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는 문헌 아니야?" 대통령이 던진 질문, 70년 묵은 역사전쟁 다시 불붙이다

김태현 기자 2025. 12. 26.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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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청와대로 행차했다'는 기록을 믿을 수 있을까? 1979년 이전 세상 어디에도 없던 책이, 대통령의 질문 하나로 2천 년 한국사와 동등한 '논쟁 대상'이 됐다.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려던 환단고기가 오히려 한국 역사학 전체를 추락시킨다. 중국 동북공정 학자들은 환단고기를 빌미 삼아 "한국 역사학은 비학술적"이라 조롱한다.

[우먼센스] '환빠.'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이 인터넷 신조어를 입에 올린 12월 12일, 한국 역사학계는 유례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에요?"라는 질문 하나 때문이었다. 

이재명 대통령. 사진=국회사진기자단

문제는 질문의 대상이었다.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명백한 '위서(僞書)'로 규정된 책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문헌이 아니냐"고 물으며 논쟁거리로 끌어올렸다. 위서가 국가 최고 권력자의 질문을 통해 다시 '논쟁 가능한 대상'으로 격상된 것이다.

역사학계가 경악한 이유는 명확하다. 검증된 학문과 유사 역사학이 같은 토론 테이블에 올랐다. 지구과학과 지구평면설이 '관점의 차이'로 병렬 배치되는 위험이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업무보고장에서 터진 즉흥 질문

12월 12일 업무보고를 받던 자리. 이 대통령은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 교육 관련해서 환빠 논쟁 있죠?"라고 물었다. 박 이사장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자, "단군, 환단고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증거가 없는 건 역사가 아니다?" 대통령의 재질문 끝에 결정적 한마디가 나왔다.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에요?"

발언이 알려지자 한국고대사학회와 한국역사연구회를 비롯한 48개 역사·고고학 단체가 17일 공동성명을 냈다. "명백한 위서인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한 사이비 역사는 부정선거론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위서(僞書)라는 판결—서류심사 탈락의 의미

역사학에서 '위서'란 내용이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다. '언제, 누가, 어떻게 쓴 책인가'를 속인 것이다. 재판에서 증거의 출처를 위조한 것과 같다.

일본 역사책 <일본서기>를 보자. 신공황후가 한반도를 정복했다는 허구적 내용을 담고 있다. 명백한 역사 왜곡이지만, <일본서기>는 위서가 아니다. 720년에 편찬된 것이 확실하고, 당대의 진짜 기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서기>는 백제 무령왕릉을 특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됐다. 내용에 문제가 있어도 '사료로서의 가치'는 인정받는 것이다.

반면 환단고기는 다르다. 1979년 이유립이 세상에 공개한 이 책은 "1911년 계연수로부터 전해받았다"는 주장과 함께 등장했다. 환단고기는 기원전 7000년경 고대 동이족이 세계 최초의 문명국가 환국(桓國)을 세우고, 이후 배달국과 단군조선으로 이어지며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다는, 말하자면 '한민족 고대 대제국설'을 담은 책이다. 

환단고기 측은 계연수가 1911년 고대 문헌 5종을 모아 한 권으로 엮었다고 설명한다.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이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쓰여졌고, 이들 문헌이 기원전 7000년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지학적 증거: 원전 문헌들이 존재한 적이 없다

역사학계가 환단고기를 위서로 규정한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1979년 이전에 환단고기는 물론, 그 원전이라는 개별 문헌들도 어디에도 존재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다.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가 정말 고려·조선시대에 쓰여진 문헌이라면, 조선왕조실록이나 다른 문헌 목록에 언급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단 한 줄도 없다.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1년, 민족의 찬란한 고대사를 담았다는 책이 있었다면 독립운동가들이 분명 언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토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그 어떤 기록에도 환단고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은 이유립이 1960년대부터 1979년 사이 점진적으로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한 흔적을 그의 다른 출판물에서 발견했다. 1980년대에 갑자기 나타나 "사실은 7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책이기 때문에 위서라는 것이다. 

위서는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과 같다. 환단고기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든, 애초에 학술적으로 다룰 가치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두 번째 증거: 언어학적 시대착오—고대 기록에 근대 용어

환단고기는 '고대 문헌'이라는 내용 속에 고대에 존재할 수 없는 근대 용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몽골(蒙古)'은 13세기 징기스칸 시대 이후에야 등장한 명칭이고, '산동(山東)'은 명나라 이후의 지명이다. 그런데 이런 용어들이 기원전 수천 년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고대 문헌' 속에 버젓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종대왕이 광화문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행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더 결정적인 것은 '산업(産業)', '문화(文化)', '남녀평권(男女平權)' 같은 19세기 말 일본을 통해 들어온 번역어들이다. 신석기 시대 기록에 '남녀평권'이 나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조의 증거다.

환단고기는 <단기고사> 같은 다른 위서들과 문장 구조가 상당 부분 겹친다. <단기고사>는 8세기 초에 쓰였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그 내용은 환단고기보다 더욱 황당하다.

<단기고사>에 따르면 기원전 2226년 우리 조상들은 천왕성·해왕성·명왕성을 포함한 태양계 구조를 정확히 파악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천체 이름들이 모두 그리스 로마 신화 신들의 이름을 딴 근대 번역어라는 점이다. 천왕성은 하늘의 신 우라노스, 해왕성은 바다의 신 넵튠, 명왕성은 저승의 신 플루토에서 따온 이름이다. 

기원전 1854년에는 평양에서 만국박람회(엑스포)를 개최했고, 기원전 1836년에는 자율주행차, 전기차, 비행기, 잠수함을 제조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기원전 357년에는 카를 마르크스보다 2천 년 앞서 <자본론>을 저술했다는 것이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는 바로 이 <단기고사>를 적당히 베껴서 짜집기해 만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0년간의 괴롭힘—동북아역사재단을 겨냥한 조직적 공격

대통령은 왜 하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일까.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는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소장 학자들과 상아탑 밖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환단고기 등 사이비 역사학을 비판하는 대표적 목소리로 알려져 있다. 

기 교수는 "사이비 역사학 신봉자들은 동북아역사재단이 하버드대 '고대 한국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10년간 조직적으로 공격해왔다"고 설명했다. 낙랑군 평양설을 인정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기경량 교수는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 모든 한국 문헌이 기록하고 있고, 대규모 유적 발굴로도 확인됐다"며 "'지구에는 중력이 있다' 수준의 명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이비 역사 신봉자들은 끝내 거부한다. 이들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학설을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처음' 발명해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 교수는 "정약용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도 이미 같은 결론에 도달했었다"고 설명했다.

기 교수는 일부 사료에서 만주 지역에 낙랑이라는 지명이 보이는 것은, 313년 고구려가 낙랑군을 병합한 후 유민들이 이주하며 옛 지명을 옮겨 쓴 '교치(僑置)'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인이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New York)을 만든 것과 같다.

결국 하버드 프로젝트 지원은 끊겼고, 책임자였던 마크 바잉턴은 직장을 잃었다. 과거 동북공정을 비판하며 '고구려사는 한국사'라고 한국 편을 들었던 학자를 우리 손으로 쫓아낸 셈이다. 기경량 교수는 "대통령의 발언은 10년간 이어온 사이비 역사 집단의 조직적 공격의 연장선"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관점의 차이'라는 위험한 수사학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환단고기는 위작이다. 1911년 이전 어떤 사료에도 등장하지 않고 근대 일본식 한자어가 고대 기록에 나온다"며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더 심각한 문제를 지적했다. "대통령은 이를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입장 차이'라고 정리했다. 검증된 학문과 유사역사학이 그저 '관점의 차이'라는 것인가? 이건 지구평면설과 과학이 '입장 차이'라는 말과 같다."

환단고기 옹호자들 중 일부는 "근현대적 용어가 나오는 건 후대 사람들이 조금 손을 댔기 때문이고, 손대지 않은 부분은 사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경량 교수는 이를 전청조 사기 사건에 비유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기꾼 전청조를 보자. 엔비디아 대주주라고 했고, 잠실 시그니엘을 소유한 척 했고, 은행에 51조 원 예금이 있다고 속였다. 이렇게 여러모로 사기친 게 드러났음에도 '젠슨황이 전청조가 엔비디아 대주주가 아니라고 말한 적은 없으니 이건 사실일 수도 있는 거 아니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미 거짓말 범벅인 게 드러난 책에서 애써 '사실'의 가능성을 찾으려 드는 건 그냥 자기가 믿고 싶어서일 뿐이다."

환단고기 옹호자들은 역사학계에 "환단고기가 가짜라는 걸 증명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입증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는 교차 증거는 본인들이 제시해야 한다.

환단고기 대중화의 위험성 

환단고기가 대중화된 건 2011년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맞으면서다. 종교단체인 증산도가 환단고기에 주석과 해설을 단 역주본을 출간하며 전국적 보급에 나섰다. 이들은 동북공정과 일본 역사 왜곡으로 분노한 청중에게, 기성 역사학계를 식민사관으로 몰아가고, 환단고기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특히 "조선총독부가 한국 역사서 20만 권을 불태웠다"는 주장을 앞세운다. 기경량 교수는 정면 반박했다. "총독부가 수거한 책들은 애국심을 고취하는 서적이었다. 고대사 관련 책은 아니었다. 총독부 관보에 목록이 남아 있어 어떤 책을 수거했는지 확인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환단고기는 한국사를 빛내기는커녕 오히려 추락시키고 있다. 중국 동북공정을 주도한 학자들은 "한국 역사학계가 환단고기 같은 비학술적 주장을 한다"며 한국 역사학 전체의 신뢰성을 공격하는 빌미로 활용한다.

학계의 일치된 결론

환단고기에 대한 역사학계의 입장은 명확하다. 단 한 명의 전문 역사학자도 환단고기를 진정한 고문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학계도, 일본 학계도, 중국 학계도 마찬가지다.

기경량 교수는 제도적 장치를 제안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전문 역사가들로 구성된 '국가역사정책위원회'를 자문위원회 성격으로 만들어 사안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듣고, 역사 정책을 논의하는 기구로 상설화 했으면 좋겠다. 역사 이슈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외교적 문제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사안이다."

대통령실에서 시작된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에요?"라는 질문은 한국 사회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으로 확장됐다. 핵심은 명확하다. 이미 학계에서 위서로 정리된 환단고기가, 대통령의 질문을 통해 '논쟁 가능한 대상'으로 격상됐다. 검증된 학문과 유사 역사학이 '관점의 차이'로 병렬 배치되는 순간, 학문의 경계는 무너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윤석열 전 대통령도 같은 함정에 빠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민족의 자긍심은 소중하다. 하지만 그 자긍심은 검증 가능한 역사적 사실 위에 세워져야 비로소 의미 있다. 역사는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게 아니라, 증거가 가리키는 바를 따라가는 것이다.

위서를 걷어낼수록, 진짜 역사는 더 또렷해진다. 환단고기의 7000년 전 환국 같은 허황된 과장 없이도, 우리의 역사는 충분히 길고 깊다. 문제는 그 역사를 직시할 용기다. 대통령의 한 마디가 70년 묵은 역사전쟁에 다시 불을 붙인 지금, 선택은 정치권의 몫이 됐다. 위서를 택할 것인가, 학문을 택할 것인가.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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