 옷을 입었는데 신발이 더러운 거예요. 그럼 '저 아저씨 신발이 왜 더럽지?' 같은 생각에서 출발하는 거죠."

미국에서 잘나가던 대니초는 왜 한국행을 택한 걸까. "자리 잡고 한창 공연하는데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졌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자극을 받고 싶어 아시아 투어를 하던 중이었죠. 문득 한국에서 몇 년 살면 그 경험으로 내 코미디가 더 재밌어질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한국에 온 대니초는 메타코미디 정영준 대표의 소개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보게 됐다. "사실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스탠드업 코미디의 정의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당시 그가 바라본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는 넷플릭스 외국 공연 영상을 보고 기술이 아닌 자막에만 집중해서 배운 느낌이었다고.

"코미디는 맞춰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든 예술을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요.
'맥도날드가 될래, 아니면 맛있는 수제 버거가 될래'
라고 하면 수제 버거가 되고 싶어요."

조금만 도움을 주면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에 대니초는 팔을 걷고 나섰다. "어떻게 보면 꼰대질을 한 거죠. '나는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사람인데, 너희들이 하는 농담은 너무 길고, 호흡의 타이밍이 애매하고 텐션을 올리는 방법이 잘못돼서 먹히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친구들이 이야기는 잘 들어줬지만 눈빛으로는 욕하는 것 같았어요." 백 마디 말보다 보여주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에 양해를 구하고 그다음 주 공연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한국어를 못했지만 운 좋게도 분위기가 괜찮았어요. 그 이후로 친구들이 '형 뭐 해야 돼요?'라고 묻기 시작했죠." 그날을 계기로 대니초의 계획도 바뀌었다.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오래 한 데다 한국어로 소통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이 업계를 키워보자는 마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 신은 성장했다. "8년 전에는 관객이 10명만 돼도 많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10명이면 망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금세 1000석도 채워요." 코미디 장르도 다양해졌다. 과거 TV에서 보던 콩트가 코미디의 전부였다면 스탠드업 코미디를 비롯해 만담, 스케치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해 대니초의 말을 빌리자면 '뷔페식'이 됐다. "음악에 다양한 장르가 있는 것처럼 코미디에도 여러 장르가 생긴 거예요. 트로트 가수가 힙합을 못하는 것처럼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는 거죠." 

대니초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스탠드업 코미디' 명칭이 자연스러워지는 것. "힙합을 '합합'이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잖아요. 누구나 '스탠딩 코미디'가 아닌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부르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해외처럼 서울 홍대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코미디 클럽이 생겨나고, 잘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 다양하게 배출되는 날도 꿈꾼다. 마지막으로 대니초의 확고한 코미디 철학을 들으며, 그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코미디는 맞춰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든 예술을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요. '맥도날드가 될래, 아니면 맛있는 수제 버거가 될래'라고 하면 수제 버거가 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코미디를 하고 싶은 남자,
박철현

똑똑한 척하면서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거나, 바보인 척하고 똑똑한 사람을 놀리는 코미디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박철현은 실제로 똑똑한 사람이다. 울산과학기술원을 졸업한 공대 출신이다. 다만 그 사실을 숨기지도 자랑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바보 같아도 할 수 있는 직업은 많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국회의원이라든가." 지방의 소도시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만 해도 연예인이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을 가보니 그가 알던 게 세상의 전부는 아니었다. '길게는 80년은 더 살 텐데, 뭘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박철현은 휴학을 하고, 교회 청년부 행사에서 콩트를 하며 사람들 앞에 섰다. "친한 형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공연을 준비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재밌었어요. 매일 이걸 하면서 돈을 번다면 그것만큼 만족스러운 직업이 없을 것 같았죠." 공대에서 보기 드문 개그 동아리도 직접 만들어 활동했다. 이 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만큼 재능은 있다는 확신도 생겼다. 혼자 할 수 있는 코미디 영역을 떠올리다 스탠드업 코미디에 닿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늘 '재밌는 아이'였던 그는 무대에 서면서 사람을 웃기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즐겁다는 걸 깨달았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대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수백 명 앞에서 마이크를 드는 일이 더 편하다고 말한다. "무대에서는 분위기나 감정을 제가 주도할 수 있잖아요. 그게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것보다 수월해요."

"AI나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본질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요.
코미디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스탠드업 코미디가 자리 잡기 전, 박철현의 시간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전력투구해 공연을 준비했지만 관객은 10명, 20명에 불과했다. 수입은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다른 일을 병행해야 했다. 돌아보면 그 시기 역시 모두 농담거리와 자양분이 됐지만,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를 향한 관심이 누구보다 반갑다. "예전에는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했어요. 이걸로 먹고살 수 없었거든요. 지금 시작하는 친구들은 적어도 직업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는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마이너한 장르죠. 서구권처럼 언젠가는 주류 장르가 되면 좋겠어요." 숏폼이 유행하면서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관심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농축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각자의 노력과 끼가 있으면 눈에 띄는 시대인 건 맞아요. 하지만 너무 빨리 휘발되는 건 아닌지 걱정돼요. AI나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본질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요. 코미디는 결국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깊어지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박철현의 농담은 늘 일상에서 시작된다. "지하철을 탔는데 꼭 누군가를 밀치고 지나가는 어르신, 출구로 나오면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비둘기를 만나요. 그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무조건 밀고 지나가는 할머니랑 절대 비키지 않는 비둘기를 붙여놓으면 누가 이길까?" 이처럼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웃음이 된다. 그에게도 몇천 석, 몇만 석 무대에 서는 꿈, 미국 토크쇼의 호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때때로 월드 투어를 하는 모습도 상상했다. 하지만 지금 박철현은 그냥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것이 즐겁다며 말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이걸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그 역시 계속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야 가능한 거겠죠." 

웃음을 파는 콘텐츠 자영업자,
이제규

이제규는 자신을 코미디언이 아닌 '콘텐츠 자영업자'로 소개한다. "웃기려고 작정한 사람보다 안 웃길 것 같은데 웃긴 사람이 더 웃겨요." 주짓수 코치를 하던 그는 군대에서 진로를 굳혔다. 주짓수 관장을 고민한 적도 있지만 한 가지 분야에 갇히고 싶지는 않았다. 긴 시간 스스로에게 질문한 끝에 열정적으로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백발에 터틀넥 상의를 입고 공연하던 조지 칼린이 떠올랐어요. 나도 그걸 해야겠다 싶었죠." 

활동 초기에는 미국 희극 배우 조지 칼린의 영향으로 냉소적인 코미디를 지향했지만, 현재 그가 선보이는 코미디는 조금 다르다. "사람들이 쉴 때마저 냉소적인 걸 보고 싶어 하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비판적인 요소를 빼고는 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기 어려워요. 결국 어떻게 잘 숨기느냐의 싸움인 것 같아요. 따뜻하게 포장하다 보니 저 스스로도 설득돼요. 실제로 푸근한 사람이 되는 느낌도 있고요." 

사실 이제규와 <아레나>는 초면이 아니다. 6년 전 Z세대를 다루는 인터뷰 기사에서 만난 반가운 사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 사이 변화는 없었는지 안부를 물었다. "부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에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문화 활동 자체가 줄었잖아요.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잘 모를 때 은퇴를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 정도 기량을 갖추게 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업계를 이끌던 대니초, 피식대학이 주목받는 흐름도 힘이 됐다. "운도 많이 따랐어요. 무엇보다 무대에 매일 오르는 환경도 실력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혼자 떠드는 쇼 티켓을 파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해보니까, 뭐든 팔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스탠드업 코미디는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는 장르다. 기획, 대본, 동선, 연출, 마케팅까지 도맡아야 한다. "만능 엔터테이너를 넘어서 '만능 오거나이저'가 돼야 해요." 이제규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관객과의 대인관계라고 표현한다. 관객의 연령대와 분위기에 따라 호흡을 조절하고, 그 반응을 읽어낸다. "혼자 떠드는 쇼 티켓을 파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해보니까, 뭐든 팔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의 강점은 편견 없이 세상을 보려는 태도와 다양하게 쏟는 관심이다. 넓고 얕게 아는 것들은 어느 순간 연결되며 농담이 된다. 영감은 도처에 있다. 책, 영화, 건축, 예술가의 인터뷰까지. "인풋을 많이 넣어야 아웃풋도 쉽게 나와요. 달리기를 하다 문득 농담이 조합되는 순간도 있어요. 그냥 넣고 흔들었는데 농담이 되는 거죠." 무대에 오르기 전 루틴은 의외로 단순하다. "흉추를 풀어요. 크라우드 워크(관객과 즉석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것)를 한다든지 큰 동작을 할 때 흉추가 풀리지 않으면 동작 타이밍이 늦어져요." 0.1초만 주저해도 웃긴 타이밍은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제규는 스탠드업 코미디 신이 조금 더 기어를 올려 가속하길 바라는 욕심이 있다. "뮤지컬도 있고, 사진 찍기 좋은 식당도 있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차지하려면 스탠드업 코미디가 압도적인 수준으로 향상돼야 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일본 요시모토 흥업과의 인연으로 '오사카 코미디 페스티벌' 무대를 지켜보며 새로운 꿈도 생겼다. "조만간 오사카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공연해보고 싶어요. 언젠가 미국에서 영어로 단독 공연을 하면서 넷플릭스 스페셜도 찍어보고 싶고요.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환상의 만담 콤비, 빵송국의
곽범과 이창호

공채 코미디언 시험에 2000명이 지원하면 10명만이 살아남는 때가 있었다. 곽범과 이창호는 '개그 고시'라고 불리던 시절 KBS 공채 출신 코미디언이다. 시험에 합격한 두 사람이 함께하니 웃음은 보장될 수밖에.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이들은 만담을 선보였다. "잘생기고 키 큰 애들은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연애하고 결혼하거든요. 저희는 생존 본능으로 웃겨야 했던 거죠."곽범 

"시대가 좋았죠. 옛날이었으면 저잣거리에서 광대 노릇하다가 맞아가면서 웃겼을 거예요."이창호

곽범과 이창호는 현시대 만담의 개척자다. 약 30년 전 코미디언 오동광, 오동피 이후로 '만담'이라는 장르가 후무했기 때문. 새로운 코미디 자료를 찾던 곽범이 일본 코미디를 모아둔 한 포털 카페를 발견한 게 시초였다. 일본 만담에 빠져 몇 날 며칠을 찾아보다가 이창호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고, 2018년부터 '까브라더쑈'라는 이름으로 만담을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 만담의 정의에 대해 묻자 말했다. "만담은 스탠드업 코미디와 콩트 사이에 있어요. 처음에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듀오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이름을 내세웠죠."이창호 "자기 생각을 말할 수도 있고, 시의성을 담을 수도 있고,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두 사람이 주고받는 코미디가 매력적이에요.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머릿속으로 만화를 그리게 하죠."곽범

사실 당시 이창호는 절대 코미디를 하지 않겠다, 배우를 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었다고. "무대에서 창호를 소개만 해도 빵빵 터졌어요. '이 친구가 연기를 하기 위해서 <개그콘서트>를 뛰쳐나갔습니다. 근데 첫 작품은 이 만담입니다'라고만 말했죠."곽범 "그럼 저는 말했어요. '전 웃기려고 여기 온 게 아닙니다. 연기하러 온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어요."이창호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공연이 줄어들 때쯤 두 사람은 메타코미디 대표 정영준을 만났다. "한국에 만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영준이 형이 저희를 보러 왔어요. 그때 공연을 재밌게 본 형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보라며 권유했죠."곽범 "당시 범 형은 전주에서 돈가스 가게를 차리려고 했고, 저는 단역이라도 해보려던 찰나였어요."이창호 정영준 대표는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6개월간 물심양면으로 둘을 도왔다. 그때 콤비의 이름이자 동명의 유튜브 채널, '빵빵 터지는 방송국'이란 뜻의 빵송국이 탄생했다.

"가수가 공연장을 찾아 노래하려고 하는 이유와 비슷해요.
저희는 무대 위가 어느 곳보다 재밌고,
여전히 새롭게 배우고 실력이 늘어요."

곽범이 출연 중인 유튜브 콘텐츠 <영업중>과 인기를 끈 이창호의 캐릭터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 이호창', 아이돌 콘셉트 시리즈인 '매드몬스터'까지. 알고 보면 모든 콘텐츠 아이디어는 만담에서 출발한다. "만담을 준비하던 중에 삼성전자의 미래전략실이 없어진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럼 이걸 우리가 가져오자. 과장이나 실장은 안 웃긴데 '본부장'이라는 어감이 멋있는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같으니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이 된 거죠. <영업중>에서도 만담을 짤 때 했던 이야기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곽범 "지금은 흔히 '플러팅'이라고 하는데 제가 무대에서 여자 관객들에게 말도 안 되는 유혹 멘트를 던졌어요. 그게 발전해서 '매드몬스터'가 됐죠."이창호

그래서 빵송국에게 무대, 특히 공연장 메타코미디클럽 홍대는 소중하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다시 만담을 하게 된 공간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니까. "최근에는 다른 스케줄로 한 달에 한 번밖에 공연을 못하지만 항상 매진되는 게 참 감사해요."이창호 "가수가 앨범을 내면 활동이 끝나는 게 아니라 공연장을 찾아 노래하고, 사람들 앞에 서려고 하는 이유와 비슷해요. 저희는 무대 위가 그 어느 곳보다 재밌고, 여전히 무대에서 새롭게 배우고 실력이 늘어요."곽범   

지난여름 세종문화회관에서 코미디 장르 최초로 공연을 하고, 그때의 실황을 담은 영화 <만담>을 개봉하기도 한 빵송국. 두 사람은 2000년대 만담 개척자다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창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형, 우리가 시작이야. 만담으로 우리가 스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이후 나올 친구들에게 이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이렇게 비빌 곳이 있다는 걸 만들고 있는 거야.' 맞아요. 저희는 앞으로 어마어마한 친구들이 나올 거라고 믿어요."곽범 

두 사람이 만드는 농밀한 웃음보따리,
보따의 김원식과 조다현

과장된 설정보다 일상에서 바로 튀어나오는 웃음, 단순하고 직관적인 상황. 유튜브에서 보따가 보여주는 코미디는 생활형이다. 이들이 펼치는 만담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일본식 표현으로 하면 '시모네타'. 다소 야하고 더러운 농담에 가깝다. 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다. "상스러운 농담을 하지만 신기하게도 저희가 하면 비호감으로 보지 않더라고요."김원식 

두 사람은 김대범소극장에서 처음 만났다. "다현이를 보자마자 결혼할 사람은 첫눈에 알아본다는 말처럼 '이 친구랑 뭔가 할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김원식 김원식보다 조금 늦게 극장에 합류한 조다현도 같은 마음이었다. "제가 강원도 사람인데 극단에 또 강원도 출신이 있다고 들었어요. 얼마 뒤에 공연 소품을 싣고 온 봉고차에서 원식이 형이 내렸는데, 도와주러 나갔다가 초면에 서로 껴안았죠."조다현 

사람들마다 웃는 포인트가 다르지만 두 사람은 웃음도 비슷한 포인트에서 터뜨렸다. 공채 개그맨이 사라졌을 때, 천생연분 같은 두 사람은 어떻게 함께 더 많은 사람을 웃길까 고민했다. 처음에는 페이스북 유머 페이지인 '진실 혹은 거짓'을 이용했다. "제가 대머리였는데 머리에 다코야키 소스를 뿌리고 다코야키 담긴 용기를 든 채 '다코야키 하나 어디 갔지?'라고 올렸어요." "술 마시면서 카트라이더 게임하는 것을 찍어 '음주운전'이라고 올리기도 했죠."조다현 그러다가 함께 웃음보따리 라는 뜻의 유튜브 채널 보따를 개설했다. 

유튜브 채널과 같이 공연도 이어나갔다. 보따로 처음 짠 공연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에서 영감받았다. "일본 여행을 갔는데 사우나에 어떤 한국인이 들어오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일본 사람들 고추 진짜 작네'라고 한 거예요. 글쓴이는 그 사이에 있던 한국 사람이었던 거죠. 나갈 때 일본 사람인 척 '스미마셍'이라고 했대요. 코너 제목도 '스미마셍' 이었어요."김원식 두 사람은 긴장하기보다 자신들의 공연이 재밌다는 확신을 가지고 공연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줬다. 그리고 2023년 처음으로 만담이라는 장르의 공연을 선보였다.

"그냥 사람들이 편하게 봐주면 좋겠어요.
만약 어떤 공연이 별로였다면 '나랑 안 맞나 보다'라고
다른 걸 시도해보기도 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만담을 잘 몰랐어요. 고맙게도 곽범 형이 권해서 같이하게 됐죠. 만담은 다 보여주는 콩트와 달리 말로 표현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매력이에요. 몰입하면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장르예요."조다현 "만담은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라서 떨렸어요. 다행히 옆에 있는 다현이를 보면서 웃음이 나고 긴장도 풀렸습니다. 같이 살면서 코미디를 하는 콤비가 거의 없어요. 밀접한 일상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 공연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김원식 유튜브에서는 김원식이 '츳코미(엉뚱한 상대를 지적하는 역)', 조다현이 '보케(멍청한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역)'를 맡는다면 무대에서는 그 역할이 서로 바뀐다고 한다.

보따에게 만담이나 스탠드업 코미디가 뜨고, 코미디 신이 변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아직까지 코미디는 비주류인 것 같아요. 힙합이 옛날에 그냥 힙합이었다면, 지금은 장르가 세세하게 나뉘었잖아요. 코미디도 이제야 만담, 스탠드업 코미디 등 장르가 생기고 있어요. 그냥 사람들이 편하게 봐주면 좋겠어요. 만약 어떤 공연이 별로였다면 '나랑 안 맞나 보다'라고 다른 걸 시도해보기도 하고요."조다현 "사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워요. 우리가 하는 걸 좋아해주는 사람과 함께 잘해나가는 게 요즘 트렌드 같아요."김원식

보따의 목표는 오래오래 코미디를 하는 것이다. "현 상황을 80세까지 유지하고 싶어요. 너무 잘되지도 않고 안 되는 것도 아니고.(웃음) 지금이 너무 좋아요."조다현 "너무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현상 유지가 목표면 지속되지 않거든요. 계속 발전하려고 해야 유지되죠. 다현이와 계속 이렇게 즐겁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김원식

CREDIT INFO
Editor 김지수
Photographer 신동훈
air&Make-up 유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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