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일 배우러 미국 갔다 하루 19시간 강제노동···한국인 대학생, 정화조 청소만”
악덕 업자들 ‘현대판 노예제’ 처럼 운영
“수수료 725만원 챙기고 피해 나몰라라”
NYT, 한국인 학생 대표적 사례로 보도

미 국무부의 문화·교육·과학 교류 프로그램인 J-1(비이민 교환방문) 비자가 일부 악덕 업자에 의해 ‘현대판 노예제’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과 언어를 배우기 위해 J-1 비자로 미국에 온 일부 외국 청년들은 비싼 수수료만 뜯긴 후 위험한 근무 환경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NYT가 대표적인 피해 사례로 조명한 한국인 대학생 강모씨는 2023년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라는 홍보자료를 보고 미국에 왔다. 그는 ‘J-1 비자 익스체인지’라는 단체에 수수료 5000달러(약 725만원)를 냈다. 현지의 취업박람회 등을 통해 강씨 같은 연수생을 모집하는 이런 단체는 이른바 ‘스폰서’로 불린다. 미 국무부로부터 스폰서 승인을 받은 단체들은 매년 15만명이 넘는 해외 청년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신뢰할 수 있는 고용주와 연결해주고, 체류 기간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를 약속한 스폰서가 강씨에게 준 기회는 인디애나주의 한 제철 공장이었다. 그는 거기서 교육도 거의 받지 못한 채 정화조 청소를 해야 했다. 강씨가 이에 불만을 제기하자, 고용주는 그를 해고했다. 강씨는 스폰서가 이 과정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NYT는 미 국무부가 J-1 프로그램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악덕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와 이해충돌에 따른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 WISE 재단의 모집으로 입국한 외국 학생들은 알래스카주의 한 해산물 가공공장으로 보내졌다. 이들은 길게는 하루 19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에 시달렸다면서 J-1 비자를 담당하는 국무부에 신고했다. 그러나 WISE 재단은 2019년에도 연수생들을 네브래스카주의 한 돼지 농장에 보내 하루 12시간씩 강제 노동을 시켰다. 이들은 문제를 제기하면 추방 위협을 받았다면서, “노예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이민법 및 정책 연구 책임자인 다니엘 코스타는 “스폰서가 노동력 모집책이면서 연수생의 안전을 책임지는 집행자 역할을 하는 것은 심각한 이해충돌”이라면서 “연수생은 잠시 왔다가 가지만 고용주와의 관계는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스폰서는 고용주 편을 들만한 금전적 동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스폰서들은 연수생과 업체 양쪽에서 받는 수수료로 거액을 챙겼다. WISE 재단 설립자인 데이비드 달은 한해 52만달러를 받았고, 200평 넘는 저택으로 집을 옮겼다. 지난해 2만8000명 이상의 연수생을 유치한 국제교육교류협의회의 최고경영자인 펠로우도 지난해 120만달러 이상의 보수를 받았으며, 고용주로부터 추가로 18만2000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해외유학연구소’는 여행자 보험을 제공하는 별도의 영리 사업체를 설립한 후 J-1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모집 수수료 외에 월 최대 100달러의 보험료 납부를 요구하고 있다.
NYT는 국무부도 스폰서들의 파행적 운영 실태를 모르지 않지만, 형식적인 감독에만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미 연방 의회에선 J-1 비자를 포함한 외국인 근로자 채용 프로그램과 관련한 수수료를 금지하는 법안이 추진됐다가 스폰서들의 로비로 부결되기도 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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