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통합 30년 그 후] 4. 원주 시군통합 명과 암

김정호 2025. 12. 2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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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유일 인구 30만 성장의 그늘…혐오시설 군 지역 밀집
시군 통합 투표 찬성률 높아
혁신·기업도시 인구증가 견인
중앙정부 행정 효율 명목 추진
의원 선출 ‘시 출신’ 다수 차지
택지 개발 뒷전 균형 발전 저해
“생활 여건 개선 인구 분산 시급”
▲ 원주 지정면 기업도시 ▲ 원주 음식물 쓰레기 처리시설 반대 플래카드

[시군통합 30년 그 후] 4. 원주 시군통합 명과 암

시군통합의 차이가 가장 극명한 곳이 원주다. 1995년 원주시와 원주군이 통합될 때만 하더라도 원주시의 인구는 23만7537명이었으나 30년 후인 올해 8월 기준 원주 인구는 36만2775명이다. 강원도내에서는 유일하게 인구 30만이 넘는 도시가 원주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는 원주의 인구증가를 견인했다. 원주시는 시승격 출범 70주년을 맞아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련 특별법에 근거, 광역시 지위에 해당하는 대도시 지정에 도전하고 있다.

시군통합이 있었기에 원주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통합 과정에서 원주군 주민들이 우려했던 점도 그대로 현실화됐다. 기업도시인 지정면을 제외한 대부분의 면 지역의 주민 수는 감소했다. 쓰레기매립시설, 화장장 등 기피시설 역시 원주군이었던 지역에 자리잡았다. 이처럼 시군통합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원주의 빛과 그림자는 더욱 극명해지고 있다.
신관선 씨

■시군통합은 원주시 입장에선 기회

원주시청에 근무한 신관선(67)씨는 원주 시군통합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다. 신관선씨는 1977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2017년까지 약 40여 년을 공직에 몸담았다. 원주시와 원주군이 시군통합을 논의하던 시점에는 원주시 시정계에서 근무를 했는데 당시 시군통합 업무를 원주시에서는 시정계가, 원주군에서는 행정계가 맡아 진행했다. 1995년은 통합을 완료한 해였고 사실상 대부분의 준비가 1994년에 이뤄졌는데 신관선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투표 찬성률이 높았다고 했다.

신관선씨는 “정확한 찬반 비율은 기억이 안 나는데 원주시와 원주군의 주민 찬성률이 높다보니 인센티브 개념으로 원주시는 명륜동을 1·2동으로 분동해줬고, 원주군은 문막면을 읍으로 승격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주민 투표와는 반대로 통합 과정에서는 의회와의 마찰, 공무원간의 경쟁은 있었다. 신관선씨는 “당시 원주군의회의 반대가 심했고 더불어 시군 공무원간 경쟁도 팽배했는데 당시 원주시장이었던 김대종 시장이 통합시장이 됐고 이후 원주군수였던 김기열 시장이 민선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원주시와 원주군 공무원들의 희비도 엇갈렸다”며 “그럼에도 조직을 축소하거나 인원을 감축하는 일은 없어 공무원들이 크게 반대하지 않았고 당시 문화관광과가 관광과, 문화체육과로 분리 되는 등 조직이 비대해졌다”고 했다.

시군통합이 벌써 30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신관선씨는 원주시의 통합은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신 씨는 “사람마다 보는 시각은 다르겠지만 원주의 경우에는 시군이 골고루 발전했다고 본다”며 “시군 통합이 도시팽창의 기회가 됐고 쓰레기 매립장 등 시 전체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설들이 군 지역에 지어지면서 불만이 생기기도 했지만 어디든

지어져야 하는 시설이고 그런 시설 뿐 아니라 공단들도 군 지역에 많이 생겨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1955년 원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인위적인 행정구역 분리가 40여년간 이어진 거지, 원주의 전통과 정체성은 삼국시대, 조선시대 때부터 통합에 있다고 보고 시군통합은 원래 모습을 복원한 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장기웅 전 의원

■우려했던 혐오·기피시설 전부 군 지역으로

반면 원주군 지역은 직격탄을 맞았다. 1994년 1만명이 넘게 살던 소초면은 현재 7970명이 거주하고 있고, 호저면 역시 5559명에서 현재 3291명까지 줄었다. 귀래면의 경우에는 2760명에서 2060명까지 떨어지며 2000명선도 위협받고 있다.

1995년 당시 원주군의 마지막 군의장을 역임했던 장기웅 전 의원은 당시 우려했던 그대로 혐오·기피시설이 전부 군 지역에 자리잡았다고 비판했다.

장기웅 전 의원은 당시 원주군을 회상하며 오히려 원주시보다 발전 요소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장 의원은 “당시 원주군에는 반계리에 공단이 생겼는데 이게 아마 도내 최초의 공단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며 “반계리 공단이 영동 고속도로와도 가깝다보니 기업들의 관심도가 높아졌고 당시 인구도 9000여명 가까이 돼 세수 수입도 늘어나던 상황이라 자체적인 경쟁력이 충분했다”고 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광역 행정의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인접 시군을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군의원들은 통합을 반대했지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고 했다.

장 전 의원은 “통합되면 군 지역 입장에서는 혐오시설, 기피시설을 군 지역으로 이주하고 민선 시장, 시의원들이 대부분 시 지역에서 당선되면서 예산이나 정책 면에서도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럼에도 중앙정부에서 시행하다보니 반발하기도 어려웠고 이런 부분에 대해 주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자리도 지자체에서 만들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현재 시군통합에 대한 평가 역시 긍정적인 반응보다 아쉬움을 먼저 표했다. 장 전 의원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통합이 안됐다면 오히려 서로 경쟁적인 균형 발전 차원에서 정책이 진행됐을 거라 본다”며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정책으로 반영시킬 수 있는 의원 선출 과정부터 시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며 우려했던 화장장, 쓰레기 매립장 등 시설이 군 지역에 들어왔고 반대로 택지 개발을 시 지역보다 뒷전으로 미뤄졌다”고 했다.

이에 장 전 의원은 “이제는 과거보다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며 “군 지역이라고 개발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생활 축이나 여건을 갖춰주고 인구가 분산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제 철도가 뚫려 40분이면 경기도 성남까지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원주에 남을 이유가 없는데 정주 여건마저 부실하다면 지역 인구가 빠져나가는 건 시간 문제”라고 했다.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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