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 힘드네”…무심코 내뱉은 욕설, 푸시업 시간 11% 늘린다

곽노필 기자 2025. 12. 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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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뇌 억제력 풀어 집중력·자신감 높여
욕설은 집중력과 자신감을 높이고 산만함을 줄여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에 ‘중년 남성이 욕설을 하면서 푸시업을 하는 장면을 그려달라’고 주문해 얻은 그림.

욕설은 분노, 고통, 좌절 등의 상황에서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밖으로 분출할 때 쓰는 언어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듣는 상대방에겐 불쾌감을 준다. 욕설을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으로 간주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속이 후련해진다’는 말에서 보듯 욕설 자체는 극도로 경직돼 있는 몸과 마음을 완화해주는 심리적 효과가 있다. 이는 마치 진통제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 욕설이 주는 이점을 연구하고 있는 영국 킬대학의 리처드 스티븐스 교수는 2009년 얼음물에 손 담그기 실험을 통해 ‘욕설의 통증 완화’ 효과를 확인해 신경과학분야 학술지 ‘뉴로리포트’에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이 연구로 2010년 흥미롭고 의미있는 괴짜연구에 주어지는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그가 일찌감치 욕설의 효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산통을 겪는 아내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2011년엔 욕설의 통증 완화 효과가 평소 욕설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2020년엔 가짜 욕설은 효과가 없고 진짜 욕설만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잇따라 발견했다.

그가 이끄는 킬대학 연구진이 이번엔 욕설이 심리적 효과에 그치지 않고 근력과 지구력 같은 운동 능력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심리학회(APA)가 발행하는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American Psychologist)에 발표했다.

스티븐스 교수는 “사람들은 많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억제한다”며 “이 경우 욕설은 집중력과 자신감을 높이고 산만함을 줄여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욕설이 근력과 지구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점은 이미 자전거 타기, 얼음물에 손 담그기 등의 실험을 통해 이미 신뢰할 만한 사실로 굳어져 있다. 문제는 이런 효과를 유발하는 심리적 기제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 연구는 이를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구진은 사람의 마음을 ‘상태적 탈억제’(state disinhibition), 즉 뇌의 전전두엽이 관장하는 자기통제 또는 억제 기제가 느슨해지는 상태로 만들어 더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욕설 효과의 핵심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보기로 했다.

연구진은 18~65살 참가자 192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각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의자 푸시업을 하는 동안 욕설이나 중립적 단어를 2초마다 말하도록 했다. 이 실험에서의 의자 푸시업은 의자에 앉아서 의자 받침대 양쪽을 잡고 두 팔에만 의지한 채 발을 바닥에서 떼고 몸을 들어올리는 동작을 말한다.

실험에서 욕설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실시한 의자 푸시업 모습. 욕설을 한 사람들이 푸시업에서 버티는 시간이 11% 더 길었다. American Psychologist

의자 푸시업 버티는 시간 11% 더 길어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실험 중 자신의 심리 상태가 어땠는지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억제력 상실과 관련된 다양한 심리 상태를 측정하는 항목들로 이뤄져 있었다. 예컨대 참가자들이 느끼는 긍정적 감정의 정도는 어땠는지, 과제를 수행하는 상황은 재미있었는지, 집중력은 얼마나 흐트러졌는지, 자신감은 어느 정도였는지 등이다. 심리적 몰입도를 측정하는 항목도 있었다.

그 결과 실험 중 욕설을 한 참가자들이 중립적인 단어를 반복한 참가자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팔굽혀펴기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욕설을 한 사람들이 푸시업에서 버티는 시간이 11% 더 길었다. 이는 연구진이 수행한 2022년 실험에서 보인 격차와 비슷했다.

연구진은 “욕설을 할 때 실험참가자들은 몰입감이 강해지고 자신감은 증가하며 산만함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욕설이 사람의 마음을 ‘상태적 탈억제’ 상태로 이끈 것이다.

스티븐스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욕실이 왜 그렇게 흔한지도 설명해준다”며 “욕설은 결정적 순간에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운동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와는 별도로 약한 욕설이냐 강한 욕설이냐에 따라 효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연구진은 다음 단계로 욕설의 자신감 증가 효과가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행동해야 하는 다른 상황에서도 발휘될 수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다음 연구 주제는 많은 사람들이 망설이는 공개 연설과 연애 시도라는 두 가지 상황에서 욕설이 미치는 영향이다.

*논문 정보

“Don’t Hold Back”: Swearing Improves Strength Through State Disinhibition.

https://doi.org/10.1037/amp0001650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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