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 언론이라 비웃는 전략 언론
[사실과 의견]
[미디어오늘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다큐멘터리 '뉴요커'를 보며 즐거웠다. 창간 100년을 맞은 그 매체의 기자는 종이 수첩에 취재 내용을 적었다. 그렇지, 진짜 취재는 모든 발언을 녹음하는 게 아니라 중요 발언을 잡아채는 거지. 잡아챌 줄 아는 기자는 녹음기보다 수첩을 더 좋아하지! “내 담당은 전쟁이다”(My beat is war)라고 말하는 기자도 등장했다. 옳지, 원래 출입처(beat)란 권력기관이 아니라 의제 또는 분야이지! 그 기자는 “보고 맡고 느낀 뒤, 그대로 전달하는 걸 좋아한다”라고도 했다. 거봐, 직접 가야 취재이고 감각한 대로 보도해야 기사라고 말하는 저 형형한 눈을 보라고!
29명이 일하는 팩트체킹 부서는 기사와 칼럼은 물론 만화의 배경까지 검증했다. 기자와 팩트체커와 편집자가 둘러앉아 모든 기사와 칼럼을 검토하는 최종 회의도 열렸다. 진짜였어, '사실 검증의 규율'은 교과서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거였어! 그러니, 그 모든 경건한 예식을 이끄는 60대 중반 편집장한테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리트주의가 반지성주의에 대한 반대라면, 우리더러 엘리트라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라며 그는 미소 지었다. 나는 살짝 달떴다. 어머, 다음 생에선 나도 저 남자처럼 늙을 거야!
그들이 일하는 뉴요커는 매거진이다. 매거진의 어원은 저장고 또는 보관소를 뜻하는 아랍어 '마흐잔'(makhzan)이다. 보관소는 여러 물건을 범주별로 구분하여 탄창(magazine)처럼 차곡차곡 쌓아 두는 곳이다. 이걸 '잡지'(雜誌)로 번역하면 '잡스러운 매체'라는 오해가 생긴다. 진정한 매거진은 잡다하지 않다. 여러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아우른다. 그래서 뉴요커에는 논픽션과 픽션, 수사 보도와 에세이, 예술과 비평, 칼럼과 풍자가 공존한다. 다큐멘터리는 이들 각 분야에서 뉴요커가 쌓아 올린 '레거시'를 드러냈다.
물론 레거시는 가치중립적 단어다. 어원에 법(legal)과 대표(legate)의 흔적이 있지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세대를 이어오는 모든 유산을 가리킨다. '레거시 뉴스 미디어'를 '전통 언론'이라고 번역하는 건, 그래서 큰 문제가 없다. 어떤 전통은 계승의 대상이고, 다른 전통은 혁파의 대상이다. '전통 언론'은 가치중립적 단어다. (다만, 예전에 쓴 것처럼, 의견·주장을 강조하는 한국적 단어 '언론'의 부정적 영향은 적지 않다)

어느 정치 평론가가 굳이 그 표현을 피하여 '재래식 언론'이라는 단어를 썼다. 한국어에서 '재래'는 낡은 것을 폄훼하는 맥락으로 쓰인다. 대표 용례로 재래 시장, 재래 화장실, 재래 무기가 있다. 전통과 재래의 뉘앙스 차이에 주목한 명민함을 탓하고 싶진 않다. 나도 한국 전통 언론에서 부정적 요소를 여럿 발견한다. 정치 이슈만 다루는 정치 중심주의, 이념을 위한 사실의 생략·왜곡·오도, 이를 통해 군중을 동원하려는 욕망, 자신은 그래도 된다고 믿는 선민의식, 그것에 입각한 선택적 분노와 선택적 정의, 그 모든 걸 치장하는 현란한 레토릭 등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시사 유튜브 채널을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걸 발명한 게 아니라, 전통 언론의 병적 요소를 계승한 것이니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자성할 뿐이다. 그들은 재래식 무기의 폭발력을 극단적으로 강화하여 핵전쟁의 전략적 무기를 벼렸다. 모든 일을 죽기 아니면 살기의 대결로 풀겠다는 그들의 유튜브 채널은 전통 언론의 병증을 극대화한 '전략 언론'이다. 그들은 사실을, 사람을 정치 전략의 관점으로 본다. 그 전략 아래 사실과 사람을 수단과 도구로 간주한다.
저널리즘의 레거시는 나쁜 전통을 악화한 전략 언론에 있지 않다. 전통적 고질에 맞서 면역력을 키워 온 건강한 기자들이 한국 언론의 진짜 레거시다. 예를 들어, 최근 Q저널리즘상을 받은 한국일보의 '비로소 부고' 연재기획 가운데 한 기사에 세 명의 기자가 등장한다. 마음에 별처럼 박힐 좋은 기사를 써보겠다며 낮엔 취재하고 밤엔 공부했던 기자, 자신을 지도했던 그 선배 기자가 사망한 참사 현장에서 울음을 깨물어 가슴으로 삼키며 마이크를 잡은 기자, 그 사연을 취재하겠다고 몇 달 동안 전국을 다니며 고인의 자취를 한땀 한땀 취재한 기자가 좋은 기자의 삶을 입증했다.
전략 언론은 그런 기자도 낮춰 본다. '전통 언론의 최고 버전'에 관심 없고, 보아도 못 본 체한다. 그러니, 저널리즘의 좋은 전통은 시사 유튜버 말고, 좋은 기자들이 이어갈 것이다. 나는 좋은 기자들의 편이다. 정말 명민하다면, 이편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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