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가영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허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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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문가영에게 멜로는 낯선 장르가 아니다. <여신강림>에서 <사랑의 이해>까지, 드라마를 통해 여러 차례 사랑 이야기를 해온 그가 이번엔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겼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만약에 우리>에서 문가영은 헤어진 첫사랑 '은호(구교환 분)'와 10년 만에 재회한 건축가 '정원'을 연기한다. 사랑이 끝난 뒤 다시 마주한 미완의 감정에 마침표를 찍어가는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문가영은 이번 작품을 "잘 이별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 제목의 '만약에'라는 단어는 사람을 과거에 머물게 하지만, 극 중 인물들은 그 감정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며 "관객들도 이 영화를 통해 각자의 다음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느덧 서른을 마주한 데뷔 20년 차 배우로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그를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시사회 반응이 좋다.
VIP 시사회가 끝난 뒤 조금 찾아봤는데, 영화를 보며 울었다는 반응이 많더라. 관객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연인뿐 아니라 가족이나 다양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평이 가장 기뻤다.
Q. 성인이 된 이후 첫 멜로 영화다. <만약에 우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거의 9~10년 만의 영화다. 왜 이 작품으로 오랜만에 영화를 찍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내가 비교적 자신 있어하는 장르여서 선택했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좋았다. 이 영화는 잘 이별하고,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제목에 담긴 '만약에'라는 단어는 우리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만, 정원과 은호는 그 감정을 함께 정리하며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다. 현실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이별하지 못하기에 이 지점이 굉장히 영화적으로 다가왔다. 관객들도 우리 작품을 통해 '만약에'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다음 페이지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또 배우로서 흑백 화면에 담긴 얼굴을 남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Q. 동명의 중국 영화가 원작이다. 연기하면서 원작을 참고했는지 궁금하다.
원작은 사실 오래전에 처음 개봉했을 때 한 번 봤고, 이 작품을 선택한 뒤에 다시 찾아보지는 않았다. 재료가 같아도 다른 요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작과 비교하거나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한국의 정서에 맞는 영화로 새롭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Q. 본인이 연기한 '정원'과 닮은 점, 다른 점이 있다면.
작품이나 캐릭터를 고를 때 이해하지 못하면 선택하지 않는 편이라, 정원과 다른 점을 찾기는 좀 힘든 것 같다. 비슷한 점이라면 정원이 건축에 품은 꿈과 열망처럼, 나 역시 연기를 정말 좋아하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열정이 서로 닮아 있다.
Q. 전작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도 그렇고, 남성들의 마음을 흔드는 역할을 자주 맡아왔다.
일부러 그런 역할을 고른 건 아니고, 좋은 이야기인지가 항상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어릴 때는 '세상에 왜 이렇게 사랑 이야기가 많지' 의아해했었는데, 어느 순간 사랑 없이는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작품을 해나가면서 이별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에 더 끌리게 됐다.
Q. 구교환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멜로는 상대 배우에게 받는 게 많은 장르다. 대본에 없는 감정도 연기를 하면서 상대 배우를 통해 많이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극 중 은호의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질 법한데도 미워 보이지 않는 건 구교환 배우의 힘이다. 현장에서는 작품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대화를 통해 상황에 맞는 애드리브 신도 함께 만들어갔다. 구교환 선배는 촬영장을 거닐며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스타일이고, 나는 카메라 근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인데, 성향이 달라서 오히려 재미있는 지점이 많았다.
Q. 실제로는 14살 차이다. 세대 차이를 느끼지는 않았나.
전혀 못 느꼈다. 이전에도 선배 배우들과 작업을 많이 해왔고, 교환 선배를 비롯해 나이로 인한 세대 차이를 느낀 적은 없다. 얼마 전 한 콘텐츠 촬영에서 옛날 노래 맞히기 게임을 했는데, 오히려 내가 선배보다 더 잘 맞추기도 했다. 또 시사회에 초대한 지인들 중 2000년대생들도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는 후기를 전해 줬다. 관계와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세대를 넘어 공감을 얻는다는 걸 실감했다.

Q. '정원'의 감정 연기가 절정이었던 버스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촬영 비하인드가 있다면.
사실 그 장면은 촬영 초반에 찍었다. 구교환 선배가 촬영을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테이크는 두 번 갔고, 영화에 쓰인 장면은 첫 번째 테이크다. 김도영 감독이 전날 "얼굴을 가리고 울어도 되고, 앵글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라"는 메시지를 줬다. 그 말 덕분에 수도꼭지 밸브를 풀 듯 감정을 조절하지 않고 다 쏟아낼 수 있었다. 버스는 공공장소라 눈물을 참아야 하는데, 참는 감정이 더 슬프다고 느꼈다. 테이크가 끝났을 때 스태프들이 모두 함께 울고 있어서 좋은 장면이 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Q. 함께 살던 집을 뛰쳐나와 지하철에서 이별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그때는 오히려 모든 게 끝났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어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촬영 전에는 굉장히 슬플 거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연기해 보니 눈물이 나오지 않고 굉장히 냉정하게 은호를 바라보게 되더라. 촬영 역시 실제 지하철역에서 진행돼 굉장히 급박했다. 한 테이크를 찍으면 다음 정거장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해 텀이 길었고, 한 번 잡은 감정을 오래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더 담담하고 냉정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Q.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을 꼽는다면.
연기하면서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으니 정원과 은호의 행복했던 시절이 오히려 가장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터뷰 때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신기하게도 이 영화는 매일 좋아하는 장면이 달라진다.
Q. 2008년도의 어린 정원과 2024년도의 성숙한 정원을 오가며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촬영 여건상 모든 장면을 극의 시간 흐름대로 찍을 수는 없었지만, 드라마 촬영 경험 덕분에 비교적 익숙했다. 드라마는 대본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소에 따라 장면을 몰아서 찍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작업을 거치면서 시간대를 오가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훈련돼 있었던 것 같다.

Q. 문가영 배우 본인의 이별 경험과 작품에서 맞닿아 있는 부분은 있는지 궁금하다.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영화 속에 공감이 가는 지점이 워낙 많다. 영화가 끝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도 오랜만에 작품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각자의 연애사를 곁들이다 보니 대화가 자연스럽게 길어졌고, 그 시간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좋았다"를 넘어서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더 기뻤다.
촬영하면서도 '이건 정말 현실적이다'라고 느낀 순간들이 많았다. 길거리에서 다투는 장면이나, 사랑이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마음 같은 것들. 연애를 해봤거나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디에선가 '하나쯤은 걸리는 지점이 있겠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한 장면은 서로 너무 바빠 잠든 얼굴만 마주하다가, 정원이 은호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삶을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Q. 이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인가, 새드엔딩인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옛 연인을 다시 만나 감정을 함께 정리하고 관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은호와 정원이 나누는 "다 주고 싶었는데", "이미 다 받았다"라는 대사는 두 사람이 도달한 성숙한 관계성을 잘 보여준다.
Q. 영화에 본인 아이디어가 반영된 장면이나 설정이 있다면.
몽타주 신 대부분은 구교환 배우와 둘이 함께 만들었다. 그중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독일인의 사랑'을 제안했다. 시사회 이후 재미있었던 점은 관객들이 애드리브와 대사를 구분하지 못하더라. 그게 은근한 쾌감이 있었다.

Q. 사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직 살아갈 날이 너무 많아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엔 조심스럽다. 다만 사랑은 의지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계속 허용할 수 있는 관계. 이 생각 역시 앞으로 바뀔 수 있다.
Q. 문가영 배우 본인의 첫사랑은 어땠나.
나는 첫사랑이 계속 갱신되는 편인 것 같다. 이 사람이 첫사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 사람이었네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나의 첫사랑이라는 타이틀은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Q. 문가영 배우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이란.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서른이 되면 모든 걸 통달한 어른일 줄 알았는데, 막상 나는 스무 살 초중반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당황스럽다. 아직 좋은 어른의 기준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책에서 답을 찾으려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 같다.
Q. '만약에' 배우가 아니었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
10살 때부터 아역배우로 이 일을 시작해 다른 일을 상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다른 꿈을 꾸기 전에 좋아하는 걸 너무 일찍 찾은 행운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만약 한국에 오지 않았더라면'라는 가정은 해본 적 있다. 독일에 있을 때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했고, 정말 좋아했다.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발레리나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Q. 최근 글로벌 밴드 메이킹 서바이벌 <스틸하트클럽>의 MC로 활약 중이다.
사심이 담긴 선택이었다. 평소 밴드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데, 밴드 사운드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고 작사에도 참여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느꼈다. 꿈을 좇는 청춘들의 모습을 보며 처음 연기를 막 시작했을 때의 초심도 떠올라 많은 자극을 받았다. 밴드 중에는 뮤즈와 퀸을 좋아하고, 하드록도 즐겨 듣는다.
Q. 데뷔 20주년이다.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연기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은 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아쉬운 건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Q. 앞으로 새롭게 해보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다면.
'피, 땀, 눈물'이 흐르는 누아르를 아직 해보지 못해 도전해보고 싶다. 경찰이나 형사, 의사 역할도 기회가 온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차기작으로는 허진호 감독과 함께하는 드라마 <고래별>이 기다리고 있다.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으로, 이 역시 처음 도전하는 장르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정효림 기자 jhli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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