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시계’다” 법의곤충학의 세계 [차형석의 별별인물 탐구생활]

차형석 기자 2025. 12. 2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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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법의학교실의 박성환 교수는 법의곤충학을 연구한다. 그는 수사 과정에 활용되는 법의곤충학 감식 과정을 체계화한 공로로 얼마 전 과학수사대상 법의학 분야를 수상했다.

어떤 이에게, 파리는 ‘시계’와 같다. 숨진 지 시간이 오래 지나면 변사자의 사망 시간을 추정하기 어렵다. 그럴 때는 파리·딱정벌레 같은 곤충의 흔적을 활용한다.

사체에는 대체로 제일 먼저 파리가 찾아든다. 알을 낳고, 유충(구더기) 단계를 지나 번데기가 된다. 유충의 크기와 성장 단계를 역산하면, 변사자가 ‘최소한 그때는 죽어 있었다’는 최소 사후경과시간(PMI:Post-mortem Interval)을 추정할 수 있다. 파리가 시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시간이 흘러 사체의 부패 단계가 달라지면 찾아오는 곤충의 종류가 달라진다. 초기에는 파리가, 일정 시간이 지나서는 딱정벌레가 찾아온다. 생물학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정 지역의 생물군집이 바뀌는 ‘천이 현상’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곤충의 종류에 따라 사망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변사체와 관련한 곤충 증거를 다루는 학문이 법의곤충학이다. 식품에서 벌레가 나오는 등의 곤충 관련 법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을 법곤충학이라고 한다. 법의곤충학은 법곤충학의 세부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법의학자 박성환 교수가 고려대 법의학교실에서 사육 중인 구리금파리를 보여주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의 박성환 교수(53)가 법의곤충학 연구를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2002년부터 3년간 옛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남부분소(부산)에서 공보의 생활을 할 무렵, 스승인 황적준 전 고대 의대 교수가 자신이 번역한 〈파리가 잡은 범인〉(현재 절판)을 보내왔다. 법의곤충학 관련 책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도교수가 왜 이런 책을 번역했는지 이유를 몰랐다. 공보의 생활을 마치고 2005년 법의학교실로 왔을 때, 스승의 권유로 법의곤충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파리 유충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일을 했다. “맨땅에 헤딩이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의사한테 갑자기 곤충 연구를 하라니, 어지간한 사람이면 도망갔을 거 같다. 내가 워낙에 특이한 걸 좋아했고, 진화생물학이나 생물 분류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스승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고, 파리를 분류하는 공부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2005년부터 법의곤충학 연구를 했으니 햇수로 20년이 지났다. 법의학교실에서 곤충학자와 협력해 파리를 키우고 성장 데이터를 구하고 DNA를 분석했다. 30종가량의 파리에 대한 연구를 끝냈다. ‘그 정도면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 수사에서 어지간한 파리가 다 걸린다’고 한다. 연구실에서 파리를 키우니 다른 실험실에서 항의 아닌 항의를 하기도 했다. “파리 탈출 좀 막으라면서 잡은 파리를 가져왔기에, 봤더니 ‘우리 파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키우는 파리는 구리금파리인데, 이 파리는 붉은뺨검정파리다. 종이 다르다’고 설명해주기도 했다(웃음).”

한국에서 주거지 인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파리는 구리금파리다. 구리금파리 한 종만 연구해도 사건의 60~70%가 커버된다고 한다. 산이나 들에서는 다른 파리 종이 관찰된다. 이런 파리 종의 특성 때문에 변사자의 사망 장소에 대한 정보를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거주지 주변에서 주로 나오는 파리 종의 유충이 야산에서 발견된 변사체에서 많이 나왔다? 시신이 옮겨진 것은 아닐까 의심할 만하다.

박 교수는 얼마 전 경찰청에서 주관하는 과학수사대상 법의학 분야를 수상했다. 법의곤충학 감식기법화 공헌 등의 사유였다. 곤충을 통해 변사자의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게 법의곤충학자의 일이지만 미국 드라마 〈CSI〉처럼 현장에 출동하는 일은 없다. 경찰이 현장에서 수거한 곤충을 전달받는다. 사망 추정 시간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일반인들의 예상보다는 적은 편이다. 휴대전화 데이터와 CCTV를 활용해 사망 시간을 상당히 근접하게 잡아낼 수 있다. 법의곤충학 연구자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데다 일선 수사 현장에서 활용도도 크지 않아 10여 년 전만 해도 관심 있는 검시조사관·과학수사관이 연구팀에 알음알음 문의하는 수준이었다.

변사 현장에서 발견된 ‘큰검정뺨금파리’

그런 면에서 2014년 6월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사건이 한국 법의곤충학 분야에서 한 분기점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 전 회장이 잠적했다. 전남 순천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변사자가 유 전 회장이라는 사실이 40여 일 후에 밝혀졌다. 마지막 행적이 확인된 건 5월25일이고, 시신이 발견된 건 6월12일이었다. 휴대전화 없이 잠적한 터라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법의학교실 연구팀에 있던 신상언 박사와 박성환 교수가 이 사건에 관여했다. 현장에서 ‘큰검정뺨금파리’가 주로 발견되었다. 이때까지 큰검정뺨금파리의 생육 데이터가 없었다. 신상언 박사가 유사 종인 검정뺨금파리의 중국 데이터가 있는 걸 발견했다. 일본·중국 법의곤충학자에게 자문해 ‘두 종은 30℃ 이하에서는 성장 속도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에 사용되는 파리 유충은 에탄올 용액에 보존한다. ⓒ시사IN 신선영

처음에는 파리 유충의 발육 단계 등을 감안해 파리가 알을 낳기 시작한 시점을 6월3일로 보았다. 기상청 기록을 확인해보니, 그날 비가 왔다. 비가 오거나 기온이 낮으면 파리의 활동이 멈춘다. 그래서 하루를 당겨 6월2일 이전으로 ‘최소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했다. 경찰에 넘긴 보고서에 이런 판단 내용을 담았다. 나중에 연구팀은 경찰로부터 ‘CCTV에 인상착의가 굉장히 비슷한 사람이 포착되었고, 그 날짜가 5월29일’이라는 걸 전해 들었다. 사망 시간이 5월29일과 6월2일 사이로 좁혀진 것이다. 박성환 교수는 “당시 경찰에서 ‘법의곤충학이 굉장히 쓸 만하구나’ 하고 느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법의곤충학이 수사 도구의 하나로 인정받게 된 사건이었다. 경찰청이 법곤충학 R&D 사업을 진행한 게 그로부터 2년 뒤인 2016년부터다. 박성환 교수 연구팀이 고신대 연구팀과 함께 사업을 맡았다. 2022년 경찰청 법곤충감정실 개소에 영향을 미쳤고, 박 교수팀은 현재도 2차 R&D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이한 걸 좋아해서, 관심이 가는 분야여서’ 시작한 일이지만 제자에게 법의곤충학을 전공하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다. 법의곤충학을 전공하는 것은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고 아직까지 모험에 가깝다. 박 교수처럼 한국곤충학회에서 활동하는 의사는 앞으로도 드물 듯하다. 박성환 교수는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경찰의 연구 사업을 하면서 수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연구에 반영할 수 있었다. 의대 식으로 말하자면, 나에겐 연구 방향의 ‘족보’ 같은 것이었다.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연구가 된 데는 그런 현장의 목소리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라고 말했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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