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영의 정상에서 쓴 편지] 32. 원주 치악산둘레길-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즐겁게 산을 달린다
매달 셋째주 일요일 20여명 함께 달려
등산 전 산 아래서 한달의 노고 다독여
“달리는 것은 끊임없이 멈추는 일” 성찰
11개 코스 중 2코스 구룡계곡길 산행
돌아가야 할 각자의 삶 생각하며 하산
산을 닮은 사람들과 함께 되찾은 투명한 마음
고적한 산책에 가까운 평일 늦은 오후의 산과 다른 분위기의 산이 있습니다. 바로 함께 오르는 주말 아침의 산입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저는 매달 한 달에 한 번씩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산을 달리고 있습니다. 보통 셋째 주 일요일 이른 오전에 만나 달립니다. 어느덧 그날은 서로에게 어엿한 약속처럼 되어버려 이제는 부러 날짜를 정하지 않아도 으레 ‘그때쯤 모일 때가 되겠구나’ 하고 시간을 비워둡니다. 셋째 주 일요일로 정한 이유는 그쯤이 세상의 일로부터 비교적 한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산은 제가 사는 원주의 치악산입니다. 치악산은 해발 1288m의 주봉 비로봉을 비롯해 향로봉과 남대봉과 같은 ‘악’ 소리 나는 천고지 봉우리와 그 산을 에워싸고 있는 총연장 140㎞의 치악산둘레길 등 오르고 달릴 수 있는 길이 정말 많습니다. 어느 달은 향로봉을 오르기도, 또 어느 달은 그 옆 곧은재까지 다녀오기도, 또 어느 달은 치악산둘레길 한두 코스를 달리기도 합니다. 1년 가까이 모여서 달렸는데도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서두르지 않습니다. 더 많이 달리자고, 더 빨리 달리자고 하는 바람 하나 없이 가보지 않은 길은 가보지 않은 대로, 익숙한 길은 또 반가운 대로 즐겁게 함께 달립니다. 함께 달리는 사람들은 원주 사람이 반, 타지 사람이 반입니다. 다 모여서 스무 명가량 되는 사람들은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나이대도 다양합니다. 어떠한 성별인지도 이날만큼은 딱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산을 오른 구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어 달립니다.

그리고 18년 후, 저는 그 믿음이 한 번 더 재생되기를 바랐습니다. 함께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서로의 시간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시간을 찾고 싶었습니다.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소망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사람 인(人)’ 자가 산처럼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산이고 산이 사람인 것입니다. 편견 없이, 그 어떤 선망이나 책무도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투명한 마음이 그리웠습니다. 그 마음은 대체로 기한이 있어 언젠가 흐릿해지고 희미해질 마음이기에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산길이 가파를수록 호흡도 가팔라집니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심박도 올라갑니다. 조금 전의 여유나 평화는 오간 곳 없이 사라지고 또 한 번 앞만 보고 달립니다. 지칠 때 지치더라도, 그래서 걷거나 멈추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멈췄을 때도 아쉬움이 없을 것입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만하면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달립니다. 그것은 언제까지 달릴 것이냐는 세간의 물음에 대한 모종의 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끝도 없고 한계도 없는 도전입니다. 그저 다른 방향의 희망이 있을 뿐입니다.

3.5㎞쯤 달리자 높은 언덕 하나가 나오고 이후 이어지는 길은 내리막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인생의 영락없는 진실을 산은 우리 눈앞에 보란 듯이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힘들게 올랐으니 당분간은 그 힘 빼고 가볍게 나아가라고, 엉켜버린 숨도 다시 원하는 대로 쉬고 주변도 돌아보라고. 하지만 달려 내려가는 그 길에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이 길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내리막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오르막이 있을 것이라는 진실을 잊지 않는다면 나만의 산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치악산둘레길 2코스가 끝나는 구룡계곡 부근에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갑니다. 계속 앞으로 가면 3코스가 나타날 테고 어쩌면 구룡사를 거쳐 비로봉까지도 올라갈 수도 있을 테지만 오늘의 길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후에는 오후의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한 줄로 이어 달리는 저들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한 사람의 미덕을 봅니다. 작가·에디터
#치악산둘레길 #장보영 #사람들 #치악산 #구룡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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