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늘어난 수익이 '주가 상승 덕'이란 인식의 빈틈 [視리즈]

김정덕 기자 2025. 12. 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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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누굴 위한 국민연금인가 2편
국민연금 주인은 모든 국민
태생적 공공성 지울 수 없어
환율 안정도 공공성에 방점
공공성과 수익성 양립 못 해
그럼에도 수익성 강조한 李
환율 방어 명분 스스로 없애
이참에 국민연금 정체성 세워야

우리는 視리즈 '국민연금은 집권자의 도구인가' 1편(더스쿠프 681호)에서 고환율의 구조적 요인과 공공성에 기반한 국민연금의 태생적 역할을 짚었다. 이재명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사정도 살펴봤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목적을 바라보는 시선에 '빈틈'이 존재한다는 거다. 2편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보자.

국민은 국민연금의 공공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다.[사진|뉴시스]

수익성.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의 우선적 가치이자 기준 중 하나다. 공단만이 아니다. 정치권도, 국민도, 언론도 공단의 기금운용 수익률에 매우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기금운용 수익률에 따라 칭찬과 비난이 엇갈리기 일쑤다. 실질적인 현금화에 따른 수익률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의 평가액'에 불과한데도 그렇다.

2024년 윤석열 정부 주도로 진행한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서도 많은 이들은 국민연금공단의 역할을 수익률 개선에 맞췄다.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공격적인 기금운용을 통한 수익률 향상(4.5%→5.5%+α)'을 공단의 목표로 명시한 건 그 단면이다. 그 과정에서 "손실을 내면 어떻게 하려고 공격적인 투자를 부추기는가" "고수익은 높은 리스크를 동반한다"는 등의 지적들은 묻혔다.

이번에 이재명 정부가 국민연금을 환율 안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그널을 내비쳤을 때 등장한 비판들도 대부분 수익성을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에 동원하는 건 본래 목적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공단의 가장 중요한 기금운용 목적이 '기금자산 증식'에 있다고 전제한 것이었다. 환율 안정 수단으로 활용되면 일부 달러를 원화로 바꿔야 하고, 그로 인해 투자처도 변경될 수 있으며, 당연히 손실이 생길 수 있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성은 공단의 기금운용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민간 투자 전문가들에게 맡기라는 의미다. '독립성 훼손'이 곧 '수익률 저하'로 이어진다는 믿음에서 나온 우려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내놓은 발언을 보면 그렇다. 당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평가 손익이지만 현재 국민연금 수익은 200조원이 넘는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국내 주식시장의 상승으로 (국민연금의) 고갈 연도가 늘어났다"면서 "국민연금공단도 주가 상승의 혜택을 엄청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 역시 국민연금을 수익률을 추구하는 도구로 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참고: 물론 이 대통령의 평가는 오류가 있다. '투자는 언제든 손실을 볼 수 있으니 지금 수익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기금고갈 연도가 미뤄졌다고 주장하긴 어렵다'는 반박이 가능해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이처럼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강조하다 보면 공공성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기금운용본부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 기업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찬성하는 기업에 투자한다고 해보자. 이를 두고 가만히 있을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환경을 침해하는 석탄발전에 투자하거나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기업에 투자하는 걸 비판하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의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수익성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수익성을 과하게 강조하면 그 반대다. 이처럼 둘은 양립하기 어렵다.[※참고: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지침을 제시해 책임 있는 투자를 끌어내도록 하는 '주주권 행사 준칙'이다.]

이제 다시 이재명 정부의 환율 안정 필요성과 이를 위한 국민연금 활용 문제를 따져 보자. 앞서 언급한 기준으로 정부가 국민연금의 공공성을 얘기한다면 국민연금을 환율 안정에 어느 정도 활용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 "국민연금도 주가 상승의 덕을 봤다"는 식으로 수익성을 꺼내 들면 엇박자가 난다. 국민연금이 주가 상승의 혜택을 보든, 해외투자에서 커다란 수익을 봤든 이는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에 사용해도 괜찮으냐'는 논쟁의 전제가 돼선 안 된다는 거다.

최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 기금을 환율방어에 동원하는 일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했던 답이 이상해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그의 답을 들어보자.

"국민연금이 자산 운용하는 데 정부가 개입하고 이런 건 절대로 없다. 국민연금은 지금 꾸준히 수익이 늘고 있다. 자산운용 과정에서 해외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보니 달러 수요가 생기는 거다. 국민연금이 지급 단계에 들어서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국내로 가져와야 하는 시점이 온다. 지금은 환율이 올라서 달러가 비싸지만, 나중엔 환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국민연금이 잘 운용될 수 있도록 서로 협의하고 상의해 '뉴프레임워크'를 만들려고 한다."

정부가 환율 안정을 논의하는 자리에 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정책 관계자를 부르고, 그 자리에서 경제부총리가 '외환 수급 개선'을 언급하면서도 "정부 개입은 없다"고 하는 것부터 비논리적이다. 그런데 구 경제부총리는 정부의 환율 안정을 위한 국민연금 활용을 수익성을 위한 것이라는 포장까지 하고 있다. 이래선 곤란하다.

[사진|뉴시스]

정세은 충남대(경제학) 교수는 "국민연금을 환율 안정을 위해 활용하는 건 공공성 측면에서 가능한 일이지만, 혹시라도 이재명 정부가 단순히 환율 방어만을 위해 혹은 국내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국민연금을 활용하려 한다면 그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아직 손실이 안 나서 '다행'인 거지, 언제든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지금처럼 수익성만 강조하다가 정작 손실이 나면 정부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 텐가. 결국 수익성을 좇는 투자가 아니라 공공임대주택 건설이나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처럼 공공성을 염두에 둔 투자로의 전환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하면 주거안정과 경제활동인구 증가 등을 통해 국민연금 재정에도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는가."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역할을 다시 모색해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최근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해외 투자 자산을 대상으로 최대 10%의 전략적 환헤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 외환 스와프는 내년까지 연장했다. 국민연금이 환율 안정을 위한 소방수로서의 준비를 마쳤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개입은 없다"고 잡아떼면서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운운하는 건 맞는 걸까. 1400원대 원·달러 환율이 뉴노멀이 된 듯한 지금, 정부의 국민연금 정책이 어지럽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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