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나씨, ‘나’와의 영원한 숨바꼭질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서 개인전
한지 위에 먹과 아크릴로 그린 인물들
자신과 타인의 관계 이야기하는 작가
2026년 2월 13일까지
짙은 먹빛 화면에 알 듯 말 듯한 표정의 사람. 고요한 어둠이 평안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던진다. 작가 무나씨가 표현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다. 그의 개인전이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는 그저 우주의 한낱 먼지일 뿐”이라는 흔한 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거대한 우주를 구성하는 것 역시 나와 너와 우리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것을 잘 살피고 돌봐야 하는 이유다. 무나씨는 ‘나’를 이야기하는 작가다.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한지에 먹과 아크릴, 잉크 등으로 표현한다. 작가의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The Season We Fade Away)’라는 제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내 속에 너무 많은 나
무나씨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지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늘 조용한 고독을 원했다. 하지만 숨고 싶지 않은 자아가 계속해서 그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다양한 자신의 모습만큼 역설적인 마음들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숨고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드러내고 싶었고, 내성적이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작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숨바꼭질을 작품에 담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림이 아닌 글이었다. 틈틈이 쓴 단편을 모아 산문집을 엮어 자주 가던 카페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때 경험이 현재의 무나씨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일이 흔하기도 했고, 저를 초월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 무나씨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어요. 그런데 산문집을 팔기 시작하면서 카페 직원분들이 저를 ‘무나씨’라고 불러주시더라고요. 처음에는 머쓱했지만 점차 적응이 됐고, 자신감도 얻으면서 작가로서 정체성을 얻는 데 큰 힘이 됐어요.”

작가의 본명은 김대현이다. 하지만 무나씨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불교에서 ‘무아無我’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가는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무아라고 이름 붙이고, 여기에 타인을 부를 때의 호칭인 ‘~씨’를 붙여 자신을 타자화했다.
무나씨는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당시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었다고. 그렇다면 그림으로 돌아오게 된 과정은 어땠을까.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하려면 술기운을 빌리거나 어딘가에 숨어야 하더라고요. 저도 하고 싶은 말은 되게 많았으니까 숨을 수 있는 표현 방식을 찾아 나섰죠. 처음에는 말이었는데, 상대에게 아무리 내 감정을 말로 전한다고 해도 그때뿐이고 다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요. 그래서 글을 썼는데,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글로 설명하자니 너무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시는 또 못 쓰겠고요. 그런데 그림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이 자기만의 해석을 찾고, 제가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거나 전달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렇게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소란한 마음을 이겨낸 억겁의 붓질
작가는 관객들이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재료를 최소화했다. 지금은 다양한 질감과 톤을 위해 아크릴과 잉크도 사용하지만, 주로 한지와 먹을 활용해 화면을 검은색으로 채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품은 동양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가 사용하는 형태와 주제는 우리가 흔히 아는 동양화와는 조금 다르다.
“‘동양화’ 하면 당연히 ‘산수화’를 떠올리는 게 싫었어요. 통일신라나 고려 시대 불화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공이 많이 들어간 정교한 작품을 그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래서 붓으로 선을 한 획씩 그리는 노동집약적인 방식을 택했어요. 그림에 더 많은 시간을 담고 싶었거든요. 예전에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상형문자가 새겨진 석관을 본 적이 있는데, 오랜 시간 돌덩어리 앞에 쭈그려 앉아 일하고 있었을 석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면서 감정이 확 이입되더라고요. 선을 긋는다고 하면 굉장히 평화롭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제 마음속은 무척 시끄러워요. 관객들이 제 작품의 선 한 획 한 획을 보며 ‘이 작가가 혼란한 마음과 시간을 견디고 작품을 완성했구나’ 하는 지점에서 감동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무나씨의 작품에는 늘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무표정인 듯 온화한 얼굴과 크고 늘어진 귀가 자연스레 부처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부터 도교 사상이나 불교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의 내용을 꼭 불교로 한정 짓고 싶지는 않다고.
“어릴 때 형과 누나의 책장에 꽂혀 있던 <장자>나 <노자>를 읽으면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동양철학의 원형을 찾아가다 보니 지금은 힌두교에도 관심이 생겼고요. 하지만 관람객에게 꼭 불교로만 비치지 않았으면 해요. 자신만의 철학을 투영해서 바라봐주셨으면 합니다.”

선이 사라질 때의 자유로움
이번 전시에는 무나씨의 변화한 감정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전에 주로 자신과 타인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고 혼자만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경계를 흐리게 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3년 전 맞이한 인생의 전환점, 결혼 역시 작가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사실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선 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선을 넘으면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거나 폐를 끼칠 수도 있고요. 근데 막상 그게 허물어지니까 무척 자유롭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감정들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작가 무나씨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스타가 있다. 바로 그룹 BTS의 멤버 RM이다. 그가 소장한 ‘영원의 소리’도 이번 전시에서 함께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애초에 판매를 목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었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이어가던 작업이었지만 RM 컬렉션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RM은 이 작품을 포함해 무나씨의 작품 2점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어장에서 작품을 접한 뒤 갤러리 주선으로 직접 작가의 집을 방문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구입해 갔다고. 작가는 RM이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데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낀다며 말을 아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심도 고속화도로 뚫리는 '이곳'…부동산 시장 꿈틀댄다 [집코노미- 집집폭폭]
- "안 팔길 잘했다"…삼성전자 신고가 행진에 개미 '환호' [종목+]
- 장윤정 "스치기만 해도 임신"…남다른 체질, 어떻길래 [건강!톡]
- 기만적 불륜의 치명적 결말 [노종언의 가사언박싱]
- 차 문 닫아주면 '건당 3만원' 美 신종 알바 무엇?
- 73만원에 산 주식이…'내 돈 어떡해요' 서학개미 패닉
- 부산 성심당이라더니…시장내 6평 '럭키베이커리' 대박 비결
- 30대 의원도 "어린 것" 무시…'최고령' 국회의 씁쓸한 현실 ['영포티' 세대전쟁]
- 삼성병원 출신 의사들은 달랐다…'4조 잭팟'에 의료계도 깜짝
- 대만이 탐낸 韓 잠수함 기술…1억달러에 넘긴 前해군 중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