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노조법 지침에 "법취지 축소" vs "지나치게 포괄적·불분명"

김은경 2025. 12. 2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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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사용자 책임·노동쟁의 범위 제한"…경영계 "'객관적 예상 경우' 불분명"
전문가들 "법적 분쟁 줄일 수 있을지 미지수"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통과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옥성구 기자 = 고용노동부가 26일 발표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개정 노조법)의 해석지침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노동부는 이번 해석지침에서 사용자성을 판단하는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의 핵심 기준으로 인력운용·근로시간·작업 방식 등 '근로조건에 대한 구조적 통제'를 제시하며 여러 분야별 사례를 들었다.

또 노동쟁의 대상으로 추가된 '사업경영상 결정'에 대해 공장 증설이나 해외 투자, 합병, 분할, 양도, 매각 등의 사업경영상 결정 그 자체만으로 단체교섭 대상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근로자 지위 또는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 정리해고·구조조정이 동반되면 단체교섭 대상이 된다고 명시했다.

먼저 노동계는 이번 지침이 "실제로는 사용자 책임을 제한하고 노동쟁의의 실질적 범위를 축소할 우려가 적지 않다"며 "파견 판단 요소보다 더 엄격한 것을 요구하고, 간명한 사안에조차 이런저런 단서를 달거나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특히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 여부를 판단하는 요소와 관련해 보완 지표로 '업무의 조직적 편입 및 통제 여부'를 언급하는 등 파견 근로관계를 판단하는 요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다며 이를 문제로 봤다.

개정 노조법에 따라 원청과 교섭하고자 하는 하청·간접고용 노동자에게까지 불법파견 판단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면 마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나 파견에 이를 정도가 되어야만 지배력이 있다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개정 노조법이 말하는 '사용자'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면 형식과 관계없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노동부가 개정 취지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구조적 통제'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유로 사용자 책임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나타나는 원청의 영향력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는 방향으로 그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쟁의 부분의 경우 교섭을 인정하는 범위가 상당히 제한돼있다고 지적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사용자의 경영상 결정에 대해 정리해고 등의 구조조정 문제가 발생할지 아닐지는 노동조합이 쉽게 알기 어렵고, 교섭대상이 된다고 해서 사용자가 반드시 들어줄 의무가 없음에도 굳이 교섭대상이 되고 안되고를 분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예산 편성·배분 후에는 공공기관이 총인건비 내에서 운영상 재량이 있기에 정부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곤란하다'는 부분은 정부의 사용자성을 배제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문제로 봤고, 임금·수당과 관련한 부분 또한 묵시적 근로관계에 해당하는 정도로 기준이 높아 "아예 임금 관련 교섭을 봉쇄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고 해석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영계는 이번 지침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며 더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구조적 통제'의 사례 중 하나인 노동안전 분야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의 법적 의무 이행과는 별개로 산업안전보건체계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통제하는 경우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의 하청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이행까지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해석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노동쟁의 부분의 경우 "사업경영상 결정에 따라 정리해고, 배치전환 등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단체교섭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적시했는데,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는 불분명한 개념으로 사업경영상 결정 그 자체가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기준이 형해화(形骸化)할 것"이라고 했다.

노조법 개정안 입법 환영하는 노동계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자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유최안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오른쪽)이 기뻐하고 있다. 2025.8.24 utzza@yna.co.kr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지침이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포괄하기엔 역부족이라 법적 분쟁을 줄일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이광선 율촌 변호사는 "노동부가 방향을 잡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오히려 섣부르게 판단을 내리게 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이 지침만으로 하청과 교섭하겠다고 나설 원청은 드물듯 해 결국 법적 분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석 지침에 언급된 내용들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선 다른 이슈들도 많이 있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이 끝이 아니라 계속 보완할 수 있어야 하고, 시행에 앞서 모의교섭 등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해석지침의 내용 자체가 기업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청이 하청을 두는 이유는 탄력적 운영을 위해서고, 하청 또한 여러 원청 밑에서 유연하게 일할 수 있다"며 "그런 중에 근로시간 등 일부 근로조건을 이유로 모든 하청을 교섭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기업들도 공정 탄력성을 잃어 불편하겠지만, 원청이 앞으로 하청의 근로조건에 관여하지 않으려 하면 하청 노동자들도 불편할 수 있다"며 "큰 틀에서는 경영인에게 이런 식의 족쇄를 채우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지 못해 기업 영속성에 문제가 생길 테고, 기업이 흔들리면 노동자, 더 나아가 국민에게까지 부담을 안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앞서 발표된 개정 노조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두고 노동계가 "하청노동자의 교섭권을 무력화할 위험이 있다"며 반발한 가운데 이번 해석 지침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현장 안착에 난항이 예상된다.

노동계는 "노사 간 대화와 교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재고하라"고 촉구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사회적 논의와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영계 또한 개정 노조법상 사용자의 정의를 '근로조건에 대해 고용사업주와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의 결정 권한이 있는 자'로 구체화해 보완 입법할 것을 제안하는 등 지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bookman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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