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 첫날 밤 잠 설쳐도 괜찮은 이유

여행지나 외박 장소에서 맞는 첫날 밤. 평소보다 일찍 누웠는데도 잠이 안 온다. 피곤해서 금방 잠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뒤척인다. 새벽에 자꾸 깬다. 수면과학자들은 단순히 예민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라고 보지 않는다. 낯선 환경을 경계하는 뇌의 생리적 반응이라는 설명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5일 수면 전문가들의 조언을 정리해 보도했다. 수면과학에서는 이 현상을 '첫날 밤 효과(first night effect)'라고 부른다.
새로운 장소에서 잠을 잘 때 뇌 일부가 완전히 이완되지 않는다. 주변 소리, 냄새, 빛의 강도, 침대 압력 같은 환경 자극을 계속 점검하는 상태가 유지된다. 수면과학에서는 낯선 환경에서 뇌가 주변 자극을 더 민감하게 처리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호흡기·수면 전문의 수타파 무케르지 호주 플린더스대 박사는 "여행 첫날 밤 수면이 깨지는 현상은 이상 현상이 아니다”라며 “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여행 상황에서는 출발 전 업무 마무리, 짐 정리, 이동 일정 등으로 이미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경계 반응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건강심리학자인 모이라 융 수면건강재단 CEO는 "첫날 밤 잠을 못 잤다는 사실 자체를 실패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각성이 강화된다"고 지적한다. 수면을 의식할수록 깰 가능성이 커진다. 다시 잠들기 어려운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이 첫날 밤 잠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무케르지 박사는 성인도 수면 의례를 유지하라고 권한다. 목욕, 따뜻한 음료, 독서 등 어린이 취침 습관이 성인에게도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익숙한 잠자리 습관이 뇌에 수면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장거리 이동이 동반된 경우에는 시차와 빛 노출이 수면 회복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체내 생체 시계는 시간대가 한 시간 달라질 때마다 하루가량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도착 직후 극심한 피로를 느끼더라도 바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고 권한다. 해가 떠 있다면 햇빛을 먼저 쬐어 생체 시계를 재설정하는 편이 이후 수면에 유리하다.
수면 환경과 관련해 주목할 요소는 체온 변화다. 잠들기 전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하면 체온이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수면이 시작되고 유지되려면 체온 저하 과정이 원활해야 한다. 최적의 수면 환경 온도는 약 17~19도다. 더운 곳에서는 미지근한 샤워로 체온을 낮추고 추운 환경에서는 따뜻한 샤워로 몸을 데운 뒤 잠자리에 드는 편이 수면 개시에 도움이 된다.
수면 중 오디오 자극도 주의가 필요하다.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틀어 놓은 채 잠들 경우 약 90분 주기로 나타나는 수면 단계 전환 시 각성이 유발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동 종료 타이머 설정을 권한다. 귀마개와 안대처럼 외부 자극을 차단하는 간단한 도구 역시 저비용 대비 효과가 큰 대응책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버클리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2018년 국제학술지 '행동연구와 치료'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라이즈업(RISE UP)' 기상법을 제시했다. RISE UP 기상법은 알람이 울리면 미루지 않고 바로 일어나기(Resist), 신체 활동(Increase activity), 샤워(Shower), 햇빛 노출(Expose to sunlight), 경쾌한 음악(Upbeat music), 대화(Phone a friend) 여섯 가지 행동의 영어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전날 밤 잠을 설쳤더라도 아침 무기력함을 떨쳐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첫날 밤 수면을 '관리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첫날 밤 잠을 설쳤다면 낮잠이나 카페인으로 다음 날을 유연하게 보내고 뇌가 환경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는 편이 오히려 이후 숙면을 앞당긴다.
융 CEO는 "휴가는 쉬기 위한 시간이지 수면 성과를 평가받는 기간이 아니다"라며 "첫날 밤의 불편함을 자연스러운 적응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가장 과학적인 대응"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doi.org/10.1016/j.brat.2018.10.009
[조가현 기자 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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