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왜성과 행성상성운 같은 삶[살며 생각하며]

2025. 12. 2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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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
핵융합 통해 빛을 만드는 것처럼
나도 이런저런 빛을 만들며 살아
태양 같은 별은 죽음 단계에서
산소·질소 등 우주 속에 돌려줘
나도 자산 있다면 사회에 환원
타인의 인생에 밑거름 되고 싶다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우주 공간의 물질을 성운(星雲)이라고 한다. 성운은 내부적인 원인이나 외부의 충격에 따라서 불안정해지면 보통 수축을 시작한다. 원래 크기의 열 배 이상 작아지기도 한다. 성운이 수축하면 질량은 그대로지만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밀도가 높아진다. 특히 가운데 부분의 밀도는 엄청나게 높아진다. 중심부의 밀도가 어느 값 이상으로 커지면 양성자와 양성자가 결합하는 핵융합 작용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빛이 생긴다. 별빛이다. 별이 빛을 내면서 탄생하는 순간이다.

별이라는 말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유산으로, 여러 의미로 널리 쓰인다. 천문학에서도 별이라는 말을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좁은 의미로는 태양 같은 항성만을 별이라고 한다. 지구나 화성 같은 행성이나 달 같은 위성도 다 포괄해서 별이라고 부른다. 엄밀하게는 핵융합 작용을 통해서 빛을 내는 천체만을 별이라고 구분한다. 성운의 중심부 밀도와 온도가 임계점을 넘으면 핵융합 작용이 일어나고 그 부산물로 빛이 생기면서 별이 탄생한다. 그 순간부터 그 천체를 별, 즉 항성이라고 부른다.

별도 일생이 있다. 수명이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별의 수명은 태어날 때의 질량과 관련이 있다. 중심부에서 핵융합 작용을 하면서 빛을 내는 천체를 별이라고 했다. 핵융합 작용이 멈추면 더 이상 빛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별의 수명이란 핵융합으로 별빛이 만들어지는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성운에서 빛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별의 탄생이라 한다면 더 이상 핵융합 작용에 의한 빛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순간을 별의 죽음이라 하겠다. 별이 태어날 때 질량이 크면 클수록 수명은 짧다. 큰 질량을 갖고 태어난다는 의미는 별이 더 많은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다.

별을 구성하는 물질의 대부분은 수소다. 수소는 양성자 한 개와 전자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별의 질량이 크다는 말은 곧 그 속에 더 많은 양성자가 있다는 말이다. 양성자의 수가 많으면 핵융합 작용을 더 오랫동안 할 수 있어서 질량이 작은 별보다 질량이 큰 별의 수명이 더 길 것 같다. 현실은 정반대다. 큰 질량을 갖고 태어난 별은 그 중심부에서 더 활발하게 빨리 핵융합 작용을 한다. 큰 규모의 별을 유지하기 위해서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핵융합 작용을 한다. 더 많은 빛이 나오니 더 밝게 빛난다. 질량이 큰 별일수록 핵융합 작용을 빨리 진행시키기 때문에 재료를 빨리 소진한다. 핵융합 작용을 통해서 빛을 내는 별의 수명은 그 별이 갖고 태어난 질량에 반비례한다.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갖고 있는 별의 수명은 100억 년 정도 된다. 이 기간에 핵융합 작용을 하면서 별빛은 만든다는 말이다. 태양보다 질량이 훨씬 더 작은 적색왜성의 수명은 1조 년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태양보다 질량이 무거운 별들의 수명은 그 질량에 따라서 짧아진다. 수명이 1억 년을 넘기지 못하는 별도 있다. 핵융합 작용을 통한 별빛 생산을 마친 별들은 죽음의 순간을 맞는다. 태양 같은 별들은 일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별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시기를 거친다. 별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작동을 반복하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이런 노력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별은 팽창하려는 부분과 수축하려는 부분으로 나뉜다. 팽창하려는 부분은 행성상성운이 되어서 별이 태어났던 성운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수축하려는 부분은 밀도와 온도가 높은 백색왜성이 된다. 백색왜성도 넓은 의미로는 별이다. 하지만 백색왜성은 더 이상 핵융합 작용을 하지 않는다. 다른 작용을 통해서 빛을 낸다. 별은 핵융합 작용을 통해서 빛을 내는 별의 단계를 지나면서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한다. 그런 후 행성상성운과 백색왜성으로 분리되면서 다음 단계의 새로운 일생을 맞이한다.

나이가 들면서 죽음의 순간을 인식하는 때가 많아지는 것 같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늘었다. 문득 요즘의 나는, 핵융합 작용을 통한 빛을 만들어내는 별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오면서 핵융합 작용을 통해서 빛을 만드는 것처럼 나름 이런저런 빛을 만들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빛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약해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나날이다. 그러다 보니 균형을 맞추려 핵융합 별의 마지막 단계처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삶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태양 같은 별의 운명을 보면서 나의 나머지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 보게 된다. 태양 같은 별은 죽음의 단계에서 자신이 평생 핵융합 작용을 하면서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 놓은 산소·질소·탄소 같은 원소들을 행성상성운의 형태로 자신이 태어난 우주 공간으로 돌려보낸다. 나도 내가 만들어 놓은 자산이 있다면 행성상성운처럼 사회에 돌려보내고 싶다. 행성상성운으로 돌아간 성간물질은 어느 땐가 다시 뭉치고 수축하면서 다른 별을 만드는 자산이 될 것이다. 내가 이루어놓은 자산이 사회로 돌아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밑거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될 것이다.

백색왜성은 핵융합이 아니라, 별의 잔열과 중력수축에 따른 에너지를 통해서 빛을 낸다. 또 다른 형태의 별이다. 태양 같은 별들의 제2의 인생이라고나 할까. 나도 백색왜성처럼 그동안 만들어 놓은 자산의 잔불을 내뿜으면서 살고 싶다. 아직 남아 있는 힘을 다해서 빛을 내는 백색왜성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끝까지 사회로 내보내고 싶다. 나이가 드니 별의 일생 같은 삶을 마감하고 백색왜성과 행성상성운처럼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진다.

이명현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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